제게 사랑에 대해 설명해보라는어려운요구는 안 하셔도 됩니다. 당신이 듣고 싶은 사랑에 대한 설명은당신 가슴에서설명되고 납득되고 수정되고 선언되고 있을 테니까요. 사랑은 이미 세상 가득하게 충만합니다.당신의 인격 안에서 사랑이 처음으로 발아했을 때 당신은 숨 쉬는 것과 같다고 느꼈을 거예요.또 꽁지머리로 묶기엔 한 줌도 안 되는 성글게 올라오는 아이의 머리털이 바람에 날린다고 했을 수도 있고요. 중요한 건 저도 당신도 사랑의 일부를 가져다 사용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누군가가 사랑을 별처럼 하늘에 박아둘지도...
혹시 당신 가슴에 있는 사랑을 키우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오늘의 그림책 주인공 소년의 할머니가사랑을 알고 싶다면 세상으로 나가보라, 하신 말씀에 따라 나라는하나의 세상에서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는걸 추천합니다. 소년의 질문에 할머니께서 직답을 피하신 것 같습니다. 할머니께서 하고 싶으셨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제부터 나누려고 하는 그림책 《사랑 사랑 사랑》에 주인공이 소년인걸 눈치채셨지요. 그 소년은 당신이 될 수도 있고 제가 되기도 합니다. 아니, 사랑이 무엇을 뜻하는지 오랜 세월 세상으로 나갔던 것으로 말하면 제가 그 소년일 것입니다. 소년이 세상 어디 어디를 갔었는지 뒤쫓아가면서 살펴봅시다. 그리고 이러쿵저러쿵 온갖 뒷얘기와 뜻풀이가 난무할 것이니 열린 맘으로 지켜봅시다.
왜 사랑은 한 가지 답을 가질 수 없을까요. 사랑에 대한 정의가 여러 개가 되면 큰일이 벌어지나요? '사랑은 ○○이다'라는 한 개의 명제가 있길 바라는 이유가있다면 당신의 사랑이 특별한가 봅니다.
내 사랑은 소중해! 그 한 마디면 될 것 같은데... 소중한 건 한 사람이어야 되고, 같은 물건이라도 같지 않아야 하는 그런거죠. 오로지 하나여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혹시 당신이 생각하는 고정적인 경제관념이 사랑을 계산기로 두드리라고 추동하진 않겠지요.
"사랑이 뭐예요?"
할머니는 오래 살았으니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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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사람이 나이 들듯 어른이 되나요? 사랑에 대해 근접한 답변을 할만한 나이는 몇살 정도가 되어야 좋을까요?적정 나이의 사랑의 답변이 모두 옳다고 받아들일 수 있으실까요? 사랑이 온 우주와 이 세상에 가득하기에 한 가지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랑이 나이를 먹는다면 그건 당신이 그 사랑으로부터 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흔히들 '사랑이 식었다'면서 지금의 사랑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사랑이 불처럼 타오르면 식은 것이 다시 따뜻하게 회복될까요. 오히려 불에 완전히 연소되어 버린다면 당신에게 남은 사랑은 '재'가 되는 거지요. 당신도 바뀌고 사랑하는 사람도 변해야 하는 문제가 나타난 건 아닌가요. 사랑은 다이아몬드와 달라서 영원히 빛나지 않습니다. 첫사랑의 단단한 경도를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나이를 먹는 만큼 철이 드는 것이겠지요.'오히려 유연해지는 것이요.
소년이 저렇게 생각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과실수에서 열매를 수확하려면 계절을 기다리야 하듯, 할머니가 가꾸신 정원에 우주의 질서가 피었다가 지는 변화에서, 어른들이 사랑을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렇다면 '사랑은 오래 버티고 오래 참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 보렴!
당신이 궁금해하는 고퀄리티의 사랑은 없습니다. 당신보다 수준이 낮거나 혹은 높을 사랑이 어디 있겠어요. 우선, 당신 수준의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 사랑을 자꾸 해설하고 싶은 호기심 혹은 저울질을 멈추면 어떨까요.
저는 사랑할만한 사람만 사랑하면서 살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수두룩 합니다. 만약 제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겠다면 하루하루가 지옥 같을 거예요.
소년의 할머니는 지혜롭고 현명한 대안을 제시하셨습니다. "세상에 나가 보렴. 그러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사람의 밑천이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걸 설명하려들거나, 아는걸 잘 전달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지식이 크다고 착각하거나 할 때입니다.
할머니는 오래 살았으니까 (사랑이 뭔지) 알고 있을 거라 했던 소년의 생각은 절반은 옳았습니다.
