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란 지도를 펼치다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야만 하는
최소한의 보루가 존재하는가
인생은 물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나이를 한 살 먹을 때마다 세상도, 나도 변해간다. 변화의 흐름속에서 살아가는 나,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시절들을 지나 세상의 지식과 정보를 알아가며 생각과 지혜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살아가려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공부와 자연스럽게 친해졌지만 본성을 거스르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처음부터 흥미로운 마음으로, 호기심이 넘치는 마음으로 접한 공부가 아니다 보니 정신적 체력과 건전성은 바닥을 드러냈다. 좋은 성적과 웃어른들의 칭찬은 잠깐일 뿐 테두리 안에서 보살핌을 받는 일개 학생에 불과했던 내가 진짜 현실의 모습을 알기까지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일찍 깨달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천재가 될 수 있었을까?
대학생활 역시 만족보단 불만족이 많았다. 나는 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뭐가 좋아서 어디를 전공했고 이 대학에 들어갔다는 식의 생각만으론 장기적인 미래를 계획하기가 어려웠다. 가장 본질적인 질문인 뭐가 좋고 싫은지, 왜 이 일을 해야 하고 이러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도 이 질문은 참으로 답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답변할 수 있지만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기 힘든 교육만 받아서인지 점수를 잘 받고 시험에 합격하는 방법은 알지만 정작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는 것에 있어선 완전 문외한이었다.
시간이 지나 취업을 했다. 취업을 했지만 대부분의 날들을 돌이켜 보면 설렘보단 빨리 끝나고 퇴근했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밤을 새는 건 일도 아니다. 주말에도 계속 그거만 붙들고 있고 심지어 밥 먹는 것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다. 비록 대부분의 날들이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했지만 웬일인지 주말이나 쉬는 날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고 있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주말에도 어김없이 코드와 참고 자료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밤을 새는 것에 있어서도 멘탈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아!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일이 내 적성에 맞구나!' 라고 말이다.
내가 생각한 미래는 내가 작가로서 돈을 벌며 자유롭게 활동하는 모습이었는데 막상 나에게 맞는 일을 찾으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나는 개발자이자 작가로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뒤늦게 인생의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연봉의 액수도 중요하지만 돈의 영향력보다 자신의 마음이 외치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장기적인 미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알바도 몇 번 해보고 취업하기 전 몇몇 분야의 일들을 경험해봤지만 적성보단 돈이 우선이었던 적이 많았다. 인생을 지탱해주는 요소 중에 하나가 돈인 것은 맞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주는 무형 자산과 본인의 마음가짐이다. 행복과 안정감을 돈과 물질로만 유지하긴 어렵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영향력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을 지켜줄 수 있는, 무너지지 않고 버티게 해줄 수 있는 뭔가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얻었다. 그건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공부였다. 일을 하지 않으면 활력이 떨어졌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생각과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세상의 편안함과 서비스를 누리고 싶은 마음은 넘쳐났는데 왠지 모르게 원하는 것만 더 많아졌고 욕심만 더 커졌다. 바라는 건 많은데 내가 일을 많이 하지 않아도, 노력을 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만 더 강해졌다. 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 인생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보니 결국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관심사, 개인적으로 꾸준히 해왔던 공부와 지적 활동이 내 인생을 지탱해주는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과거에는 취업하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공부했다.
하지만 이제는 용기와 활력을 잃지 않기 위해 일하고 공부한다.
나에게 있어 일과 공부는 더 이상 점수를 잘 받거나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켜야만 하는 최소한의 보루이자 정신적 요새나 마찬가지다. 왜 이렇게까지 생각을 해야 하는지 처음엔 잘 몰랐다. 나 역시도 대한민국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스스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구축하며 공부하는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변칙적인 행보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교수님과 권위자 분들의 가르침과 생각을 따르기만 한다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역량이 쉽게 향상될 수 없다. 현 세상은 가치관의 변동이 심하고 기존의 가치관들이 시험 받고 있는데 이런 복잡한 상황속에서 과거의 참고 자료나 가르침, 80년대나 90년대에 통하는 생각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일도 변하고 공부도 변한다. 일하는 방식이나 공부하는 방식도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일과 공부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인생이 안정을 되찾는다고 해서, 먹고 사는 것만 신경쓰기 버겁다고 해서 공부를 하지 않거나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고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계획도 조금이나마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방황도 많이 했다. 그래서 나의 보루가 무엇이고 정신적 요새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지켜야 하는 것들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인생에서 최소한 이것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내가 지켜야만 하는 것들이 내 인생을 지탱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보루와 요새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일상에 악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인생에 큰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사실 내 보루를 지키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다. 너무나도 많은 유혹거리들과 홍수처럼 넘쳐나는 정보들이 일과 공부의 방향성의 혼선을 주기 때문이다. 난 그때마다 내가 왜 일을 하는지, 왜 공부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그래야 지금 내가 가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똑바로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알림과 이메일의 수신 알림은 아날로그적이고 직선적인 일상을 편파적이고 띄어쓰기 가득한 일상으로 바꿔놓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의 몫이다. 일상의 평온함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으로 지켜야만 하는 보루, 그 보루가 무너지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무너지는 건 둘째치고 정신적으로 무너지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지켜야만 한다. 용기를 내기 위해, 활력을 잃지 않기 위해 일을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내 인생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말이다.
경제적으로 무너지지 않으려면 일을 해야 한다.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으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둘 중 하나라도 하지 않는다면 희망도,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