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연애-결혼'이란 사회의 공식

내면이란 지도를 펼치다

by BeWrite



취업도 꿈이고, 연애도 꿈이고, 결혼도 꿈이 되어버린
웃지 못할 현실에서 꿈만 더 많아질 뿐이다.


한강의 기적에서 한강의 악몽으로

한국은 전례가 없는 성장으로 인해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한강의 기적. 이 나라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며 급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성장할 줄만 알았던 경제는 IMF라는 큰 위기를 맞았고 수많은 비정규직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외환 위기를 통해 많은 것을 잃었지만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다시 일어섰다. IMF,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최근에 20년 전의 기사를 봤는데 그때도 취업이 쉽지 않다는 내용의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일자리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바뀐 게 없었다. 여전히 취업은 힘들었고 내가 소속될 수 있는 회사의 진입장벽은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부모님들, 조부모님들이 헌신해서 이룩한 나라의 미래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인해 점차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과거와 비교했을 때 한국은 엄청나게 발전했고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다. 언론에서는 K라는 단어를 붙여가며 K-방역, K-드라마, K-뷰티 등 온갖 수식어들을 붙여가며 한국 문화의 발전과 성과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여러 성과들이 분명하게 보여질 뿐만 아니라 기술 경쟁력에 있어서도 세계적 수준까지 도달했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 산업 등 제조업의 성장은 미래 먹거리에 대한 걱정을 줄여주었으며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한국의 미래는 충분히 밝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적이 악몽이 되어가고 있다. 언젠가부터 헬조선이란 키워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는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가 하면 뛰어난 인재들은 한국보다 미국, 유럽 등 해외로 취업을 하거나 이직을 하였다. 지나친 교육열로 인해 압박감과 중압감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의 숫자가 늘어났고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이며, OECD 국가 평균(11.1명)의 2배 수준으로 2004년 이래 줄곧 1위를 차지하고 있음) 사회 전반에서 비교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그 비교가 더 심해져서 개근상을 받는 게 부끄럽게 여겨질 정도이니 이쯤되면 지금 한국 사회가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알 수 있다.




공교육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서인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학원들로 인해 한국은 학원 공화국이 되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보다는 답을 잘 맞추는 능력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는 교육 환경은 도전과 모험을 기피하고 안정적인 삶을 지향하는 인재들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숫자만 늘어났다. 수능 점수가 인생 점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능을 잘 보지 못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3개, 4개 아니 10개 이상의 학원을 다니지만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공부하는 환경만 제공하면 당연히 잘 될 줄 알았다. 고통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고통을 강요받아도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목표만 이룰 줄 알았지 미래를 스케치하거나 설계할 수 있는 공부는 전혀 안 되어 있는 상태로 대학에 들어갔다. 고생길의 시작이었다. 어떻게 졸업을 하기는 했지만 경제 성장의 역군으로 활약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했다. 비교는 끊임없이 계속됐고 처음 들어간 회사는 쉽게 적응을 할 수 없었다.

자기 헌신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기득권자들의 가치관은 지금의 청년 세대의 가치관과 맞지 않았다. 워라밸이 어느 정도 보장된 상태에서 일을 하는 게 몸도, 마음도 지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같이 일에만 몰입하다가는 자기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경제 성장이 계속됐지만 어느 순간 그 속도가 느려졌다. 세대 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기존의 관습과 제도의 부당함이 드러나면서 세대 간의 갈등은 더 심해졌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른 측면도 있다. 어릴 때부터 곱게 자라온 아이들, 그 아이들이 지금 성인이 되었다. 설계된 이기적 개인주의가 만연한 젊은이들로 인해 회사 입장에선 채용에 대한 부담감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SNS, 숏폼 등으로 인해 편파적 사고에 익숙해지고 직선적 사고가 무뎌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일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들이 발생했다. 꼰대 문화를 꼰대들이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꼰대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이기적인 사람들이 꼰대 분위기를 만든다. 이기심에 취하면 눈에 보이는 게 없다.




그렇게 취업을 어렵게 했는데 퇴사를 한다.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사실 청년 세대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야 나라의 미래가 안정이 되는 것인데 현실은 정반대다. 지금 청년 세대는 확실히 불행한 세대가 맞다. 역설적이게도 편안하게 보살핌을 받아 자란 세대들의 미래가 힘들게 헌신한 부모님 세대보다도 더 힘들고 어려워진 것이다. 편안하게 살아온 것에 대한 대가가 이런 것이란 말인가.

한국은 지금 여러 가지로 큰 혼란에 빠져 있다. 경제는 경제대로, 교육은 교육대로 몸살을 앓고 있다. 청년들은 모든 걸 포기하고 있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내가 원하는 현실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예상치 못한 현실을 바라보니 더더욱 포기하고 싶은 마음만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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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도 쉽지 않고... 돈도 없으니 연애나 결혼은 금물

