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란 지도를 펼치다
돌아갈 곳이 있기에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며칠만 지나면 어린이날이다. 어린 시절을 만족스럽게 보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다행히 부모님의 보살핌을 잘 받은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내가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들을 부모님한테 얘기하면 다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가끔 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웬만하면 거의 다 사주셨다. 포켓몬 카드, 디지바이스, 로봇 장난감, 자전거 등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기에 만족이 쉽게 메마르지 않았다. 플레이스테이션을 사주셨을 때가 기억난다. 처음 했던 게임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데 만족감을 넘어 경이로울 정도였다. 처음 마주한 비디오 게임의 현실은 내가 알던 현실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그 만족감과 쾌감을 지속하기 위한 날들이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렇게까지 내 요청을 다 들어주셨기에 나의 만족감은극에 달했고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장난감이나 핫한 아이템들을 들고 학교를 가면 곧바로 주목을 받았다. 친구들이 몰렸고 쉬는 시간에는 온통 아이템과 장난감 관련 얘기만 했다. 서로의 장난감을 비교하며 즐겁게 놀았던 순간들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때 디지몬 열풍 때문에 디지몬을 키우는 디지바이스가 꽤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친구들끼리 디지바이스를 가지고 자기가 키운 디지몬으로 대결을 하기도 했다. 학교에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게 더 중요하다. 그 당시 어린 친구들이 디지몬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됐다. TV의 디지몬 세계를 학교에서도 경험하고 싶었기에 다들 디지바이스 하나씩은 가지고 등하교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릴 때는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만화영화의 전성기나 다름 없는 어린 시절을 살아오며 만족감의 게이지를 최소 50% 이상은 채워놓아야 한다는 마인드로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디지바이스 이외에 포켓몬, 유희왕 등 갖고 싶은 장난감과 카드들을 가질 때의 만족감, 새로운 게임기를 얻은 만족감, 처음으로 컴퓨터를 장만했을 때의 만족감은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로 생생하다. 애초에 만족이란 게 끝이 없다. 겉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만족에 대한 지표와 상태를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다. 기술이 발전하고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만족의 수준이 점점 더 높아지는데 끊임없이 만족을 추구하다 보면 자칫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한 회의에 빠질 수도 있다. 예전의 만족감을 쉽게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허함과 실망감으로 인해 한탄하거나 좌절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는 게 어려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만족도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당연히 내가 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떠한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지를 잘 알고 있어야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만족할 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여유가 생긴다. 원하는 것을 갖게 되었을 때, 목표를 달성하거나 원하는 성과를 이루었을 때 기분이 좋고 만족감이 느껴진다. 이대로만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보다 더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달리기도 한다. 변화와 트렌드에 뒤처지면 안 되기에 더 큰 목표를 향해, 더 좋은 성과를 위해 달린다. 자기계발과 성공문화로 인해 만족을 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와 문화는 개개인의 만족도의 수준을 최고치로 높였다.
SNS, 숏폼, 핫플레이스 등 시대의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소비와 여행 문화가 만족에 대한 객관화를 쉽지 않게 만들었다. 정보의 홍수가 콘텐츠의 홍수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만족에 대한 갈망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만족을 해야 일상이 편하고 그렇지 못하면 우울하거나 마음이 편하지 않다. 사실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개개인은 이미 엄청난 자산을 가지고 있다. 바로 만족이란 자산이다. 돈은 명확한 숫자로 계산된다. 눈에 보이는 돈은 관리가 되지만 보이지 않는 만족은 쉽게 관리가 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만족은 흐름을 탄다. 어릴 때 차곡차곡 쌓아올린 만족의 적립금액이 나이가 들어서 없어진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소비 패턴이 변하지 않듯이 만족 패턴도 변하지 않는다. 보이는 현상은 다르게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본질이 바뀔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시험을 잘 봤던 경험이 많아지면 나이가 들어서도 그 경험을 계속 해야 한다. 그 경험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면 만족감의 결핍으로 인해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어릴 적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 가질 수 있었기에 이러한 경험들 역시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은 성장을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형태로 기존의 만족감을 찾기 위한 행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이 아니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만족 트레이닝으로 인해 다져진 결과다. 내가 자연스럽게 느끼는 만족감이 어느 순간 무의식적으로 체계화되어 하나의 감정적인 알고리즘으로 이어진 것이다. 만족감을 느낀 경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더욱 그 만족감을 느꼈던 순간들에 머무르고 싶어질 뿐만 아니라 그 만족감이 당연하다고 느끼게 되어 다른 것들로부터 얻는 만족감에 대한 관심이 무뎌지게 된다.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성과를 얻을 수 있고 더더욱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쉽게 대응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 언제나 성장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상황은 문제가 없는데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자칫 가져올 필요도 없는 불행과 마주할 수 있다. 자기관리를 잘하면서 지금의 상황을 잘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지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생각보다 만족을 하며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만족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식의 가치관이 우리 사회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만족을 하면 뭔가 불안하고 더 나아질 수 없다는 식의 생각들이 더더욱 노력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날들만 살아가게 한 것은 아닐까?
