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란 지도를 펼치다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포기한 것들...
도전이 부담돼서 손놓아버린 것들...
나와 맞지 않아서 피하기만 했던 것들...
그래... 다 포기하고 속편하게
살면 그만이지... 근데 살만할까?
지겹도록 공부만 했던 10대를 지나 20대 초반에 들어설 무렵, 이제는 공부란 그늘에서 벗어나 화창한 봄날의 기운이 뭔지를 느끼고 싶었다. 무엇이 과연 진정한 자유인지를 느끼고 싶었던 나였기에 터널 밖의 세상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공부에 찌든 머리와 축쳐진 마음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대학교 1학년은 거의 놀다시피 보냈다. 여지껏 공부를 하면서 뭔가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이 없었는데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과 부담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경우 자연스레 포기를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선택의 주도권이 생겼다는 것을 느꼈다. 과거엔 국영수는 절대 포기하면 안 되고 탐구 과목도 포기하면 안 됐기에 어쩔 수 없이 끌고 가야만 했다면 대학에 들어와선 절대 포기하면 안 되는 것들의 범위를 점차 줄여나갔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 공부를 억지로 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고문을 가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확실하게 인지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엔 포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냥 다하는 게 맞겠다 싶은 마음에 포기를 하지 못해 손해보는 경우도 허다했다. 피곤함은 더해지고 부담감은 커져만 갔다. 포기가 손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부담되는 선택마저도 할 수밖에 없었던 미련한 현실을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매사 성실해야 하고 책임감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니까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줘선 절대로 안 된다는 강박감이 오히려 올무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모든 걸 다 잘할 필요도 없고 잘할 수도 없는데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부담이 되어서인지 자의적인 선택보단 타의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다 20대 초반을 맞이했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이 순환을 끊기로 결심하게 된다.
최대한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하지 않았다. 친구 역시 나와 잘 맞는 사람들만 만났다. 편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에 조용히 학교를 다녔다. 술자리는 가끔 참석하긴 했지만 술을 잘 못하다 보니 술자리에 가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학생이니 공부에 집중하는 건 당연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대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학교생활을 통해 학습한 게 무엇인가? 성실히 출석하고 교내활동에 충실하며 예의 바른 모습으로 선생님을 대하며 중간, 기말고사와 수능 모의고사를 잘 보는 것. 하지만 대학교까지 와서 그런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좀 비뚤어진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때는 그랬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저 교과 과정만 쫓아가다간 아무 것도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학교 도서관에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빌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누구의 강요도, 요청도, 지시도 없이 내 스스로 선택하여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 첫 번째 사례였다. 아무도 책을 읽으라고 얘기한 적도 없었지만 내 의지가 충만했기에 여러 권의 책을 빌려 책을 읽었다. 정치, 사회, 문화, 역사, 철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지식들을 공부했다. 필사의 매력에 빠져 하루종일 책의 구절을 공책에 필사하기도 했고 700쪽 짜리 두꺼운 책도 한 달만에 독파하며 매일같이 독서와 글쓰기에 매진했다. 왜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지만 그때는 워낙 책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단순히 학교 교과에만 맞춰서 공부하는 것을 지향하지 않았다.
