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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Apr 27. 2024

나 진짜 시험 못 본 거야?

매일이 사실 고비였다

 토요일, 아침이 밝자마자 학교 도서관이 있는 건물로 튀어나갔다. 전 날 짐을 잘 챙겨둔 보람이 있었다. 스터디 같이 할 친구를 기다리면서 먼저 해부학 공부를 시작했다. 해부학 전체 범위를 둘로 나눈 뒤, 주말에 볼 생각이었다. 전체 내용은 해부학 총론, 세포와 조직, 뼈대 구조, 머리뼈, 척추뼈, 팔뼈, 다리뼈 내용이었다. 토요일의 목표는 '뼈대 구조~척추뼈' 까지로 하고, 나머지 내용을 일요일 목표로 잡았다.


 그날 비가 좀 와서 날이 흐렸는데, 공부하는 로비의 천장등도 꺼져있어서 스탠드 불빛만으로 하려니 눈이 조금 아팠다. 오후 2시 즈음되니 배가 고프기도 해서 동기 D와 편의점에서 쇼핑을 하고, 라면과 훈제 달걀을 까먹었다. 공부하면서 먹을 아아도 챙기고 엄마는 외계인 초코볼도 잔뜩 사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메리카노가 들어가니 집중이 더 잘 됐다. 간간히 까먹는 초코볼도 너무 맛있어서 행복했다.


 저녁은 도서관 건물의 다른 층에서 공부하는 동기 네 명도 포함해서 여섯 명이서 떡볶이를 시켜 먹었다. 공부도 해야 되니 양은 적당하게. 공부도 공부지만 계속 먹은 것 같아서 기숙사를 들러 양치만 하고 돌아왔다. 저녁 먹은 지 한 시간 만에 다시 앉아서 저녁 공부를 시작했다. 뭐 시켜 먹으면 2시간 이상 걸리는 건 기본인데, 1시간이라니 나도 어지간히 공부가 급한 상태였던 것 같다.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시간. 다시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배가 고파서 라면 하나를 해치울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이어서 열공하면서 때때로 모르는 부분들은 동기들한테 물어봐가면서 공부했다. 알려주기도 하고. 사실 수다도 좀 떨었는데, 그런 소소한 게 참 재밌었다. 그리고 새벽 5시가 되어서야 결국 토요일 목표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휴. 정말 수고했다. 내일도 공부해야 하니 눈을 좀 붙이기 위해 기숙사로 들어갔다.


 4시간 여 뒤, 공부할 걸 두고 와서 가벼운 차림으로 기숙사를 다시 나왔다. 일요일은 해부학만 붙잡을 수는 없었고, PT개론이라는 수업 내용도 정리해둬야 했다. 오전 시간에 PT개론의 정리를 우선 마무리한 뒤에 기숙사에서 점심을 먹고 왔다. 동기 D도 그 이후에 도착해서 같이 해부학 공부를 시작했다. D는 집중을 잘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도저히 집중이 어려워서 멍 때리다가 몇 개 더 외우다가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잠을 많이 못 자고 컨디션이 좋지는 않은 상태라 그런 듯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시험이 내일이었고, 꼭 해야만 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공부하다 보니, 금세 저녁이 되었다. 저녁은 다 같이 치킨을 시켜 먹기로 했다. 다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게 느껴졌지만, 이럴 때 먹어야 또 힘이 난다고 생각해서 치킨은 정말 맛있게 먹어주었다. 먹고 잘 치우고 나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일요일은 날씨도 맑고, 로비도 불을 켜둬서 밝았지만 오히려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들 기숙사나 집에서 공부하는 듯했다. 나중에는 동기 몇 명도 집으로 들어가고, 동기 Y와 나 둘이서 새벽 3시가 될 때까지 막판 스퍼트를 달리고 마무리했다.


