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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Sep 22. 2020

비라아사나

영웅자세

Vira - 영웅의

asana - 자세


발목과 발등 그리고 무릎을 타고 흐르는 찌릿한 통증이 익숙해질 때까지 비라사나로 앉아 있는다. 그러다 조금 더 발등 중앙이 바닥에 닿도록 발 뒤꿈치를 비트는 순간 뒷골이 찡할 만큼의 통증이 찾아온다. 나는 발목 변형과 무릎 변형이 꽤 있는 편이다. 조금만 수련을 게을리하면 발목이 무지 뻣뻣해지고 무릎이 시큰거린다. 이 발목과 무릎에 쌓인 까르마는 이번 생에 있었던 꽤 낭만적인 순간들 덕분일 것이다.

어렸을 때 발레 하는 걸 아주 좋아했다. 타고난 짧은 팔다리로 우아한 백조보다는 어딘가 어설픈 병아리 같은 형상이었지만 발레가 정말 좋았고 발레 하는 내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꽤 오래 발레를 했는데 성장기에 좀 잘못된 방식의 훈련(?)을 했던 것 같다. 억지로 발등을 많이 포인 시켜서 '고'를 만드려고 했고 고관절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하게 턴아웃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무릎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흔히들 변형 케이스로 자주 이야기하는 X자형 다리가 되었다. 무용 전공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중학교 어느 시점쯤 결국 그만두게 되면서 큰 로망이었던 토슈즈도 제대로 신어보지 못하게 되었지만, 설레며 레오타드를 챙겨 입고 빙그르르 돌고 폴짝거리면서 발레 하던 그때, 무릎과 발등에 낭만의 까르마가 쌓인 첫 순간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 기억나는 때는 갓 스무 살이 넘어 한창 열심히 다양한 예술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하던 시기의 모습이다. 지금은 신기도 겁나는 높고 아슬아슬한 구두를 신고 잘 치지도 않는 기타를 굳이 매고 경사진 길이건 먼 길이건 씩씩하게 걸어 다녔다. 기타 실력은 연습을 하지 않아 지금도 하나도 늘지 않은 채 제자리다. 무리하게 구두를 신고 열심히 기타를 메고 산을 타고 다닌 덕에 이십 대 초반엔 매주 한의원을 가서 발등이랑 발목에 침을 맞았고 양 발목에 돌아가면서 발목보호대를 하고 다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미련하고 어리석을 수 있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게 퍽 낭만적이었다. 그렇게 걸어만 다녀도 콧구멍에 바람이 들어와 심장이 콩닥콩닥거렸다!


또 다른 기억도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일인데 엄청 추운 겨울에 연극에 몰두할 때가 있었다. 그 당시에 우리 연극의 연출을 맡고 있던 사람이 애인이었는데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나는 연기를 정말 정말 못했던 데다가 가뜩이나 자기 깨기도 안되는데 연출이 애인이니 오히려 위축이 되었고 난 이 대본의 연기는 자연스러운 스타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공연할 곳이 중극장이었기 때문에 공연장  크기에 맞도록 액팅을 조금 더 크게 할 것을 자주 요구받았고 그것이 벅차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연극에서 내가 해야 했던 대사 중에 "이혼해"라는 대사가 아주 중요했었는데 나는 그 대사를 무대 하수 쪽으로 걸어가다 멈추어 서서 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결혼도 이혼도 해본 적이 없거니와 애 둘을 가진 적도 가세가 기울어 공장에서 일을 하다 손가락이 잘려본 적도 없었다. 얼마나 무게 없이 그 대사를 쳤을까. 지금도 여전히 그런 경험은 없지만 이제는 제법 묵직하고 나직하게 대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연출님은 내 대사와 그 대사를 하기 전까지의 호흡과 걸음이 너무 쉽고 가볍게 느껴진다며 절벽이나 낭떠러지로 걸어가는 심정으로 대사를 하라고 디렉팅 해주셨다. 살면서 절벽에서 떨어지러 걸어가 본적은 더더욱 없고 주위에도 없었으므로 영 못했다. 그러자 그 연출님은 블로킹을 잠시 멈추고 나를 진짜로 눈을 감고 무대 위에 있던 대도구 끝으로 걷게 했다. 좋은 디렉팅이어서 나는 확실히 그런 감각과 호흡을 느껴볼 수 있었는데 문제는 정말로 나는 그 가상의 낭떠러지에서 떨어졌고 그러면서 발목을 심하게 접지르고 말았다. 그 사람은 끝에서 내가 떨어지면 안아줄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미 발목은 접질려진 후였다. 그 사람과는 시간이 흘러 헤어졌고 연극도 무사히 막을 내렸지만 발목은 꽤 오랫동안 시큰거렸다. 최근에 한의원을 다니고 소마요가를 책으로 공부하며 몸을 살쳐보다 알게된 사실인데 왼쪽 발목이 의식하지 않으면 여전히 조금 돌아가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습기도 하고 퍽 낭만적인 순간들이 쌓여 내 발목과 무릎은 변형되었고 그 까르마가 아직도 몸과 마음에 남아있다. 고통은 사라졌어도 무늬가 되고 변형이 된 어떠한 결로,


  비라사나로 앉아있다 보면 가끔 뒷골이 당길 만큼 고통스럽다. 요가 자격증을 따고 나서도 피하고 싶었던 기본 아사나 베스트 3 중에 하나였다. 그래도 그 낭만의 순간들은 무언가 변화될 만큼의 커다란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그 변화를 한 호흡에 다시 제 자리로 돌릴 수는 없겠지 생각하며 고통도 낭만도 떼어놓고 바라보려고 한다.


비라아사나, 영웅좌의 효과는

1. 발의 피로제거 하지정맥류에 도움

2. 무릎의 관절염과 류머티즈에 도움 - 점진적으로 수행해야함

3. 발바닥 중심부의 아치를 되 살려주므로 평발에 좋다.

4. 중증의 위장통증을 완화시켜주며 위의 팽만감을 경감시켜주므로 식후에도 바로 할 수 있다.


고통도 낭만도 떼어놓고 바라보며 지금 여기에 머물기를 연습한다. 그저 들숨 날숨을 반복하며 가만히 존재한다. 모든 낭만적인 순간도 그로 인한 고통도 그들을 연결 짓는 것도 모두 나요 또 내가 아니라는 마음으로, 그냥 가만히,



(2019)

2020.09.21. 에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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