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은 없다

내면이란 지도를 펼치다

by Be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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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고 생각한 부모의 보살핌

태어나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품 안에서 일상을 보내며 부모의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취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면서 지낸다. 시간날 때마다 연락드리고 지방으로 여행도 같이 가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님과 더더욱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다. 가정환경은 인생의 거의 대부분에 영향을 준다. 진로는 당연하고 살아가는 모습마저도 자신의 성장배경과 가정환경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모두가 좋은 가정환경에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뜻하지 않게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가정폭력으로 인해 따뜻한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자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행복한 가정생활을 당연하다고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어릴 적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 어린이집, 유치원에 들어간다. 그 이후에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중고등학교까지 들어간다. 입시 전쟁이 시작된다. 당연시 여겨지던 부모의 보살핌이 어느 순간부터 부담과 불안감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사춘기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주변환경의 변화와 성적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부모의 보살핌에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과도한 부모의 보살핌은 자녀의 진로를 어둡게 만들고 스스로 자녀와 멀어지게 만드는 지름길인데 이를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자녀는 부모의 보살핌에 대한 감사함을 잊어버린다.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대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될 것이며 더 이상 부모의 조언에 경청하지 않을 것이다. 관계의 거리를 좁히면 좁힐수록 당연함이란 늪에 빠져 고생한 부모의 마음도 몰라주고 자기 고민마저도 부모에게 털어놓지 않을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녀의 미래를 본인이 쥐고 있는 것이며 그 자녀는 대학을 들어가서도 스스로 독립하는 것에 대해 방황할 게 뻔하다. 확실한 답과 정해진 미래는 도전과 시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만든다. 오히려 입시 때 많이 실수하고 이것저것 많은 시도를 해본 사람들은 대학이나 취업을 한 이후에도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자신의 결점을 빨리 경험할수록 자존감도 높아지는 법인데 오히려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몰아붙인다면 한계와 변명에 최적화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부모의 보살핌. 어릴 적 사랑받았던 따뜻한 보살핌을 받은 사람들은 그 기억을 잊지 않으며 살아간다. 반면에 따뜻한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거나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나간다. 당연히 따뜻한 보살핌을 받은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다. 그래서 삶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당연시 여겨지는 가정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가정에서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당연히 성장환경이 불우하고 좋지 않다고 해서 당연히 실패한다고 볼 수는 없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성공한 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돈과 부모가 없다고 해서 한 개인의 삶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릴 적 각박한 성장환경이 성공에 엄청난 원동력이 되어 큰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대부분 사람들의 당연한 인식을 거스르는 성공이야말로 정말로 멋진 성공이며 그런 성공이 많아질수록 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다.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 난 그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가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사람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건강한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부모의 보살핌, 그런 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적 부모님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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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고 생각한 회사의 업무와 출퇴근

평온하고 즐거운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준비를 한다. 아침 먹을 시간에 커피 한 잔이라도 더 마시고자 근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카페인 수혈은 직장인들에게는 거의 필수 코스가 아닐까 싶다. 오전 일정이 시작되고 한 주의 일정을 계획하기 위해 팀별로 미팅을 한다. 오프라인 미팅, 원격 미팅 등 미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잊고 있던 긴장감과 부담감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아... 오늘도 변함없이 시작되는 밀물같은 업무가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여기저기 솟구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업무에 대한 책임을 무시할 수는 없기에 조용히 내 자리로 돌아와 맡은 업무를 수행한다. 오전 업무가 끝나고 팀원들과 점심식사를 하러 간다. 점심을 먹으며 팀원들 각자 주말의 이슈들과 일상을 공유한다. 점심을 먹고 난 이후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각종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업무에 대한 대화, OTT에 대한 대화, 여행에 대한 대화... 주제는 저마다 다양하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일정을 소화한다. 오후는 참으로 시간이 길다. 오후에 졸음이 쏟아지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졸음에 지면 퇴근을 제때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졸지 않기 위해 업무에 집중 또 집중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서서히 퇴근준비를 한다. 퇴근하기 전에 포텐 터지는 경우가 있어 퇴근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시에 퇴근한다.




나는 경기 오피서이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기본으로 1시간이 넘는다. 출퇴근 다 합치면 아마 3~4시간 정도 될 것이다. 서울 사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현실을 자각하고 1시간 20~30분 이상이 걸리는 거리를 퇴근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개인 시간이 2~3시간 정도 남는다. 그렇게 2~3시간 보낸 다음 바로 취침을 한다. 흠...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일반적인 직장인의 삶처럼 보인다. 내가 첫 직장을 들어가고 퇴사를 할 당시에는 출퇴근에 대한 깊은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하루가 힘들었고 또 힘들게만 느껴졌다. 당연히 힘든 것이고 당연히 업무는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문제없는 출퇴근이 지속되면서 매너리즘이 더해졌고 취업에 성공했다는 감사함과 설렘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남은 것이라곤 직장인의 무거운 부담감과 압박감 그리고 주말에도 해결되지 않는 피곤함이었다.




첫 회사를 퇴사한 이후 두 번째 회사를 들어갔다. 첫 회사의 사례를 고려하여 두 번째 회사에서는 그래도 좀 잘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직을 한 이후에 출퇴근 역시 첫 주에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취업 버프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또 다시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그 이후부터 무거운 부담감과 압박감은 또 다시 찾아왔다. 게다가 협업을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슈들 때문에 더더욱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좀처럼 생겨나지 않았다. 출퇴근에 대한 매너리즘과 업무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면서 또 다시 고민의 늪에 빠졌다. 뭔가 내가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경험하면서 업무의 이상과 현실에 대한 괴리감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사실 그때 내가 하고 있는 업무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직을 한 이후 마음을 가볍게 먹고 출퇴근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 스스로의 관점에서만 취업과 출퇴근을 생각해봤지 다른 관점에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취업이 주는 의미, 출퇴근이 가져다 주는 의미. 그건 단순히 내가 직장을 다닌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당연한 취업은 없었고 당연한 출퇴근도 없었다. 취업을 했다는 것은 내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며 경쟁에서 이겼다는 것이다. 출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버스와 지하철에서 콩나물처럼 러시아워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취준생의 꿈을 실현한 것이다. 취업이 쉽지 않기에 출퇴근도 쉽지 않다. 그렇게 흔하게 바라보는 일상마저도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못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나도 저 경험을 해보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커지는 사람들 사이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려봤다. 나는 취준생의 마음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른 세계의 사람들 소식보다 그저 지금 내 앞에 있는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얻었고 당연하지 않은 위치에 있음에도 지금의 현실을 부정했으며 미래가 암담하다고 생각했다. 1인칭 시점에 갇힌 나의 모습은 이기적이었다.




나는 최근에 이직을 했다. 요즘 취업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이직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이직을 한 이후에 알았다. 당연한 돈벌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취업을 하고 직장에 들어가 일을 하다 보면 당장의 현실이 힘들게 느껴져서 당연하지 않은 위치에서 당연하지 않은 불평과 불만을 할 수도 있다. 심지어 좋은 회사와 좋은 환경에 있음에도 그런 상황이 분명히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취업을 하기에 앞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통해 그 회사에 들어왔는지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채용 전형이 많고 채용 절차마저 만만치가 않은데 그 어려운 과정 다 뚫고 취업에 성공을 했다. 하지만 그 힘든 과정을 통과한 이후 어느 순간 당연함의 늪에 빠진다면 이직을 하더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것은 없다. 1년을 일하든, 2년을 일하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당연한 게 일상이 된다면 삶에 대한 소중함이 결여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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