 일요일 공부는 정말 너무나도 힘들었다. 시험 전날이라 받는 스트레스도 당연히 있었다. 쉬고 싶을 때 쉬었다 하는 공부와는 다르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 속에 놓였으니까. 내가 정말 힘들었던 부분은 열심히 함에도 불구하고 외워지지 않는 것 같아서 화가 계속 나는데 그걸 해결하는 방법도 분량을 어떻게든 끝내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는 거였다. 그걸 참아가면서 새벽 3시에 공부를 마무리했을 때 좀 누그러들면서 안도하긴 했지만 당장 잠에 들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기숙사에 들어오자마자 간단히 씻고 바로 뻗어버렸다. 일어나니 9시 즈음이었어서, 시험 직전까지 교재를 좀 읽다가 시험을 치렀다. 생각보다 쉬워서 다행이었고, 그런데도 몇 개 틀리기는 했다. 홀가분함과 동시에 허무함이 강하게 들었다. 다른 전공들보다 시간을 더 소모해야만 했던 과목이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밤샘은 계속됐다. 새벽 5시, 새벽 6시, 새벽 5시... 매일이 고비였다. 그렇게 전공과목 시험이 모두 끝나니 다 끝난 것만 같아서 동기들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든든히 먹고서 뮤지컬 수업에 들어갔다. 너무 피곤한 상태인데 춤을 춰야 해서 걱정이었다. 다행히 노래 연습이 있어서 춤은 덜 췄고, 춰야 할 진도는 다 빼고 마무리되어 안심했다. 그리고 방으로 오자마자 다시 뻗었다... 다음 날 마지막 교양 시험을 준비해야 해서 저녁에는 일어나야 했다.


 좀 느긋이 일어나서 저녁 대신으로 과자 한 봉지를 까먹으며, 노트북을 켰다. 교양 PPT 파일을 정리하면서 공부했는데 그렇게 하고 나니 새벽 3시였다. 정리된 파일을 외우다 보니 새벽 6시가 됐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공부가 부족했더라도 이때 잠에 들고서 시험 한 시간 전에 일어나 마지막으로 외우고 오전 11시 시험을 봤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충격적이게도 자느라 교양 시험에 결시한 것이다... 이게 나의 어이없는 교양 결시 사유이다.


 외울 게 남은 것 같은데 졸려서 잠을 좀 깨우려고 씻고 다시 공부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나른해져서 잠이 확 몰려왔다. 10분만 자고 공부한다는 게, 일어나 보니 12시였다. 너무 놀랐지만, 시험 시간이 90분이었던 게 기억이 나서 30분 안에라도 보고 오려고 교실로 바로 튀어 갔는데, 시험이 끝난 뒤였다. 교수님께 전화를 드리니 시험 시작 시간으로부터 10분이 지나 입실 후 시험을 치는 건 안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덧붙이신 말씀이 '원래 안 되는 게 맞지만, 가능하면 감점하고서라도 시험을 칠 수 있게 해 보겠다'는 거였다. 가능하게 되면 연락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연락이 올진 모르겠다. 연락을 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지만, 연락을 못 주셔도 내 잘못이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내가 예전에 다녔던 대학에서의 규정은 시험을 못 치르면 바로 F가 나왔던 것 같은데, 여기는 다행히 시험을 하나 못 치러도 과제나 학기말 고사, 출석 등을 다 하면 F까지는 안 주는 것 같다. 출석 시수가 기준에서 미달되면 F를 주는 것 같다. 그러니 다음 주 중으로 교수님으로부터의 연락이 없을 경우, 중간고사 점수는 없는 셈이니 F를 면하려면 과제를 잘 내고 기말을 잘 봐야 할 것 같다. 재수강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마음은 너무 속상해 죽겠는데 문득 내 지난 행동들이 어이가 없고 웃겨서 헛웃음이 났다. 울음은커녕 멍 때리고 있다가 가족들에게 열심히 토로해 보았다. 그러니 조금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어쨌건 연락을 기다려봐야 하니,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시험이 끝났으니 기숙사 청소를 싹 해두었다. 웨이브를 보면서 깔깔거리다가 집에 갈 시간이 돼서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인천 집으로 올라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다 되었고, 치킨을 시켜서 오랜만에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냈다. 심심해서 동생이랑 보드게임을 열심히 하다가 푹 자고 일어나서 밀푀유나베로 점심을 먹었다. 늦은 오후에는 동생이랑 노래방도 다녀왔다. 좋아하는 인천의 한 카페에서 글도 쓰고 아아와 얼그레이 케이크도 먹었다. 저녁에는 부모님과 맛집에 방문해서 쌈밥도 거하게 먹고 산책도 하고 왔다. 두 달간의 대전 생활이 즐거웠어도 적응하느라 힘든 점도 있었는데, 오랜만에 온 인천에서 보낸 하루는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내일 다시 내려가지만, 지금까지 잘 적응했듯이 또 재밌게 보내겠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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