사랑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아름다운 밤 풍경을 연출하지만, 사랑이 스타는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 스스로 밤 배경이 되어 별을 걸어두어도 괜찮다고 하는 온유함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소년에게 세상에 나가서 사랑의 의미를 찾으라고 하신 것도 온유함에서 비롯된 대답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온유하다고 하는거겠지요."
대학생 2년 차 조카가 여섯 살 적. 아이가 까막눈을 뜨여 낱말이 보이자 글 있는 그림책을 무조건 읽겠다고 덤볐습니다. 처음에는 단어, 다음에는 짧은 단문, 그다음에는 긴 단문과 대화 내용들을 읽을 수 있자, 낱말을 배우기가 껌 씹기처럼 간단한 일이 되는 듯 보였죠.
육아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눈을 뜨고도 입으로 소리를 내지 못했던 까막눈이던 아이가 눈을 뜨게 되자 글의 신세계로 급속히 빠져들더군요.그리고 눈앞에 어떤 책을 들이밀든 굶주렸다는 듯 그림책들을 읽고 또 읽더라고요. 그렇게 다 빨아들일 것처럼 글을 읽는 조카를 보고, 저는 아이가 천재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김칫국을 들이마시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낱말에 눈을 뜨자 세상이 극명하게 나뉘었습니다. 아이는 알고 싶은 낱말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말들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했습니다.
낱말은 소리만으로 충분히 소통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낱말과 소리는 뜻을 담아내는시청각의 세계라서 언어를 알려면 갈 길이 멀지요. 그러니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에 비해서 낱말을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우쭐댈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 언어를 안다는 건 끝이 없는 게 아닐까요. 언어는 말이 담고 있는 알맹이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줘야 합니다.
일단 첫 발을 떼놓아야 하는 것이죠. 아이가 글을 읽고 그 낱말의 뜻을 함께 배우도록 헛 공부가 되지 않도록 안내하는 것입니다.
글자를 알면 다음 영역을 정복하고 싶은 게 사람의 욕구입니다. 아이는 자음과 모음을 요리조리 조합하며 낱말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그러면 다 끝난 건가요? 글자와 소리와 사물을 선으로 잇는 낱말 잇기를 합니다. 더 이상 글을 몰라 외워서 책을 읽는 척할 필요는 사라집니다. 기억 저장 용량이 부족해도 괜찮아요. 생각할 힘을 강화시키는 자기 훈련으로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Q&A를 하면 됩니다.
이미 저는 아이가 반복 질문을 끝장토론하듯 지겹게 물어온 경험을 했습니다. 큰 올케가 <까꿍놀이> 책을 한 자리에서 사오십회 이상 읽어줬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요. 어디 그 책뿐이겠습니까. 제 기억에 <악어떼> <다윗> 책도 있네요.
조카가 글을 알아보기 시작한 여섯 살 때 저는 읽고 있던 구약성서 '아가서' 1장을 읽어주었습니다. "솔로몬의 아가라. 내가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혹시 이런 습관 있으신가요?책을 읽다가 가슴에 와닿는 문장이나 단어에 색깔 펜으로 밑줄을 긋는 것이요. 조카는 형광펜을 들고 땅따먹기 영역 표시하듯 아가서 1장 2절에 직사각형의 박스를 그렸습니다.
그렇게 하니 그 문장이 조카의 소유가 되는 듯 싶었습니다. 저는 읽고 즐거워 했을 뿐 영역 표시를 할 생각을 안했거든요. 조카에게 어떤 글자가 좋으냐 물었더니 '입맞춤'과 '사랑'이라고 대답하더군요. 희한하게 자신이 느꼈던 가장 설레고 아름다운 낱말이 있는 문장을 기억하고 싶어 한 것입니다.
조카의 행동으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습니다. 아이라도 사랑을 안다는 사실입니다. 눈에 하트 뿅뿅 날리며 입맞춤과 사랑이라는 낱말을 보는 아이가 행복해 보였습니다.
사랑은 물고기란다.
사랑은...... 박수갈채야.
사랑은 밤이야.
이게 사랑이야!
사랑은 집이란다.
농부는 사랑을 씨앗이라고 말했어요.
어떤 병사는 사랑은 칼날이라고 했고요.
마부는 사랑은 당나귀라고 했어요.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을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위험한 범주에 넣는 이유는, 세상으로 나가보지 않고도 혹은 세상을 경험하지 않고도 세상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하면 위험합니다.
'스포츠카, 도넛, 도마뱀, 반지, 겨울의 첫눈, 여름의 단풍나무, 불곰, 바로 이 조약돌. 사람들이 소년에게 사랑이라고 말해 준 것들입니다. (인용)
소년은 청년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청년은 신발을 벗고 집 앞뜰에 섰지요. 발가락을 구부려 흙에 단단히 파묻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