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란 지도를 펼치다
어떤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어떤 현실과 마주하고 싶은가?
상상속의 낭만은 어떤 모습인가?
과거의 낭만은 어떠했는가? 나의 어릴 적 모습은 어떠했던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모래밭이 있는 놀이터에서 모래를 만지며 두꺼비집을 만들거나 소꿉놀이를 했다. 놀이터 미끄럼틀과 줄타기는 늘 그렇듯이 인기가 많았고 철봉을 타기도 하며 매달리는 것에 대한 즐거움도 느꼈다.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먹는 떡볶이와 뽑기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막상 집에 가서 해먹는 떡볶이와 떡꼬치, 뽑기는 학교에서 먹었던 그 맛이 느껴지지 않아 크게 실망했지만 그마저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게 되었고 가끔 시간날 때 해먹는 떡볶이를 먹을 때마다 어릴 적 학교 다녔던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손편지와 쪽지를 주고 받으며 감정을 나누었으며 축구, 농구, 피고 등 여러 체육활동을 하면서 친구들과의 친해지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 바람의 나라 등의 게임은 인생에 있어 커다란 충격을 가져왔고 그 당시 게임을 즐겼던 사람들은 그 시대의 낭만을 잊지 못한 채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게임을 하고 있다. 스마트폰도, SNS도 없었던 그 시절이다. 불편한 것들이 참 많았고 지금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만에 누릴 수 있는 낭만이 분명히 있었다.
시장과 백화점은 사람들로 바글바글 했다. 극장이나 영화관도 붐빌 때로 붐비었다.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들을 가보면 활력이 넘쳐났다. 당시에는 온라인이 아닌 전부 오프라인이었다. 직접 방문해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게 일상이었고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기술의 영향력이 지금만큼 작용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직접 발로 뛰고 움직여야만 했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해가 잘 안 될 것이다. 그때는 그랬다. 플로피 디스크의 존재도 알지 못하는 지금의 MZ세대들에겐 더더욱 이해가 안 되겠지만 번거롭고 불편한 가운데 왠지 모를 정과 따뜻함이 있었다. 물론 바가지 씌우는 사장님들도 있었다. 하지만 오프라인 환경에선 온라인 환경에서 느낄 수 없는 현실감이 존재했고 그것 때문에 쇼핑과 소비에 빠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게 또 하나의 낭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어떤가? 이제는 예전과 같은 낭만을 누리긴 어렵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문물의 등장으로 인해 사람들의 삶과 사고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ChatGPT와 AI의 출현은 세상을 완전히 뒤흔들어 버릴 수 있을 만큼의 엄청난 파급력을 몰고왔다. 이제는 네이버와 구글보다 ChatGPT나 관련 AI 검색 툴을 더 많이 찾는다. 낭만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고 과거의 낭만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다르게 이제는 돈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트렌드를 어느 정도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21세기의 낭만을 추구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커머스는 그야말로 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물건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노트북이나 PC를 통해 판매 사이트에 접속해서 클릭 몇 번만 하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간편하고 번거롭지 않은 절차로 인해 더 이상 물건을 사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니 이 얼마나 편한 구매방식이 아닌가?
