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e-ducate 다

by 코딩커피

교육을 영어로 "education"이라고 하고,

교육을 하는 것을 영어로 “educate”라고 한단다.


educate 라는 단어의 어원은 e-ducate 이다.

e- 는 "밖으로 (out)"라는 의미의 접두사이고,

ducere (ducate) 라는 단어는 "이끌다 (to lead)"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동사라고 한다.


그래서, "교육을 한다"라는 것의 의미는 영어의 어원만을 따져보면

결국, 무언가를 "밖으로 이끌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한자로 교육(敎育)은 "가르칠 교"와 "기를 육"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한자로 교육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가르치고 길러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학교와 학원에서 선생님처럼 가르치는 이가 "교육"이라는 것을 하면,

아이들처럼 배우는 이는 "학습"이라는 것을 한다.


이번에도 "학습"이라는 행위를 영어로 표현을 해 보자면 study와 learn 으로 나뉜다.

study 는 배우는 행위를 의미하고, learn 은 익히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는 학습(學習)을 한자로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학습은 “배울 학”과 “익힐 습”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학습은 결국 배우고(study) 익히는(learn) 것을 의미한다.


교육과 학습에 대해서 영어의 어원과 의미를 살펴보고, 한자를 풀어서 살펴본 이유는

단어에 너무나도 분명하고 명확한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교육이라는 것은

아이의 잠재력을 발견해서 밖으로 이끌어 내어서 아이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게 하고,

아이가 가진 소중한 재능을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르치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길러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과연 진짜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배고프다는 아이에게 "뭐 먹고 싶어?"라는 이 당연한 물음보다,

"밥 먹으면 돼!"라며 그냥 나 편하자고 입에 억지로 떠 먹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이의 잠재력을 밖으로 끄집어내어서 세상에 드러나게 만들려면,

먼저 아이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은 가르치기 이전에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교육은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아이와 함께 살 부비며,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아이와 "함께"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어렵고, 힘들어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교육은 "Testing"이 아니라, "Assessment" 여야 한다.


"Testing"과 "Assessment".

둘 다 '시험'이나 '평가'로 번역되지만, 그 본질은 다르다.


Testing은

'점수'로 계층을 나누고, 분류를 하여, '성적'이라는 결과만을 위해서 줄을 세우기 위한 수단이다.

정량(定量)적인 결과로 선발과 탈락을 결정한다.


Assessment는

아이의 현재 상태와 가능성을 이해하고, 기록하며, 지원하기 위한 '분석'이다.

정량보다 정성(定性)에 가깝고, 분류보다 성장에 목적을 둔다.


아이가 무엇을 잘하며,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알아야 한다.

아이가 잘하는 것은 더욱 잘하게 이끌어주고,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은 아이가 잘하는 것을 이용해서 잘 해낼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주어야 한다.


결국, Assessment는 아이가 가진 재능을 분석해서 밸런스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스스로가 가진 재능의 조화로움 속에서

아이가 한 사람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교육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숫자 몇 개로, 심지어 전혀 객관적이지도 않은,

국영수 과목 점수로 절대로 평가할 수 없는 다양한 재능과 관심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너무나도 다양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어처구니없게도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도 않은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의 기능적 점수를 바탕으로 재단되고 똑같은 로봇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이가 가진, 그 수많은 능력의 10분의 1, 100분의 1도 되지 않는,

3개의 과목 점수 때문에 그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좌절감을 먼저 맛본다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것은

아이가 잘하는 것을 찾아내어 주고,

아이가 잘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해 주고,

아이가 즐거워서 행복해하는 것을 더욱 잘해서 환한 빛으로 빛날 수 있게 함께 해 주는 것이다.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

아이들의 푸른 빛은 가르치는 이의 푸름에서 나왔지만,

아이들은 훨씬 더 푸르를 수 있다. 아니, 맑디 맑은 푸른 하늘처럼 훨씬 더 푸르러야 한다.


우리는 흰색 도화지에 선화(線畵)를 그려놓고, 아이에게는 색칠만 하라고 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 도화지는 아이의 도화지이고, 자신의 미래를 한땀 한땀 그려 넣을 무한한 가능성의 캔버스다.

어설픈 그림으로 아이의 미래를, 아이의 한계를 결정지으려 해서는 아니된다.


흰색 도화지에 선화를 그려놓고 아이에게 줄 것이 아니라,

순백의 캔버스에 뭉텅뭉텅 실수 투성이의 색칠을 응원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의 실수에 우리의 응원은 아이 스스로 솟아오르는 미래를 꿈꾸게 하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 기성세대는, 우리 어른들은...


우리의 치열함 속에서 일궈낸 지식을 단순히 Teaching만 하여서는 아니된다.

심지어, 이제 Teaching은 인공지능이 훨씬 더 잘한다.


우리의 수많은 전철(前轍) 위에서 깨달은 지혜를 "Coaching"해야 한다.

아이들이 Teaching된 지식을 Study하고, 그 지식 위에서 "청어람"이 되도록 Learn할 수 있게

우리의 경험으로 Coaching해야 한다.


우리가 실패했고, 우리들도 가보지 못했던 그 길을 힘차게 걸어가야 하는 아이들이다.


우리는 무슨 자격으로, 무슨 권한으로,

어떤 화려한 꽃으로 세상에 수(繡) 놓을지 모르는 우리들 아이의 목을 비틀어 조화(造花)로 만들려 하는가.

우리들의 아름다운 성공과, 그리고 더 아름다운 실패 위에 어떤 세상을,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지 모를 우리 아이들에게 비겁한 해코지를 하려 하는가.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였다.

백년의 거대한 흐름을, 백년의 광대한 큰 그림을 준비하는,

우리 아이들을 망치는 우(愚)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의 우리는 가슴 먹먹함을 느껴야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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