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란 지도를 펼치다
돈으로 존중받는 사회이지만
돈이 모든 것의 마스터 키는 아니다.
돈은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이다. 이 사회에선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그러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돈의 질서는 엄연히 정해져 있고 내가 벌 수 있는 돈의 액수도 한계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는 입시 경쟁, 교육 경쟁 역시 이와 관련돼 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좋은 학교,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취업의 기회도 많이 얻을 수 있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버티고 인내하며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어릴 때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가며 돈의 맛을 알아갔다. 옛날 학교 주변에는 떡볶이나 뽑기 장사를 했는데 그 냄새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던 돈으로 떡볶이와 뽑기를 많이 사먹곤 했다. 돈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의 마음가짐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문제는 더 많은 것을 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욕심은 많아지는데 좀처럼 내가 가진 돈의 액수는 늘어나지 않았다. 당연하다. 경제 활동이 1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들어가면 돈이 귀하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김밥 한 줄을 1000원에 팔았다. 돈을 아끼기 위해 아침, 점심을 1000원짜리 김밥과 라면으로 때우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나 요즘은 김밥 한 줄도 최소 3000원이 든다. 대학생활과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대학생 입장에서 볼 때 지금의 물가 수준은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20대의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어떻게든 아끼고 절약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을 쓰지 않고 버티기란 쉽지 않다. 연애도 해야 하고, 놀러도 가야 하고, 사고 싶은 것도 많은 젊은 날의 하루를 그저 인내와 절제만 하면서 살아가기에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돈이 많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거의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을 다니는 건 당연했다. 장학생들이야 장학금으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기에 돈벌이를 하며 젊은 날들을 버텨야만 했다. 희망찬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돈에 대한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성실함, 꾸준함이 곧 미덕이자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왔던 믿음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대체 돈을 많이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취업만 하면 모든 게 다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지가 않았다. 회사 역시 경쟁이 치열하고 승진이 쉽지 않기 때문에 성과를 잘 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연봉 인상은 물론이고 승진도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기존의 상사 분들과 잘 어울려서 회사를 다니는 게 쉽지 않다 보니 회사에서 버텨가며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기존 학교생활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돈을 벌어야 사회에서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도 덧붙여가며 돈을 버는 건 쉽지 않지만 그래도 회사를 다니면 돈을 벌 수 있으니 어떻게든 좋은 직장으로 취업하여 돈 많이 벌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아무리 뭔가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돈으로 하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가지고 있는 액수가 부족하다 보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었다. 친구들끼리 MT를 가거나 대학로로 놀러갈 때 역시 돈이 필요했다. 돈이 충분하면 걱정하지 않았다. 서로가 돈을 모으고 합심하다 보면 노는 데 드는 비용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만 가능했다. 1차, 2차, 3차를 지나 4차까지 달리기란 쉽지 않다. 보통은 2차에서 끝나는데 어떻게든 아끼고 절약해도 3차까지 가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각자가 돈을 분배하여 결제가 이루어지니 불협화음이 발생할 여지가 없었다.
돈이 있었기에 서로가 농담을 하며 여기저기 놀러 다닐 수 있었다. 서로가 장난을 치고 시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기에 그런 분위기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로데오 거리나 1번가에서 만나면 기분이 좋았다. 얘기를 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돈을 지불한다는 건 그만큼 서로에 대한 존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돈이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아닌 돈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냄과 동시에 존중을 표하는 것이기도 했다. 흔히 예의와 에티켓만 잘 지키면 사람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에 걸맞는 소비를 하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성과 덕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돈도 마찬가지다. 한 쪽으로만 흘러가면 반드시 막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양방향으로 돈이 오고 가면 존중이 생기고 서로에 대한 거리를 지킬 수 있게 된다.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히게 되면 존중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며 돈의 흐름 역시 자연스러워진다. 돈을 존중하는 것이 아닌 돈을 소비하는 행위를 통해 그 사람을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돈은 존중과 연결되어 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돈을 소비하는 과정과 목적도 중요하다. 돈으로 상대방에게 망신을 줄 수도 있는가 하면 상대방을 존중하거나 높일 수도 있다.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 존중을 받고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열심히 돈을 벌고 때에 맞게 소비한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다. 나보다 돈을 2배, 3배 아니 수십 수백 배의 돈을 버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가는 점점 오르고 먹고 살기는 팍팍해지는데 월급은 여전히 제자리만 맴돈다. 통장에 찍힌 돈의 액수를 바라보며 인생을 한탄하거나 후회한다. 하지만 한탄하고 후회하기에는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기 바쁘다 보니 어떻게든 돈을 더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한다. 돈이 없으면 살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어떤 부당함과 답답함도 참고 이겨내며 살아가고자 한다. 그로 인한 경제적 보상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돈의 질서는 모두에게 적용된다. 돈을 벌기 위한 방법이 노동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를 하거나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 창업을 해서 돈을 버는 방법도 있다. 문제는 투자와 창업은 취업과 비교했을 때 전혀 다른 부류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정답을 잘 맞추는 공부만 잘하는 사람이 투자와 창업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돈의 질서를 통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만능의 공식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건 없다. 일확천금을 위해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후 준비나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얘기하지만 실상은 투기에 그친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노력을 적게 하면서 부담없이 돈을 잘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맹목적인 레버리지 투자는 자책골을 넣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의 가치가 소중한 것은 맞지만 투자와 창업은 단순히 노동에서 얻은 피와 땀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은 물과도 같다. 어디에서나 흐른다. 생각해보면 내가 동네에 사는 1000명 혹은 10000명의 사람들에게 하루 만 원씩만 받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 1000명, 10000명의 사람들이 왜 나에게 만 원을 줘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나에게 100원만 달라고 해도 100원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위에서 존중을 얘기했지만 사람들이 돈을 소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치가 있다거나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부자들이 돈이 많았던 건 아니다. 성공한 부자들도 처음에는 돈이 없었다. 근데 생각보다 이 점을 간과하고 어떻게든 부자가 되기 위해 투자에 뛰어든 사람들이 많다.