그렇다. 21세기의 낭만은 과거의 낭만과는 차원이 다르다. 세월이 흐른 만큼 삶의 방식도 완전히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곧 생각과 사고방식에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제는 SNS를 통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바라보는 것이 또 하나의 낭만으로 인식되어 '나'의 삶이 곧 '너'의 삶인 공과 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런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 낭만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낭만이 아닌 몇몇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낭만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의 삶이 '너'의 삶과 확연한 차이가 나는 모습들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는 돌아보지 않고 어떻게든 '너'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소비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삶이 꼭 '너'의 삶이 될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이상적인 낭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낭만은 무엇인가? 사실 많은 걸 바라진 않는다. 그저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한 주를 평안하게 살아갈 수만 있으면 그만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거나 과거의 친구들과 연락을 하며 지낸다든가 이런 건 별로 관심이 없다. 기회가 된다면 특정 커뮤니티에 참석하여 이런 저런 활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어쨌든 출퇴근을 하면서 돈을 벌고 가족들과 평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평일과 주말만 있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굳이 SNS를 통해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 저렇게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쉽게 동화되지 않고 나름대로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자유만 있다면 그만이다. 무엇을 더 원하고, 또 원하고, 계속 원하다 보면 결국 망가지는 건 본인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원하고 또 원하면 남는 건 결핍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저런 낭만도 지금 사회에서 누리기란 쉽지 않다.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어느 정도의 일상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도 결국 돈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요즘은 돈만 가지곤 안 된다. 공부를 해야 한다. 기술에 대한 이해와 감각도 있어야 한다. 기술에 대한 이해와 감각을 위해 기술을 깊게 공부할 필요는 없다. 단지 대중적으로 활용되는 기술과 그 트렌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고 접근을 해야 다음 스텝을 진행함에 있어 훨씬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생각해보자. 과거의 버스와 지하철의 모습 그리고 현재 2025년 버스와 지하철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접한다. 많은 것들을 접하지 못한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방식도 상당히 다양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낭만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낭만 역시 많이 달라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낭만 역시 누군가에겐 평범하지 않은 낭만이 될 수도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과거의 낭만과 지금의 낭만은 문화와 분위기에 있어 엄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기술의 발전은 곧 낭만을 추구하는 방식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제는 돈과 정보없이 즐길 수 있는 낭만은 찾아볼 수 없다. 블로그나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는 여행 정보나 노하우, 실시간 경험 등은 낭만의 종류와 형태마저 최적화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의 삶과 '너'의 삶이 공유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경험과 흐름도 시간이 지날수록 획일화된 낭만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도 가봤으니 나도 저기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으로 인해 '너'의 낭만은 곧 '나'의 낭만이 된다. 그렇다. 사람들의 생각은 주기적으로 SNS를 통해 형성된다. 사실 여기선 낭만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했지만 그 외에 다른 주제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낭만을 경험하고 또 경험한다. 그러다가 점점 더 럭셔리하고 뜻깊은 낭만이 무엇인지를 알아본다. 사실 추구할 수 있는 낭만에도 엄연히 계급이 존재한다. 누구나가 다 같은 낭만을 추구할 수 없다. 재정 상태나 현실, 삶의 배경을 고려했을 때 당연히 낭만의 모습과 양식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 뭔가 달라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죽기 전에 꼭 한 번 해보고 싶거나 한 번이라도 저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생각만 하면 괜찮은데 그걸 실천으로 옮기는 순간 낭만이 아닌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된다. 내가 추구하는 낭만의 성향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감에 따라서 기존의 일상까지도 완전히 전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지나치게 파이가 큰 낭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에 사로잡힌 것이다. 낭만, 참으로 좋은 단어이고 들을 때마다 설렌다. 하지만 내가 누리고자 하는 낭만이 대가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흔히 오타니 쇼헤이를 보고 낭만 야구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솔직히 상상하고 싶지도 않고 나라면 절대로 오타니처럼 살지 못했을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싶은 이상적인 낭만마저도 그에 대한 대가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과거의 낭만도 마찬가지다. 과거와 지금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기술의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거리의 분위기와 시장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마주했고 형태가 있는 것들을 접하면서 이전보다 더 많은 감각을 느끼면서 온라인에서 접할 수 없는 경험들을 많이 했다. 지금은 어떤가? 온라인은 만질 수 없는 세계다. 편안함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비대면이기 때문에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도 거의 없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 기술의 편리함을 통해 느낀 낭만이란 게 결코 가볍지 않음을 느꼈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굳이 외출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것에 있어 큰 문제가 없는 그런 세상이 아닌가? 그렇다면 과연 이걸 낭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환경을 자유자재로 오고가면서 느껴지는 낭만이야말로 진정한 낭만이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낭만이 다른 사람이 원하는 낭만일까?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혹인 생각했던 낭만이
지금 이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