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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May 18. 2024

이래서 집이 좋은가 봐요

5월의 봄 방학

 해부학 수업이 끝나고, 동기들과 점심 먹는 걸 뒤로 하고 기숙사로 바로 돌아왔다. 중국어를 봐야 할 게 있어서 간단히 점심만 먹고서 중얼중얼 단어와 문장을 외웠다. 해부학도 중간고사 이후로는 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 최근 배운 내용에 대한 목차를 확인하고 그중에서 토대가 되는 개요 파트를 외웠다. 마음이 비워진 기분이었어서 집중이 잘 됐던 것 같다. 그러고 나니 금세 저녁이 되었다.


 저녁에는 학과 회식이 잡혀있었어서 빠르게 준비를 하고 밖을 나섰다. 회식하고 오면서 추울까 봐 바람막이 점퍼도 입고 나갔다. 멍 때리며 15분 정도 걸어서 약속 장소인 한 통닭집으로 들어갔다. 가볍게 인사하면서 동기들 옆에 앉았다. 지도교수님도 오시고 선배들도 오는 자리였는데 처음에는 조금 어색한 기류가 감돈다고 느꼈지만, 먹으며 얘기하다 보니 편해졌다. 초반에 술 없이도 재밌게 얘기했던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엔 신입생 환영회를 하던 시기보다 다들 더 친해진 게 있어서 그렇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아무래도 선배인 쪽에서 노력해 주신 듯해서 내심 고마웠었다. 그렇게 얘기하다가 술게임도 하느라 소주를 엄청 마시게 돼버렸다. 더 이상 마시면 안 될 듯했는데, 다행히 그 쯤에서 회식이 마무리 됐다.


 인사하고 나와서, 이렇게 모인 김에 동기들하고 2차까지 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텐션 적응이 힘들 것 같아 걱정했는데, 예상보다는 재밌게 놀고 온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맥보다는 소주를 마셔서 어지러움이 덜했던 것 같다. 하하. 사실 다음 날에 러닝크루 회식도 있어서 학과 회식은 가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다녀오길 잘한 것 같다.


 근데 다음 날 러닝크루 회식은 가지 않았다. 가면 크루 사람들이랑도 더 친해지고 좋긴 할 텐데, 이번 주 중국어 시험도 잡혀있고, 2일 연속으로 술을 마시기엔 컨디션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주는 석가탄신일과 개교기념일로 거의 5월의 봄 방학 주간이 된 느낌이라 시험도 보고 오고, 집밥도 먹고 수다를 떨려고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갈 기차를 끊었다. 그리고 가는 방향이 같은 동기 Y와 같이 서대전역으로 향했다. 점심을 못 먹어서 기차역에서 같이 갈비탕과 냉메밀면을 먹었다. 역에서 먹으니 여행 가는 기분도 들어서 재밌었다. Y와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Y는 먼저 기차를 탔고, 나는 다다음 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오는데 마음이 고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해 질 녘이라서 그랬나 보다. 집에 오니 아무도 없었다. 아마 일을 갔거나 공부를 하러 나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짐을 정리하고 씻고 동생 방에 누워있었다. 대전에 내려가면서 내가 쓰던 방을 동생한테 줘서 우리 집에 내 방은 이제 없다. 허허. 그래도 우리 집은 우리 집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같이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내가 요즘 고민이 되는 부분들도 얘기하고, 학교 얘기도 털어놓으면서 최근 가족들의 근황도 들었다. 회식 자리에 가지 않고 집에 일찍 와서 엄마랑 얘기하며 시간을 보낸 덕에 어지럽던 생각들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주요 주제는 내가 이렇게 사회의 궤도에서 조금 벗어나서 꿈이란 걸 좇아도 되는 건가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할 깜냥이 나한테 있는 게 맞을까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러자 엄마는 취업하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부족하니 당연한 불안이라고 했다. 엄마의 대답은 사소했지만, 핵심이었다.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능력으로 돈 문제만 어떻게든 해결하면 나머지는 쭉 따라가기만 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정말로 감사한 것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귀찮아질 때마다 드는 불평들이 있었는데 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갑자기 반성해 보는 유익한 하루가 되었다.


 휴일에는 중국어 공부도 하고 웨이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시간도 생겼겠다 보험비 낼 돈이라도 보태려고 단기 알바도 다녀왔다. 금요일에는 학교 수업이 있긴 했는데 사실상 째고 집에 있는 셈이었다. 푹 쉬다가 늦은 저녁이 되기 전에 오랜만에 피아노를 쳐보았다. 음, 그래도 레슨 때 배운 걸 아예 다 까먹지는 않았군.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오늘 밤에는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자야 할 듯싶다. 내일은 마지막 스퍼트를 내고, 집 근처에서 일요일 시험을 보고 오면 될 것 같다. 다신 없을 5월의 봄 방학도 이렇게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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