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취재하던 기자, 한의대에 들어가다-왜, 서른넘어 한의대에 갔나
2020년 11월 새벽, 수능 고사장으로 지정된 여의도 모 고등학교에 갔다. 수능 현장 취재를 위해서였다. 날씨가 추워 검정 롱패딩으로 온몸을 싸매고 갔다. 당시 사회부 경찰팀 소속으로 사건사고를 취재하는 게 주된 임무였지만, 수능은 비행기 이착륙시간도 바꾸는 거국적인 행사 아닌가. 그날 하루만 경찰팀에서 교육팀으로 파견을 갔다. 수능은 기자들에게도 중요한 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주어진 임무는 수능 전후 수험생과 학부모들 인터뷰 따기. 코로나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던 시기였다. 코로나로 인해 그 해 수능은 한차례 미뤄졌고, 수험생들은 마스크를 쓰고 발열 체크를 통과해야만 고사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고사장 책상엔 사상 최초로 칸막이도 설치됐다. 지금은 벌써 전생처럼 여겨지지만, 코로나를 모두가 처음 겪어봤던 터라 '기삿거리'가 참 많았던 현장이었다.
당시 인터뷰를 했던 한 수험생의 어머니는 "마스크를 쓰고 고3을 보낸 자녀가 안쓰럽다. 1년만 더 애를 늦게 낳을 걸 그랬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나도 학생들이 안쓰럽고, 기특했다. 수능이라고 하면 각자 떠오르는 추억 하나쯤 있지 않나. 난 수능 끝나고 엄마와 먹었던 오리고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아득한 고3 시절과 오리고기가 잠시 머리를 스쳤을 뿐, 그날 저녁 퇴근길을 끝으로 수능은 이제 나와는 아예 상관없는 이벤트일 줄 알았다.
2020년 11월, 수능시험장 앞의 모습. 일부 취재진과 수험생, 그리고 그 가족들이 뒤엉켜있다.
3년 후인, 2023년 11월. 마포의 모 고등학교 수능 시험장에 수험생으로 앉아 수능 문제를 풀었다. '수능 직접 봐보니... 체감 난이도는?' 따위의 기사를 쓰기 위해 수능을 보러 간 게 아니었다. 대학을 다시 가기 위해서였다. 그날, 연차를 쓰고 회사를 가지 않았다. "연차 쓰고 어디 놀러 가냐"는 동료의 물음에 "가까운 일본이나 가볼까 한다"라고 얼버무렸던 기억이 있다. 물론, 수능을 보는 건 친한 회사 동료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수험장을 오가는 길, 취재 나온 기자 동료들과 마주치지 않을까 마음 졸였다. '인터뷰하러 나한테 다가오면 어떡하지?'라는 괜한 걱정도 했다. 다행히, 내가 아는 동료들은 마주치진 않았다. 그날, 나이 많은 수험생인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검정 롱패딩을 입고, 머리는 하나로 질끈 묶어 올렸다. 남들에게 고3처럼 보였을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돌이켜보니, 수능 현장 취재를 갔을 때 입은 그 롱패딩을 입고 수능을 치렀다.
"요즘에 직장인도 수능을 다시 엄청 본대. 너랑 동갑인데 대기업 그만두고 수의대 준비하는 사람도 있더라. 너도 아직 안 늦었어"
'직장인들의 수능 열풍'을 주제로 한 기획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를 마친 선배가 나에게 던진 말이다. 나한테도 수능 보라고 한건, 95%쯤은 농담이었을 거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 말 한마디가 날 수험장으로 이끌었다.
취재를 꼼꼼하게 한 선배 덕분에 30대도 논술전형, 수시전형에 지원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시간이 날 때면 네이버 검색창에 '30대 수능' '직장인 한의대 도전' '의대 장수생' 키워드를 검색해 봤다. 내가 즐겨보던 연애프로그램 <나는 솔로>의 6기 출연자 'ㅇ'도 대기업을 그만두고 한의대에 진학했다는 소식도 접했다. '그럼 나도 해볼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곧장, 출근 전과 퇴근 후 시간을 쪼개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운 좋게, 또 얼떨결에 한의대에 합격했다.
합격을 하고 나선, 농담을 던졌던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가장 먼저 합격 소식을 전했다.
"저 사실은... 그 얘기 듣고 진짜 수능을 봤는데, 합격해 버렸어요...
어떡하죠? 일단 선배만 알고 모른척해주세요"
그 이후로도 몇 번 선배와 고민을 상담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에 남아야 할지, 한의대에 진학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후자를 택했다.
선배의 농담 한마디에 왜 그토록 마음이 흔들렸을까. 마침, 직장 생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던 터라 그랬을 거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세상을 뒤흔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었다. K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민들을 했을 뿐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대로 50살까지 이 일을 하면, 그 때도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 월급이 썩 나쁜건 아닌데, 조금 아쉽긴해", "나랑 잘맞는 사람들이랑만 일하면 진짜 좋을텐데...회사생활은 그렇지가 않아" 등의 다소 뻔한 고민이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어릴 적부터 꿈꾸던 일을 하더라도 회사에서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불순물들이 끼기 마련이다. 여기서 불순물이라 하면, 나와 맞지 않는 상사, 내 생각과 어긋나는 조직의 목표와 방향, 그 상사의 지시와 조직 목표에 따라야만 하는 직장인의 숙명 등일 테다.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만날 수 있는 변수들이다.
오해는 말라. 회사 생활은 꽤나 행복했으며, 한때는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저연차 때 "와 내가 원하는 걸 취재하는데 돈도 주네?"라고 건방진 생각을 했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일을 할 때 행복하지만, 또 괴롭기도 했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일을 사랑하는데 사랑하면 사랑하고 집착할수록 괴로운 이 마음. 이런 내말을 듣고 한 동료는 "너는 기자 일을 연애처럼 했구나"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나의 6년간의 회사생활을 한마디로 잘 정리해준 한마디였다.
내가 거쳐온 업(業)에는 아직도 애정이 가득 남아있고, 떠나온 회사와 동료들에 대한 감사함도 크게 간직하고 있다. 덤으로, 회사 내에서 직장동료 이상의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도 많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전 직장과 직업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가끔 이런 생각은 한다. "그때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지만 않았다면, 지금도 회사를 계속 다녔을까?"라는 생각말이다. 이 말을 들은 전 직장 동기는 나의 우문에 현답을 내려줬다. "네가 그때 퇴사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준 상사를 만난 건 축복이고, 그 사람은 너한테 제2의 인생을 열어준 은인이야"라고 말이다.
※해당 글은 과거 브런치북 <30대, 한의대 들어가보니>에 올렸던 글을 재가공하여 재연재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