살기 위해서는 취업해야 한다. 그리고 절약을 해야 한다. 연애하면 돈이 금방 깨진다. 그러므로 연애도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한다. 결혼은 말도 안 된다.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는다.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니 부정적인 상황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힘들게 살아가는 나의 인생 수명을 조금이나마 연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옛날의 정서라면 연애를 통해 결혼을 하는 게 당연했다. 지금은 연애 역시 하나의 계약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마치 손해보지 않기 위한 장사를 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는 느낌이랄까. 목표를 위한 삶에 익숙한 청년들은 어떻게든 처음부터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은 게 현실이다. 감정은 오래가지 못해 결국 무뎌진다. 항상 외적인 것으로 유지하려고 하지만 엄연히 한계가 있다. 내면을 등한시한 결과는 당연히 헤어짐과 이혼이다. 고생을 해도 같이 고생하고 기뻐해도 같이 기뻐해야 하는데 요즘은 그러한 감정의 공유마저도 쉽지가 않다. 서로 자기만 먼저 생각하는 연애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키가 크고, 몸이 좋고 이런 것에 대한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 폭락한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계속 접하면 무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애와 결혼마저 꿈꾸기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입장에서 저런 얘기들은 다 무의미한 것이 된다. 가족을 꾸리고 싶은 마음도,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도,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인권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개인의 인생 또한 중요하다는 인식 역시 강해졌다. 1인 가구는 날마다 늘어나고 있다.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기적을 바라기도 어렵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진정한 한강의 기적이 아닐까 싶다. 인식과 가치관의 변화는 쉽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100억, 1000억, 1조를 들여도 사상과 가치관을 바꾸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꿈만 꿀 뿐이다. 아니, 이제는 꿈도 꾸지 않는다. 대신 다른 꿈을 가져보기로 한다. 연애와 출산은 이생에서 포기했으니 차라리 다른 꿈을 꾸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저 독립된 인격체로 살아가며 하루하루 잘 먹고 잘 사는 것, 유튜브나 블로그, 콘텐츠를 통해 퍼스널 브랜딩을 하며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것,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해서 돈을 많이 벌거나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하는 것 등등 여러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연애를 못하는 것, 결혼을 못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취업을 못하는 것. 누군가는 이런 것들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고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런 것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취업을 해도 힘들고, 연애를 해도 쉽지 않으니 포기하고, 결혼은 당연히 힘들고... 이런 식이다. 외부적인 동기부여를 아무리 퍼붓는다 해도 끊임없는 실패와 좌절을 학습한 이상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응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정부에서 청년지원금을 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결국 먹고 사는 걸로 다 써버리거나 유흥을 즐기는 데 써버릴 것이다. 장기적인 실패와 좌절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게 강하다. 오죽하면 8년, 10년 이상 취업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방구석에만 있겠는가.




늘 점수를 잘 받아야 하며 잘 보여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하나라도 핀트가 어긋나거나 잘못되면 금방 좌절에 빠진다. 지금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보다는 청년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때 개발자 열풍으로 인해 너도 나도 개발자 취업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도 개발자 취업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 스스로가 개발이 적성에 잘 맞는지를 놓고 고민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입사자가 많은 만큼 퇴사자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개발은 사실 보이지 않는 건물을 짓는 작업이나 마찬가지여서 그만큼 몰입과 헌신을 하지 않으면 버티기가 힘든 직종이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에서 개발을 한다고 하면 오래 버티기가 힘들 것임은 분명하다. 기술 개발에 있어 돈이 투자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돈의 의존도가 강한 기술 역량이 쉽게 버티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한강의 악몽' 에서 '한강의 기적'으로 가려면

음... 어떻게 보면 답은 이미 다 나와 있다. 문제는 결국 문화와 인식이다. 하지만 오래도록 이어진 관습과 문화를 바꾸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흔히 하는 말이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건 국민 대부분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나 서로가 힘을 모으지 않는다면 청년 문제, 출산 문제, 자살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는 어렵다. 취업, 연애, 결혼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많아진다는 건 스스로 자립하기 힘든 청년들의 숫자만 더 늘어나는 것이다. 이 청년들 중에는 사회에 불만을 가져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있는 청년들도 있을 게 분명하다. 잘 사는 사람들만 잘 살고 못 사는 사람들은 더 못 살게 되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좋아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법과 질서를 어기고 싶지 않은데 그런 것들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사회일까?




악몽은 깨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그대로 살아간다. 불행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지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그들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의 나이가 20대나 30대라면 더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불만으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악습과 자연스러운 비교 문화가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었다.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지 않다고 하지 않던가. 분명히 희망은 어디에선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을까? 문제는 그 드러난 희망을 찾아내야 하는데 찾아내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악몽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살기 힘든 마당에 7세 고시는 웬말이란 말인가. 아직도 과거의 경제성장을 하던 80-90년대 한국에 갇혀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된다는 심보인가? 근데 그러기에는 너무 앞서갔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아이들한테 마치 공부라는 전기의자에 앉혀서 24시간 내내 고문을 받게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자식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모는 자식을 부모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꿈이 곧 자식의 꿈이 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시작되는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자신의 꿈마저 빼앗긴 불쌍한 아이들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과연 '한강의 악몽'이 다시 '한강의 기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악몽을 꾸기가 너무나도 쉬운 나라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악몽을 벗어나려면 힘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그 힘과 용기를 갖출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 시기에 기하급수적인 정답 맞추는 공부만 투애니포세븐(24/7) 반복했다.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게 인생인데 오히려 내가 경험한 고통만 접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목표로 여겨졌다. 악몽을 기적으로 바꾸려면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 세대, 조부모님의 세대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유지하며 살아가려면 청년 세대의 주머니가 두둑해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변화가 무서워 악몽에만 머무르려 한다면 굳이 지옥을 경험하고 싶지 않아도 지옥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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