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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샤넬로 Jan 08. 2022

또 다른, 한강의 기적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우리에게 강은 이제 또 다른 의미


모든 문명의 시작은 물이 있는 강 주변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유명한  4대 문명의 시초 또한, 살펴보면 강 주변에서 모든 역사가 시작되고 번성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인류에게 강은 삶의 전부였고 생존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렇게 인류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몇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강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존재가 되었다. 

당신에게 강은 어떤 의미인가? 더 구체적으로 '한강'은 어떤 의미로 지금 다가오는가? 질문하고 싶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시대에 따라 강변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는 다양하게 전달되었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강변에 살고 있다는 것은 그렇게 사회적 인식으로 좋지는 않았다. 

특히, 한강 주변에는 나룻배를 운영하는 뱃사공들이 많았다. 그 당시 시절만 하더라도 한강을 이어주는 큰 다리들이 없었기 때문에 서울은 엄연히 말하면 한강을 기준으로 강북과 강남으로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강 주변은 단순히 강북과 강남을 넘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즐비하였고 강가 주변에 살고 싶어 하기보다는 소위 4대 문 근처나 경복궁 도성 근처에 살기를 원하였다. 지금이야 강수 조절 시스템과 수질 정화시스템이 잘 갖춰졌지만, 조선시대만 하여도 비가 많이 내리면 주변으로 범람하고 긴 장마기간이 끝나고 나서는 강특유의  비릿한 냄새들 또한 많이 났기 때문이다. 그저 나룻배를 기다리며 강 건너편의 경치를 구경하는 존재로 강변은 인식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근대화를 거쳐 산업화를 지나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서울의 인구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시점, 우리에게 거주공간은 부수적인 것이 아닌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용적률을 최대화하기 위해 주택보다는 아파트를 지어 올리기 시작하였고 사람이 몰리면서 서울의 땅값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상승하게 되었다. 

산업화의 고도화를 통해 이제 한강에도 강남과 강북을 이어주는 다리들이 설치되기 시작하였고 지하철이 들어서며 역세권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이제는 강변에 사는 것은 또 다르게 말하면 서울에서는 어느 정도 사회적 경제적 안정성을 암묵적으로 표현하는 언어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강변에 살자라고 말하는 것은 메인 주거지역에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누구나 기피하는 곳에 삶의 정착지를 잡는 의미였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강변 살자라고 말하는 것, 특히 한강 주변에서 살자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목표이자 희망이 되고 성공의 또 다른 지표가 되어버린 현실이다. 


삶과 죽음을 동시에 품고 흐르는 한강


누군가에게 한강은 로망의 장소, 누군가에게 한강은 힐링의 장소 그리고 어느 누군가에게 한강은 삶의 마침표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이렇듯 한강은 정말 다양한 성격과 모습을 가지고 있다. 물론, 한강 자체가 인격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한강을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정말 각양각색일 것이다.

나는 문득 한강을 바라보면 무서울 때가 종종 있다. 고요하게 흐르고 있지만 그 수심을 알 수 없고 알게 모르게 많은 귀중한 생명들이 한강에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아침에 보는 한강과 저녁에 보는 한강의 이미지는 무척 다르다. 아침과 해 질 녘의 한강은 활기차고 역동성이 있다. 하지만 저녁의 한강은 한없이 고요하고 깊다. 그리고 그 검은 물결 속에 묘하게 사람들을 홀리기도 한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우리 산업생태계가 극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을 우린 '한강의 기적'이라고 흔히들 말하였다. 쉼 없이 바다로 흘러가는 한강처럼 우리나라도 쉼 없이 선진화의 바다로 흘러갔고 결국 세계화의 흐름에 합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 사고 속에 한강의 기적이라고 명칭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에게 한강은 단순히 강 그 자체만은 아니었다고 본다. 오늘도 늘 변함없이 한강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품고 흘러가고 있다.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역동성과 활기찬 모습을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제를 살아갔던 사람들에 대한 향수와 검은 물결을 내보이며 말이다. 


늘 변함없이 흘러가는 한강


답답해서 한강 공원에 나왔어...


21세기 대한민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르고 급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쉼 없이 전력질주만 하고 있다. 내가 서울에 올라와서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서울 지하철이나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을 힐끔 살펴보는 것이었다. 물론 마스크 때문에 잘 보지는 못하여도 하나같이 표정이 비슷하였다. 초점 없고 기진맥진한 모습들... 부산에 있을 때만 하여도 그렇게 피로도 높은 표정을 많이 보지는 못하였지만, 서울은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치열하게 경쟁하며 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생기보다는 피곤함과 짜증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서울 사람들은 답답할 때 하는 멘트가 있다. "야, 답답한데 한강 공원에 가서 캔맥주나 한 사바리 콜?!"

뚝섬유원지역에 주말만 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먹을 것을 먹으며 하나같이 한강을 바라보기도 하며 한강 건너편의 건물들을 보며 힐링 아닌 힐링을 한다. 

그러고 보면 부산에 살 때는 강과 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아무 생각 없이 바다 너머의 지평선을 볼 수 있어서 좋았었다. 하지만 나도 서울에서는 인천을 가지 않는 이상 그런 시원함과 바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청량함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래서 한강 주변을 가면서도 고향인 부산이 생각난다. 그리고 다시금 생각한다.

서울에서 태어난 분들에게 한강은 또 다른 위로의 대상이었구나... 하지만, 나는 바다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한강을 보면 신기하다가도 답답함을 느낀다. 건물에 둘러싸인 한강이 어떨 때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렇듯 이제 한강은 누군가의 푸념과 누군가의 스트레스를 흘려보내는 역할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한강의 물이 흘러가는 시대에 태어나 한강만이 주는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혹시 알겠는가? 가까운 미래에는 한강물이 증발할 수도 있을지...


한강을 바라보며...

한강은 늘 변화해서 좋다


앞으로의 한강도 우리에게 다양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고 본다. 과거와 오늘날에는 도전과 발전의 상징성을 가져다주었다면, 지금부터는 새로운 전환점의 장소 그리고 또 다른 기회의 발견의 장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한강이 특별한 의미가 아니어도 좋다. 하지만, 한강은 앞으로도 누군가에게는 나아가거나 지치고 힘들 때 영감과 힐링을 주는 존재로서 계속 있을 것은 분명하다. 단, 우리가 한강을 함부로 하지 않고 존중하고 가꾸어나가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한강 주변으로 열심히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차들을 보며, 차 한잔을 마시며 생각한다. 

나도 이 서울이라는 곳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겠지?!... 뭐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니깐...

오늘도 한강의 물은 쉼 없이 바다로 흘러가고 서울의 일상도 브레이크 없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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