나만의 자유로운 공부를 하고 싶었다. 교과 과정의 방식에 맞춰 공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당시에 철학을 접하고 난 이후부터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더 이상 따라가기 식의 공부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누구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식으로 사는 것에 방점을 두지 않았고 내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성공을 한다고 해서 마냥 삶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닐 뿐더러 성공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에 강박적으로 성공이라는 목표를 두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역을 한 이후부터는 나만의 공부를 하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과거에는 참고 자료나 선생님의 강의 자료를 공책에 필기하면서 시험 공부하는 것에 익숙해졌다면 이제부터는 나 혼자 모든 걸 스스로 공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한 나의 지식 범위는 얕고 좁을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답을 찾는 공부만 한 결과였을까? 답이 없는 현실에 대한 공부를 거의 하지 않다 보니 책을 읽을 때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학교 도서관의 책만 빌려 읽는 것이 아니라 직접 책을 구매하기도 했고 동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대여해서 읽기도 했다. 등하교를 할 때마다 매일같이 쇼핑백 하나 들고 이동했는데 그 쇼핑백에는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자투리 시간에 읽을 책이 들어 있었다. 공교육, 사교육의 자료만 주구장창 보던 내가 그와는 별개인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으면서 세상이 참으로 넓다는 생각을 했다. 왜 이제와서야 이런 책들을 읽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에서야 경험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의견와 표현을 말과 글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부족했던 의사표현, 글쓰기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이런 독서와 글쓰기는 추후 면접을 볼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단순히 면접 답변을 작성하여 마치 대본을 외우듯이 답변하는 것과 달리 면접 답변 준비를 어느 정도 해놓고 대략의 문맥만 떠올린 후 실제 면접 현장에서 답변의 문맥에 근거하여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언제부터 이런 능력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표현력이 향상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사내 행사에서 프레젠테이션, 브리핑을 진행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프레젠테이션은 단순히 점수만 잘 받는 공부만 해서는 절대로 그 역량을 향상시킬 수 없는 분야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딱딱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청취자들에게 전달해줘야 하는데 대본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방향 소통이 되어버리다 보니 프레젠테이션이 아닌 교장선생님의 훈화시간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단순하게 대학의 교과활동에만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기술적 역량은 더 향상됐을 것이다. 사실 독서와 글쓰기에 빠지는 바람에 전공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찌기 하드웨어 쪽은 나와 맞지 않았지만 소프트웨어 쪽은 그나마 흥미가 있었기에 어떻게든 공부하려고 했지만 내 공부만 계속하다 보니 전공에 대한 공부 비중이 줄어들었다. 취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졸업을 했지만 개발자로서의 역량이 부족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코어 역할을 담당하지 못했고 내세울 것도 많이 없었다. 뭐든지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그게 취업일 줄이야... 어쨌든 취업을 하긴 했지만 적응이 쉽지 않았다. 차라리 기술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집중을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시간은 이미 지나간 뒤였고 결국 국비 교육을 통해 부족한 기술 역량을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
나만의 공부를 하기 위해 전공 공부의 비중을 줄이며 독서와 글쓰기를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고 세상의 흐름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모두가 좋은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사회 전반의 이슈들과 역사 배경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비록 전공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 전공 공부에 소홀하여 취업 준비하는 기간이 다소 길어지긴 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안목이 생겼다는 점에서 손해봤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사실 일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답을 잘 찾고 유행에 민감해지다 보면 알게 모르게 자기 의견보다 타인의 의견을 더 따라가게 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답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아무 생각없이 정해진 답만 찾아가니 자신의 의견보다 타인의 의견에 좌우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포기를 해서 얻는 게 있다면 포기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포기가 습관이 되면 오히려 더 불편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사회초년생 입장에선 모든 게 어렵고 낯설다. 당연하다. 나 역시 처음에 입사했을 때 회사 입구를 지나 사무실로 들어설 때부터 불편함을 느꼈다. 불편함을 느끼는 게 이상한 것이 아님에도 조금만 불편하다고 생각하여 포기한다? 쉽지 않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시도가 처음부터 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다. 뭐... 편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편한 것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에선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게 현실이다. 상황에 따라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포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포기를 해서는 안 되는 때가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구분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포기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과열 양상의 교육 환경에서 성장한 청년들의 사회 진출은 여전히 쉽지 않다. 어쩌면 성실하고 책임감있게 달려왔던 순간들이 자유의 영역마저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연애, 결혼, 출산 등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포기를 해서 삶이 안정된다면 포기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포기가 독려되는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포기 독려 사회에 적응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누구나 성공하는 삶을 살 수는 없다. 누구나 위대한 삶을 살 수는 없다. 누구나 럭셔리하고 멋스러운 삶을 살 수는 없다. 어찌보면 원하는 게 단순할지도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적당한 일자리를 가지며 적당한 소비를 하고 시간날 때 문화생활을 하며 여행도 다닐 수 있는 그런 삶. 그것도 아니라면 열심히 일하면서 소소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삶. 그저 사람답게 살며 대우 받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굳이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