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 가장 처음으로 만났던 남자친구를 떠올렸다. 첫 번째 책장의 남자친구는 20살에 만났던 D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잠깐 만났던 앳된 얼굴들도 잠시 스쳤지만, 어린아이들의 역할 놀이 같아 굳이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도 첫 만남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해가 하루 끄트머리 나지막이 내려앉고 하늘이 다홍색으로 물들어가던 3월 초순 저녁.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가로등불이 거리를 밝히는 대학가 골목.
이제 막 봄이 되었지만 여전히 차가운 기운이 남아있는 공기 사이 왁자지껄한 소리와 스근한 알코올 향기가 맴돈다. 대학로 학기 초 거리엔 이제 갓 자유를 맛보러 온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D를 처음 만난 건 한 막걸리 집에서 과팅이었다. 전통적인 인테리어에 다양한 안주와 달달한 막걸리를 팔고, 크고 작은 룸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기 많던 술집이었다. 1학년이 지나면 할 수 없으니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하라는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들어오는 과팅이란 거절을 마다하지 않고 나갔던 차였다.
작은 룸에 친구들과 앉아 대학 생활 첫 과팅에 대한 설렘을 나누고 있던 차에 문이 열렸다. 다섯 명 중 세 번째 남자가 인사하며 들어오는 순간, 영은 첫눈에 그에게 반했다.
가로로 시원하게 트여있지만 선한 눈매에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보조개까지 이어지는 입매가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거꾸로 봐도 남녀노소 좋아할 만한 선한 인상의 사람. 꽤나 훤칠한 키에 군더더기 없는 몸이었던 그가 입은 단정한 청자켓은 풋풋함을 더했다.
처음엔 영의 취향적인 외모에 끌려 호기심을 가졌지만 D는 대화할수록 괜찮은 사람이었다. 말 주변이 화려하진 않지만 배려심 있고 상대를 살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주변을 온화하게 만드는 사람. 미성숙한 이상형관에 가장 큰 틀을 마련한 사람. 첫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