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정복하는 길,
"운명을 정복하거나 운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이 운명이 누구의 것인지를 탐구하여, 운명에 얽매이는 건 에고일 뿐이고 '나' 가 아니며, 에고 또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에게 완전히 순명함으로써 에고를 죽이는 방법이다. 이는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신이여, 모든 일은 내가 아니고 당신이 합니다"라고 선언하면서, '나'와 '나의 것'이라는 느낌을 완전히 포기하고, 모든 것을 신에게 내맡기는 방법이다.
신에게 이런저런 것을 해달라고 간구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순명이 아니다. 참된 순명은 사랑 그 자체를 위한 조건 없는 사랑을 신에게 바치며,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야 한다. 심지어는 해탈까지도 바라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자기탐구를 통해서든 헌신의 길을 통해서든, 에고를 완전히 소멸해야 운명을 정복할 수 있다. "
Sri Ramana Maharshi
라마나 마하르쉬
운명에 끌려다닐 것인가 아니면 운명을 정복할 것인가. 신께 순명할 수 있는가?
자기탐구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에고덩어리로 살아온 나는 있는 그대로의 존재의 신성을 인정하기보다는 내가 되고 싶은 어떤 것이 되려하는 상태나 이상을 좇으며 주로 살아왔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고 그래서 성취해내는 것들이 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계속해서 소진되고 고갈되는 것 같았다. 알면서도 외면했다. 소진시켜서라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증명해내는게 옳다고 믿었고, 에고가 이끄는 삶의 관성에 맞춰 살았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비극과 희극을 오가면서 아슬아슬하게, 살았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불쑥 찾아온 번아웃과 무기력은 지독하고 끈질기게도 나를 따라다녔다. 나를 '갈아넣어' 만들곤 했던 작업들도 무리해서 유지했던 인간관계도 대부분 언젠가는 마주하기 부담스러운 것이 되곤 했다. 기를 쓰고 애를 써서 만들어 두고는 도대체 이런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실제로 별 소용없는 것들에 매여있기도 했다. 그 시간들이 꼭 불행하기만 했던건 아니었지만 냉탕과 온탕을 쉴새없이 오가다보면 심장에 무리가 오는 순간이 꼭 찾아오듯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춰야 할지 나 스스로도 갈피를 못 잡곤 했었다.
더 나은 어떤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할 것.
있는 그대로를 바라본다.
내면으로 마음껏 침잠해도 좋은 삶은 아등바등 살다가
은퇴하고 빚갚고 모든 책임을 다 한 후에
허락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내면으로 충분히 침잠하여 오롯이 존재하는 하루가 되길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