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코테레 Jun 19. 2017

12. 실패한 게 아니야.

좌충우돌 캐나다 유학 이야기

12.


어느 화창한 여름날.

홈스테이 가족들이 다 모였다. 결혼해서 출가한 큰 딸 가족, 타주로 대학교를 간 둘째 딸, 자신의 사업을 하느라 바쁜 큰 아들, 독립된 생활을 즐기는 둘째 아들. 모두 가족행사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홈스테이 아저씨가 나에게 말한다.


"코코테레, 다들 자전거 타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자전거 탈 줄 알아? 못 타도 괜찮아, 가르쳐줄게. 갈래?"


자전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주 어렸을 적에 집 앞 골목에서 무릎 까져가며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언제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도 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단순히 생각하기로 했다. 에이, 금방 감 찾아서 타겠지. 

출처: health.usnews.com

캐네디언들은 자전거를 많이 탄다.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 타고 학교도 가고 출퇴근도 하고 그냥 자전거 타기를 즐기기도 한다. 실제로 이들은 주말이나 휴일에 가족들끼리 공원에 자전거 타러도 자주 가고 아웃도어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다. 우리 홈스테이 가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이가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아직도 아웃도어를 즐기는 홈스테이 아주머니, 아저씨를 보고 한국의 우리 엄마 아빠랑 참 많이 다르다고 느꼈었다. 


그나저나 난 자전거가 없는데 어떻게 같이 타자는 건가 했더니 아들이 어렸을 때 타던 자전거가 있으니 그거 사용하면 된단다. 이들의 골격은 동양인과 달리 커다랗기에(?) 애들이 타던 자전거가 아담한(?) 나에겐 딱이었다. ㅎㅎ


자 출발! 아저씨의 커다란 밴에 자전거 싣고 작은 딸 차에도 가득 싣고 어디론가 한참 달려갔다. 근처 큰 공원에 가는 줄 알았더니 웬걸. 도착하니 나이아가라 폭포. 

출처: Joy Of Travel

다들 자전거에 몸을 싣고 씽씽~ 나이아가라 폭포를 끼고 싸이클링을 즐긴다. 그냥 관광하러 왔을 때의 나이아가라 폭포와 지금의 폭포는 느낌이 달랐다. 그때는 관광객으로 연신 감탄하며 사진 찍기 바빴지만 지금은 내가 정말 캐네디언이라도 된 듯이, 로컬인 양 유유히 자전거로 산책하고 있었다. 이런 대자연을 만끽하며 자전거를 타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너무 오랜만에 타서 그런지 운동부족으로 저질체력이 발동한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허벅지가 힘들다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다른 가족들은 아주 여유롭게 즐기고 있고 나만 힘들어 보였다. 난 할 수 있다를 세뇌시키며 버티고 있었다. 잠시 후, 홈스테이 아주머니께서 난 그만 타겠다고 차로 돌아갈 테니 끝나면 연락하라고 데리러 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곤 나를 콕 집어 말을 이어갔다.


"혼자 가면 심심하니까 코코테레가 나랑 같이 돌아갈래?"


오 마이 갓! 홈스테이 아주머니 짱! 구세주 등장! 아무렇지 않게 그러겠다며 아주머니를 따라갔다.

차에 자전거를 싣고 우리는 따뜻한 차 한잔 하자며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캐나다 대표 커피숍 팀홀튼으로. ㅎㅎ


"힘들면 그만둬도 괜찮단다, 아가야."


잉? 갑자기 아주머니가 하신 말이었다. 알고 계셨었다,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안간힘을 써서 버티고 있다는 것을. 그걸 아시곤 날 위해 그만 타겠다고 나를 데리고 오신 것이었다. 어느 나라나 엄마는 다 아나보다. 

출처: The Odyssey Online

"그건 실패한 게 아니야. 잠시 쉬어가는 거지. 힘들면 앉아서 쉬어가기도 하고 다음에 다시 하면 되는 거야."


한국에서 지내온 내 유년시절,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중도포기란 없었다. 남들도 하는데 나도 해야 했고 잘해야만 했다. 내가 가진 강박관념이었기도 했고 한국 사회가 안겨준 유산(?)이기도 했다. 다들 A라고 하는데 넌 왜 B라고 하냐고 구박하며 정작 그 이유도 듣지 않고 네가 잘못된 것이라고 몰아세우는 사회에서 자란 나는 이견을 내는 것은 무리에서 도태되는 길이라 믿었다. 모두 다 똑같이 시작해서 똑같이 끝내고 다른 것이 하고 싶어도 남들이 하는 똑같은 것을 해야 튀지 않고 무난히 보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도태되어 아웃사이더가 되기도 했다. 그런 습성이 나에게 뿌리 깊게 박혀있었나 보다. 

출처: Huffington Post

홈스테이 가족이 모두 자전거를 타고 루트를 완주한다고 해서 나도 꼭 완주할 필요는 없다. 다른 루트로 우회할 수도 있고 걷기 산책을 해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난 그동안 그래 왔듯이 모두와 같이 행동하고 모두가 생각하는 대로 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만 그만 두면 도태되겠지, 나만 멈추면 저들이 날 뭐라고 할까. 1도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다문화 국가인 캐나다에서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그 누구에게도 이것만 해야 한다고 네가 틀리고 내가 맞는 것이라고 하나의 일관된 생각이나 행동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나와는 다른 행동을 한다고 손가락질하거나 질타하지 않는다.

출처: wikihow.com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생각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친구들과의 수다에서도 내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토론할 때에는 뒷받침할 만한 이유를 나열해 나의 의견을 내세울 수도 있게 되었다. 자연스레 상대방의 의견도 존중하며 내 생각을 내세우는 법을 익혔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으면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어찌하여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됐는지 들어봐야 그 의견에 반박도 할 수 있고 내 의견을 더욱 효과적으로 내세울 수 있다.


의견이 같을 수는 있지만 모두가 다 같을 순 없다.
나와 다른 점을 받아들이자. 



매거진의 이전글 11. 응, 나 담배 피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