돈은 존중와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내가 존중받기 위한 인생을 살아가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게 단순히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존중받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돈을 소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돈을 벌어들이는 경로와 출처도 상당히 중요하다. 정직한 돈이 있으면 검은 돈도 있기 마련이다. 돈은 그저 종이조각에 불과하지만 수익의 본질과 형태는 단순하지가 않다. 자신의 성향과 철학, 가치관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액의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이나 1인 사업가들을 보면 그들은 모두 소비자의 생각과 니즈를 간파하여 성과를 달성했다. 사람들이 꼭 필요한 물건이나 컨텐츠를 소비하는 생산자,공급자들은 자산이 많을 수밖에 없다. 돈의 질서는 단순히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에게 100%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노동으로만 10억, 100억을 벌 수 있다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만일 어렸을 때부터 돈의 질서에 대한 공부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건 모두가 알지만 정작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엇보다 돈을 잘 관리하는 인품을 가지기 위한 노력이 미흡하다 보니 소비를 하고 싶은 마음만 생기면 거리낌없이 돈을 소비했다. 인과는 분명하지만 통장만 보면 나오는 한숨의 출처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가 궁금했고 몇몇 전문가들의 얘기와 그들이 만든 자료를 봤지만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어떤 공부를 해왔는지 되돌아봤을 때 돈에 대한 공부를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노동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공부는 많이 했지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교육은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좋은 의미에서 진행되는 경제교육마저도 찬밥 신세를 받는 경우가 있다. 투자나 창업을 하면 위험이 크다는 생각을 하니 대부분 취업을 해서 연봉을 높여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도 엄연히 정치와 마찬가지로 생물이다. 경제 상황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경제를 움직이는 돈의 흐름이 매번 같은 형태로 유지되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연봉이 경력에 맞게 상승할 수 있을까? 한국이야 해고가 쉽지 않으니 어느 정도 근로자들의 상황이 보장되지만 미국 같은 경우 구조조정과 해고가 쉽기 때문에 언제든지 퇴사당할 수 있다. 성실하고 꾸준함을 지키며 업무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마저도 해고의 칼날 앞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아직도 이 나라는 안정적인 직업이 최우선이라고 여긴다. 개인적으로 이공계 종사자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돈의 질서를 바꿀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기술이다. 조선시대, 기술자들은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 천한 직종으로 여겨졌으며 대부분의 권력은 문인들이 쥐고 있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모두가 잘 알 것이다. 세계 정세와 외세 침략에 대응하지 못한 조선은 꼼짝없이 일본의 속국이 되고 말았다. 경제 주권, 외교 주권 더 나아가서는 정치 주권까지 일본에게 넘어갔으니 세계 흐름에 뒤처진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된다는 걸 고스란히 보여준 사례였다.
과거 시험을 통해 선발된 인재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돈의 질서는 물론 권력의 질서에서도 밀린 조선의 식민지배 기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마침내 독립을 하고 6.25 전쟁을 거쳐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조선시대의 관례적 인식과 잔재가 남아있는 게 아닌가 싶다.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경쟁을 하면 언젠가는 큰 대가를 치를 게 뻔하다. 흔히 '사'자 돌림으로 칭하는 직업들이 예전보다 버프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의사는 여전히 인기가 많다. 하지만 이게 결코 좋은 소식만은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지 않을까 싶다. 기술이 존중받지 못하면 돈이 모이지 않을 것이다. 기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줄어들면 돈의 질서에서 주도권을 내주고 말 것이다.
고액의 연봉을 받는 직장인 혹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10년, 20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 10년 전, 20년 전이면 가능하다. 그때는 스마트폰이나 SNS 라는 게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세상이 변했고돈의 질서가 변하고 있다. 여전히 창업과 투자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과거에 비해 부자들의 숫자가 늘어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하여 돈을 많이 버는 게 예전보다 쉬워졌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취업은 여전히 힘든데 그 취업을 하기 위해, 더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바뀌고 있는 돈의 질서와 흐름 가운데 정직한 노력을 통해 여전히 장밋빛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 도전과 모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도전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직장이 있는 삶, 직장이 없는 삶
둘 다 준비해야 한다.
직장이 없으면 직장을 만들어서라도
살아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