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공부하는 게 맞아?

내면이란 지도를 펼치다

by Be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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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공부를 잘해야 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학교에 가면 항상 나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공부 잘하는 게 거의 장땡이었다. 공부를 잘하면 어디를 가든 인정을 받았고 원만한 교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학생의 의무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닌 공부를 하는 것이 학생의 의무다. 모두가 공부를 잘하기란 어렵다. 개개인마다 성장배경과 성격, 공부 성향, 집중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70점 혹은 80점을 맞았지만 누군가는 90점이나 100점을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공부를 잘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일지라도 누군가는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공부에 흥미를 느껴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입시를 위해, 목표를 위해 하는 사람들도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위해, 취업을 위해 불철주야 공부에 매달리고 또 매달리지만 정작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어릴 적에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높은 점수를 받는 친구들은 당연히 인생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험도 잘 보고 성격도 좋은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나는 왜 저렇게 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적은 오르지 않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때는 그랬다. 어떻게든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늘 제자리였다. 가끔 잘 풀릴 때도 있었지만 끝에 가면 늘 실망스러운 결과만 받았다. 공부가 나하고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른 걸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공부를 해서 대학은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아있었다. 점수에 대한 미련, 노력에 대한 미련, 학벌에 대한 미련......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생각보다 인생은 살만했고 즐거움을 누리기에도 충분했다. 한국 사회는 참 냉정하다. 입시가 인생의 전부라는 인식이 너무나 깔려있다 보니 입시에서 실패하면 인생이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SKY를 들어간다고 해서 취업이 확정됐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지만 내가 입시를 치를 때만 해도 그런 인식이 만연했다. 사실 지금도 예전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다. 내나이 혹은 나보다 10살 ~ 20살 많은 부모들이 왜 4세 고시, 7세 고시에 매달리겠는가. 왜 학원가는 밤늦은 시간에도 어린 친구들이 그렇게 많은가. 입시는 청소년과 청년 시기 그 중간에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주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능만으로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 공부말고 다른 건 없나

공부말고 다른 걸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공부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인가. 안타깝지만 공부를 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시험 공부나 자격증 공부는 피할 수도 있겠지만 고액의 연봉을 받으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억지로 공부를 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공부가 맞는 것은 아니다. 왜 대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그토록 많은 고민과 압박에 시달릴까? 그동안은 답을 선택하고 찾는 공부만 계속해왔는데 대학에 들어오니 이제부터는 답이 없는 공부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답이 없는 공부란 누군가가 정한 답이나 기존의 이론과 레퍼런스가 반영된 답에 근거하여 공부하는 게 아닌 스스로 답을 만들어내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혼자서 뭔가를 계획하고, 설계하고, 주도하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제까지는 그런 공부를 하지 않다 보니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게 느껴진다. 대학에 들어왔지만 내 전공이 나와 맞지 않음을 느끼게 되면 더더욱 대학에 대한 회의감이 생겨 이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조차 알 수 없게 되는 상태에 이른다. 이러다 보니 인생의 방향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더 커져만 간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막상 내 스스로 뭔가를 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에 멘붕이 오기도 한다.




사실 공부라는 게 단순히 점수를 잘 받는 것 이상으로 폭넓은 관점에서 접근해야 공부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영수 평균이 60점이 안 되기 때문에 공부에 있어서는 능력이 안 된다는 식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기준에 근거한 평가를 바탕으로 내가 점수가 평균 이상만큼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공부에 소질이 없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개개인마다 잠재력이 있고 개성이 있는데 그걸 무시한 채 점수만으로 순위를 정한다? 공부의 범위는 점수 그 이상보다 훨씬 더 넓게 인식되어야 한다. 미시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면 공부가 피곤하게 느껴지고 더는 관심 갖기 싫은 대상으로 전락한다.



누구를 부러워하는 공부가 아닌 스스로 답을 찾고 만드는 공부가 필요

늘 비교하면서 공부했다. 주변을 인식하며 평균보다는 잘해야 한다는 인식 속에서 공부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30문제 중에 적어도 2~3문제만 틀리고 나머지는 다 맞아야 마음이 편했다. 동그라미와 엑스에 갇혀 공부의 흥미를 잃었고 자연스럽게 공부를 한다기 보단 기계적으로 공부를 한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렇게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점수 잘 맞으면 장땡이라고 느꼈으니 말이다. 해설지에 정해진 답과 풀이를 바탕으로 공부를 하는 것에 익숙했고 온라인 강의를 통한 알짜 자료에 취해 스스로 뭔가를 구체적으로 정리하거나 직접 답을 만드는 것에는 어려움을 느꼈다.




나이도 들었고 점점 늙어간다. 이제는 좀 다른 방식의 공부를 하고 싶다. 물론 내가 몸담고 있는 직종의 특성상 답을 찾는 공부를 피하기란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 스스로 답을 만드는 공부를 하고 싶다. 늘 답을 찾는 공부만 했다면 이제는 뭔가를 창조하고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그런 인생을 경험하고 싶다. 돈을 많이 벌든 그렇지 않든 스스로 뭔가를 해나간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스마트폰과 AI가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 과정에서 깊은 생각과 사고하는 시간을 잃어버린 듯 하다.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주는 AI의 능력이 과정을 기피하는 경향을 불러오는 바람에 신속하고 편안한 길로만 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인생은 방향이라고 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게 속도가 아닐까 싶다. 자기만의 속도, 그 속도를 찾아야 한다. 이전에는 특정한 기준에 맞춰서 달리고 걸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내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서 달리고 걸어야 하는 것이다. 느릴 수도 있지만 빠를 수도 있다. 쉬운 길이 있다면 좋겠지만 경험상 어려운 길로 가는 게 더 많은 것들을 가져다주었다. 어릴 적에 했던 미래를 위한 공부가 이제는 낡은 것이 되어버린 지금 이제야말로 진짜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하여 자신만의 흐름을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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