만족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만족의 수명은 그다지 길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예전에 느꼈던 만족이 그리워진다. 그 느낌을 잃지 않고 싶기에 어떻게든 행동한다. 내 건강 상태와 경제적 상황에 대한 판단은 만족을 느꼈던 과거와 추억이 먹어치웠기에 만족을 느끼기 위한 견제 장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족을 찾고 찾고 또 찾는다. 다시 느끼면 기분은 좋아지지만 역시나 오래가지 못한다. 에너자이저처럼 힘쎄고 오래가는 만족은 없을까? 절대로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미 높아진 만족의 기준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예 없지는 않다. 대신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원래부터 100만큼의 만족을 느껴야 행복했던 사람이 갑자기 70이나 80의 만족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해보자. 일상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더군다나 그 만족도가 50으로 떨어진다면 아마 살기 싫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기존의 만족도을 조금만 낮춰도 금단 현상이 올 것이다. 당연히 느껴야 하는 것들을 느끼지 못하게 되니 모든 면에서 힘들다.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높아진 만족도 수준을 계속 유지한다면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워질 것이다.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 휘청거리는 만족의 경계선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을 만큼의 훈련이 필요하다. 요즘처럼 외모와 물질, 눈에 보이는 것들이 중요하게 인식되는 시기에 만족할 줄 아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만족하는 것도 이제는 능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클릭 한 번으로 만족을 사고 파는 시대에서 만족의 범위를 통제할 수 있다면 이미 수천만 원 이상의 돈을 번 것이나 다름 없다.
대한민국의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해외 어디를 나가도 한국만큼 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대중교통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어디를 가더라도 편의시설이 있다. 카페 좌석에 자기 물품을 놓고 화장실을 갈 수 있는 나라는 아마도 대한민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편안하게 내가 원하는 것들을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다. e-커머스와 OTT 덕분에 굳이 밖을 나가지 않아도 편안하게 내가 즐기고 싶은 것들을 즐길 수 있고 원하는 물품도 클릭 몇 번으로 구매할 수 있다. 분명 과거와 비교했을 때 삶의 방식이 훨씬 편해진 것은 맞다. 하지만 만족도의 수준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편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정작 만족하기 쉽지 않은 날들이 늘어난다.
이제는 편안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줬던 기술과 도구들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활용하여 적절한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진 세상이 되었다.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다. 만족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느낀 만족감의 정도만큼 그에 따른 대가도 뒤따르기 마련이다. 만족하지 못하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돌아갈 곳을 찾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 택한 선택이 오히려 자유에서 멀어지는 선택이 되어버리는 역설적인 상황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만족하지 못하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참지를 못하니 무리를 하게 되고 결국 삶의 중앙선을 넘어 막다른 길에 빠진다. 그렇게 잘만 느꼈던 만족이 어느 순간 일상에 혼란을 주는 매개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혼자 특정한 공간에서 걷고, 느끼고, 보고, 뛰는 것이 자유일까? 아니다. 자유란 내가 돌아갈 곳이 있는 삶을 살면 느낄 수 있다. 그 돌아갈 곳이 집일 수도 있고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하는 공간일 수 있다. 또 자신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곳일 수도 있다.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유가 내 곁에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한 공간이 시끄러울 수도 있고 조용할 수도 있지만 편안한 마음이 느껴짐과 동시에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구나 자유로움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뭔가에 만족을 하지 못한다면 자유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만족할 줄 아는 경건함은 자기 삶에 큰 이익이 된다. 만족에 대한 합리화가 끝없이 이어질수록 삶의 행보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흔히 단순한 게 제일 좋다고 얘기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이어져 왔던 만족에 대한 행보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된다. 성인이 되면 성숙해진다고 했는데 정작 만족해야 하는 상황에서 만족을 못하니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며 어떻게든 만족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가고 또 살아간다. 그러다 뒤늦게 알게 된다. 아... 그냥 그때 만족할 걸...
누가 알려준다고 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귀로 전달 받은 정보와 조언은 생각보다 머릿속에 각인이 잘 되지 않는다. 감정의 영향력과 지배력은 그만큼 대단하다.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 만족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결국 스스로가 직접 경험하며 느껴야 한다. 만족을 모르는 행보가 어느 순간 만족을 알게 되는 행보로 바뀌게 되면 그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만족주의. 더 큰 만족을 얻기 위해, 현실과 동떨어지며 비약적으로 보이는 만족을 얻기 위한 가치관에 휩싸여 눈에 보이는 자유마저 잃을 수는 없다.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많음에도 굳이 그 길로 가는 이유가 뭘까? 큰 만족,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 만족, 잊고 싶지 않은 과거의 만족을 느끼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에 기대했기에 최선도, 차선도 아닌 최악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 스스로의 욕심 때문에 돈보다 더 중요한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
100세 시대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게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 솔직히 잘 모르겠다. 건강하게 사는 방법들과 매뉴얼은 어디서든 찾아보고 실천할 수 있지만 정작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현되는 불만족이란 마그마가 기본적인 상식과 이성을 녹여버려 편안한 일상마저 불행한 일상으로 바꿔놓지 않을까?
삶은 생각보다 길다.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불만족보다 만족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다. 만족하며 살아가는 게 당연하며 불만족을 느끼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만족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그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번 학습된 만족도의 수준을 조절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지금은 어느 정도 만족을 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많은 것을 이루고 싶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싶었다. 인싸가 되면 어떤 느낌일지 참 궁금했다. 더 큰 만족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평온한 하루를 살아가려면 만족할 줄 알아야 했다. 날마다 내가 원하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정신적으로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마인드 훈련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큰 만족보다 상황에 맞는 만족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 힘썼다.
열심히 노력만 하며 한 방향으로 달려왔던 삶에 빛이 드리워지기만을 원했던 지난 날들. 만족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상황들이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었지만 한 순간이었다. 성숙한 삶은 객관적인 자기만족과도 이어졌다. 지금 나의 상황이 어떻든 간에 내가 되돌아갈 수 있는 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의 만족을 많이 누리기 보다는 건강한 만족을 조금씩 누리면서 살아가는 게 삶이란 항해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