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된 사랑

내면이란 지도를 펼치다

by Be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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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참 어렵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쉽게 느껴질 수 있는 게 사랑이다. 예전보다 사는 게 편리해진 것은 맞지만 왠지 모르게 사랑은 더더욱 어렵고 부담스럽게만 느껴진다. 사랑의 의미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1. 이성의 상대에게 성적으로 이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의 상태

2. 부모나 스승, 또는 신이나 윗사람이 자식이나 제자, 또는 인간이나 아랫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위하는 마음의 상태. 때로, 자식이나 제자가 부모나 스승을 존경하고 따르는 마음의 상태

3. 남을 돕고 이해하고 가까이하려는 마음

4. 사람이 가치 있는 사물이나 대상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힘


한창 혈기왕성한 시기에는 1번을 사랑으로 생각할 것이고 시간이 지나 성숙함이 더해질 때 2번과 3번에 대한 의미를 몸소 느끼게 된다. 4번의 경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이나 관계가 있다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힘이 있다.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이끌어내는 힘이 있으며 삶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때로는 그 힘이 지나친 경우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힘을 조절하며 사랑을 잘 키워가는 경우도 있다.




저 4가지 의미만을 놓고 사랑에 대해 논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사랑은 늘 자기 옷을 바꿔 입고 사랑인지 아닌지 구분을 못하도록 눈앞에 보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언제나 긍정적인 영향만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사랑 때문에 불안감이 더 커지거나 결핍에 시달려 일상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감정에 치우친 사랑은 올무가 될 수 있으며 이성에 치우친 사랑은 가짜 사랑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삶의 방식에 큰 변화가 있었고 그로 인해 사랑에 대한 관점과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의 아날로그적인 사랑과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기술의 도움을 받으며 형성되는 사랑의 본질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람에 대한 소중함, 물건에 대한 소중함이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절과는 달리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고 기회가 되면 얼마든지 사랑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의 사랑을 동일선상에 놓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요즘 티비나 미디어를 보면 외모가 뛰어난데 능력도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편으로는 부러웠으나 그 사람들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부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반드시 좋다고 얘기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할 것은 분명하다. 어느 순간부터 사랑에 대한 기준이 생기기 시작했고 조건이 하나하나 붙기 시작했다. 소중함의 가치는 사라지고 외적인 요소들이 중요해졌다. 외모, 자산, 직업, 집 등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조건들이 갖춰진 사람을 만나면 좋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편안한 일상이 만들어놓은 또 하나의 걸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건 마치 내가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은 고통만큼이나 외적으로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혈기왕성한 감정이 융합한 하나의 결과물. 문제는 그러한 사랑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주어진 조건이 완벽하다고 해서 사랑이 언제나 자기 편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 자기 스스로 뭔가를 계획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많지 않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시작한 공부가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시작한 적은 없었다. 공부를 해야 적당히 살아갈 수 있다는 인식과 주변 시선에 맞춰서 공부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릴 적 시작한 무언가가 실상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닌 계획적인 커리큘럼과 교육에 맞춘 공부였던 것이다. 자녀들을 위해 고생하는 부모님들은 어떻게든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에 보내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게 과하면 독이 된다. 부모의 사랑보다 당장의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부모를 피하게 되고 부모에 대한 사랑마저도 느껴지지 않게 된다. 자녀의 목표가 아닌 자기의 목표로 바뀌어버린 자녀의 삶. 머지않아 자녀가 성장하고 어른이 되었을 때 과연 그 자녀는 부모의 노력을 제대로 알아줄 수 있을까? 자녀는 부모의 노력보다 자기가 고생한 것에 더 가치를 둘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고생하도록 만든 사람이 부모라는 존재임을 자각하며 부모와 거리를 두려고 할 것이며 부모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식어갈 것이다.




부모의 사랑 그리고 오늘날 남녀간의 사랑. 다르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상 크게 다르지 않다. 조건과 욕심으로 채워지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랑이 마치 설계도를 그리거나 계획을 짜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로 정말로 잘못된 생각이다. 말도 안 되는 생각과 꿈을 가지고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며 온갖 조건들을 요구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사랑을 돈과 물질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는 것일까? 사랑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접근하면 예기치 못한 상황과 변수에 쉽게 대처할 수 없다. 진정한 사랑의 힘은 고생을 같이 겪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때로는 연인이나 자녀가 아플 수도 있고 진로로 인해 고민할 수도 있으며 말하기 어려운 사정들로 인해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 고통과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게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설계된 사랑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아니 존재해서도 안 된다. 왜 그토록 사랑에 대한 책이 많을까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그만큼 사랑이라는 주제는 논할 것이 많고 한 가지 의미로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과 자료가 많은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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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수학문제가 아니다. 문제풀이를 통해 답을 찾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런 게 사랑이었다면 사랑이 제 모습을 유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은 과거와 비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시대다. 아무리 경기가 힘들어져 예전같이 않다고 얘기하지만 기술의 도움을 받아 편안함을 누리며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이렇게만 보면 분명 연애가 쉽고 사랑도 어렵게 느껴져서는 안 될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과거보다 출산율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연애를 안 하는 사람들도 더 많아지고 있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출산율은 전쟁중인 우크라이나 출산율보다도 낮다. 이것만 놓고 보면 정말 심각한 것은 분명한데 출산율은 왜 더 낮아졌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설계된 사랑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설계된 사랑으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어렵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자신의 행동 역시 대가가 따른다. 사랑은 정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은 동적인 것이다. 사랑의 성숙함이 무르익기 시작하면 더 이상 사랑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게 된다. 수동적인 사랑에 사로잡혀 있던 마음이 어느샌가 능동적이면서도 더 소중한 것들을 지향하는 사랑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외모나 기타 여러 외적인 조건들은 사랑에 있어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외적인 조건들은 감가상각을 피할 수 없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사랑의 끝은 언제나 복잡하고 불안정할 뿐이다. 흐르는 대로 살아가고 싶다면 사실 내버려두는 것이 제일 좋은데 문제는 그게 과거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더 가지고 있어야만 마음이 편하고 자신만의 판타지를 지키고 싶은 마음 때문에 결핍에 시달린다. 이러한 욕심과 결핍 때문에 알 수 없는 일탈들이 벌어지고 사랑에 대한 의미도 퇴색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조건과 자기만족을 갈구하다 보면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설계된 사랑은 가짜 사랑이다. 설계의 대부분은 허울 좋은 것들이나 인정을 받기 위한 것들 그리고 돋보이는 것들로 채워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지금의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채우고 또 채운다. 또한 미래를 위한다면서 주변의 정보와 지식을 끌어모아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계획들을 채워나간다. 자기 눈에 만족을 해야 하고 그게 계속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내가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사랑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논리적인 것들로 사랑을 채워나가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따뜻하게 포옹하고, 안아주고, 배려하고, 감사하는 사랑보다는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진 것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때로는 공감이라는 단어로 변모하여 사랑을 말하는데 실상은 공감이 아니라 사랑의 옷을 입은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공감이었다. 사랑은 욕심을 채우는 것도, 설계하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이 더 어려워지고 그 무게감도 더해지는 것만 같은데 그만큼 사랑에 대한 낭만도 식어가는 것이 아닐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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