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의 물성
열 권쯤 읽으면
한 문장이 가슴에 남았다.
그 문장은 언제나 단단했고,
묘하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려는 순간,
문장은 부서졌고, 생각은 흩어졌다.
나는 늘
머릿속엔 말이 가득한데
글로 꺼내는 일에는 서툰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는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리하려는 용기가 부족했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믿음은 오래갔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스르르 무너졌다.
누구의 시선도 없는 어느 날,
내 안에 있던 단단한 벽 하나가
작은 숨결처럼 부서져 내렸다.
그 시절의 나는
가방 속에 책 한 권을 넣고 다녔다.
바쁜 하루 속, 잠깐이라도 틈이 나면 펼쳤다.
밑줄을 긋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무언가를 알고 싶었고,
무언가에 감동받고 싶었고,
무언가와 연결되고 싶었다.
지적 호기심은 나를 숨 쉬게 하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감각이 나를 멈춰 세우기도 했다.
읽는 건 좋은데,
왜 이렇게 정리가 안 되지?
왜 나는 자꾸 쓰다 멈출까?
그 질문은
습관처럼 따라다녔다.
조용히 깔린 배경 음악처럼,
늘 어딘가에 흐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단순한 결심을 했다.
‘잘 쓰려고 하지 말자. 그냥 써보자.’
완벽한 문장을 포기하고
거칠고 엉성하더라도,
내 안의 감정을 그대로 붙잡아보기로 했다.
매일 책을 읽고
느낌을 몇 줄 적어보는 것.
감상도 아니고, 리뷰도 아니고,
그저 ‘내 마음이 지나간 자리’를
천천히 따라가는 연습을 했다.
처음엔 참 어색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문장들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내가 문장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문장이 나를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쓰기란, 결국 나를 천천히 이해해 가는 길이라는 걸.
생각을 이해하려 애쓰다 보면
언젠가는 말이 되고,
그 말이 문장이 되어 나를 대신해 주었다.
우리는 다들,
나름의 혼란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걸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안다.
나는 그 모든 감각을 글로 적는다.
읽고 쓰고, 표현하는 삶.
그 모든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나'가 된다.
정리가 안 돼도 괜찮다고,
쓰다 보면 언젠가 나를 이해하게 된다고.
그저 조용히 그렇게 믿으며 쓴다.
나는 지금,
읽는 나에서 쓰는 나로
타인의 시선을 살아내던 나에서
나의 감성을 살아내는 나로
그렇게 조용히,
그리고 단단히,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