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란 지도를 펼치다
언제부터였을까? 걸어야 하는 순간에 달리고 있었고 달려야 할 순간에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내가 달리고 싶었는지에 대한 물음도 없이 계속해서 달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달려야 하는 순간도 분명히 있지만 달리는 순간들이 많아질수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훅 지나가버렸다. 지금의 일상을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한 조급함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걸어야 하는 순간에도 달릴 수밖에 없었다. 잊고 있던 걷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면서 현실을 되돌아봤다. 무엇이 그렇게 조급했을까? 당장의 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하늘의 색이 언제나 파랗고 밝은 빛을 띄는 것은 아니다. 흐린 날, 비 오는 날, 어두운 날의 하늘은 어둡고 우중충하다. 하늘의 색이 어떻든 언제든지 걷고 달릴 수 있다. 걸어서 가도 되고 달려가도 상관없다. 여기서는 걸어야 하고 여기서는 달려야 한다는 법도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걷는 일상보다 달리는 일상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성장이 있으면 반드시 침체가 있다. 계속해서 성장하기란 어렵다. 어릴 적 아무 것도 모르는 애기는 차츰차츰 성장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성장 속도가 빨라진다. 언어를 익히고 지식을 습득하며 단체활동을 경험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하며 사상과 사고가 형성된다. 어린아이의 학습 속도는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 창의력과 호기심이 만연한 어린 아이는 두려움을 모른다. 그래서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시도들 때문에 부모님께 야단을 맞거나 훈계를 받기도 한다. 어른들의 적절한 지도와 가르침을 받는 것은 당연하며 문제가 될 게 없다.
시간이 지나 학교에 들어간다. 학교는 유치원과 어린이집과는 확연히 다른 곳이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초등학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웰컴 투 학원이다. 여기서부터 달리기는 시작된다. 요즘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달리는 친구들이 있는데 정말이지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다. 걷기를 배워야 하는 시기에 달리기부터 먼저 배운다. 그러다 보니 달리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리게 된다. 내가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게 아닌데 어느 순간 달리고 있다. 어쩌면 본인은 달리고 있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수동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삶, 내가 달리고 싶지 않은데 달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는가. 보통의 경우 어쩔 수 없이 달리기만 하거나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를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에게 주입 받은 달리고 싶은 마음과 의지.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중간에 장애물이 보이면 피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장애물을 피하지 않고 들이받게 되면 큰 부상을 입게 된다. 걸어서 피해야 하는데 달려서 피할려고 하다 보니 무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듯 달리기를 열심히 하는 가운데 하나 둘 경주에서 물러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아 그래도 내가 열심히 달려온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차서 더 달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그래! 달리면 그만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참아보자!'
걷기를 사치라고 생각하는 어린 뚜벅이들은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된다. 달려왔던 날들을 되돌아보며 스스로의 삶에 있어 만족감을 느낄 때도 있으나 추억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이제라도 삶의 추억들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달리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걸어야 하는 순간에 제대로 달리지 못한 대가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달려야 하는 순간인데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걷기에 매료되어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그때는 걷지 못했을까? 왜 계속 나는 달려만 왔을까 하는 생각으로 인해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진다. '아 이대로는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좀 걸어보자.' 하는 생각과 함께 뜻하지 않은 휴식을 찾는다.
달리기만 했던 삶은 어느샌가 걷는 삶으로 바뀌었고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았다. 이미 힘을 써버릴 때로 다 써버려 국물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면서 어떻게 걸어야 한다는 것을 누가 알려준 적이 있었나? 들어본 적 없다. 어떻게 달려야 하는 것은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걷기에 대한 매뉴얼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만의 방식대로 걷는 것에 대한 방법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은 일반적이면서도 통상적인 달리기만 했기에 나만의 방식대로 걸을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게 당연했다. 마음을 추스리는 게 쉽지 않았고 달리기로 인한 멘탈붕괴와 자괴감을 어떻게 떨쳐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달리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걷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일탈이 쉬웠다. 달리는 게 힘들어서 걷기도 했지만 달리기에 익숙했기에 다시 달릴 수밖에 없었다. 달리고 또 달릴수록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고 안정감이 뭐였는지 조차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냥 불안했고 한숨만 나오는 날들도 있었다.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았고 걸을 수 있다는 현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달리기로 인한 부정적 관점과 견해는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걸어야 하는 날들, 걸을 수 있는 날들이 생기면서 조금씩 회복을 하기 시작했다. 걷는 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달리는 것보다 걷는 것에 익숙해지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지나가는 만큼 나이의 숫자도 늘어난다. 신체의 노화는 어느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힘과 에너지가 넘쳐나던 시절에는 얼마든지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강제로 달릴 수밖에 없는 순간들도 많았다. 한 번이라도 내 마음대로 달리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던가? 내 마음대로 걷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던가? 지금도 걷는 소리보다 달리는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언제 어느때나 달리기만 해야 하는 건가? 달리다 보니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만 많아졌고 내가 힘들게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과 대우만 생각하여 기대치의 상한선도 더 높아졌다. 달리고 또 달렸다. 물론 그 달림으로 인해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삶에 대한 공허함도 같이 배웠다. 걷지 못한 대가는 실로 대단했다.
걸을 시간이 있다면 반드시 걸어야 한다. 오랜 시간 연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칸트, 찰스 디킨스,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등 흔히 알고 있는 위인들도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했다. 그냥 단순한 걷기가 아니다. 공부, 연구, 업무와 거리를 두며 정신적 호흡을 유지하고 더 많은 연구와 공부, 창작을 하기 위함이다. 달리기 중심의 삶은 나만 지치는 게 아니다. 나와 관계있는 사람들까지도 지치게 할 수 있다. '달리지 않으면 안 돼!', '내일은 없어!', '지금 고생해야 나중이 편하다' 이런 얘기들은 미래에 대한 부담만 더 가중시킬 뿐이다. 똑같이 10시간을 공부하지만 누군가는 여유가 있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쫓기듯이 공부한다.단순히 학습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 10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계속 달려왔기 때문에 많은 것을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실상은 아니다. 어린 시절과 중고등학교 시절에 너무 달리면 나이를 먹을수록 걷고만 싶어진다. 걷기보다 달리기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걷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지는 것이다.
내가 걸을 수 있는 길, 내가 걷고 싶은 길. 그런 길이 있다면 달리지 말고 걸어가자. 걷기를 주저하지 말자. 그러다가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걷기와 달리기를 번갈아가면서 살아가는 게 삶의 수명을 유지할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달려오기만 했던 지난날들. 그로 인해 시선은 한 곳에 집중되었고 그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달리지 못하면 끝나는 줄 알았다. 경주에서 뒤처지면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이거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며 몸과 마음을 혹사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신념이었다. 걷는 방법, 나만의 걷는 방법을 몰랐고 걷기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만들어진 그릇된 신념이 만든 허상에 불과했다. 달리고 싶었던 내 마음은 어느 순간 걷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천천히 걷기 시작하면서 어느샌가 달릴 수 있는 힘과 에너지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 앞으로는 걷기와 달리기를 번갈아가며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자!'
삶의 불빛이 언제까지 나를 비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걷고 달리는 길만큼은 계속해서 밝아졌으면 한다. 오늘의 걷기가 내일의 달리기가 될 수도 있으며 오늘의 달리기가 내일의 걷기가 될 수 있는 그런 날들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