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기억의 미학이라고...
마흔 살이 넘고부터는 어쩌면 그전부터 자잘하게 깜박거리고 헝클어지는 내 머릿속 때문에 정말 서글프다. 자궁 근종을 떼고 난소를 하나 또 떼느라 여러 번 수술을 하고 난 뒤 증상이 더욱 심해졌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칭구야는 야박하게 응수한다.
"그냥 너 늙는 거야."
휴대폰 들고 휴대폰 찾아다니고 안경 쓰고 안경 찾아다니고 주민등록번호도 갑자기 딱 까먹어버리고 책을 덮는 순간 내용 고스란히 잊어버리고 '뭐더라, 그게... 아...' 걸핏하면 단어가 입 안에서만 소용돌이치기 일쑤. 몰래 구구단을 외워보기도 한다. 7단부터 헷갈리기 시작!
어느 날엔 화장품 파우치 속에 식물영양제가 들어있던 적도 있다.
난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런데 주변에 나 같은 이들이 쫙 깔렸다는 사실에 고약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이놈의 심보라니. 나만 불완전하고 어수룩한 게 아니구나. 휴... 다행이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대통령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던 사촌동생의 말에 친구들은 깔깔거리며 익살스레 답해주었다.
"대통령이 잘못하셨네. 이름을 글케 어렵게 지어가지구는... 니 잘못 아냐."
파트리크 쥐스킨트도 말했다.
잊어버리지만 의미는 뇌리에 남아 삶을 변화시킨다.
어쩌면 어슴푸레하게 지워져서 우리는 또 곰비임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유머러스한 지우개 하나 머릿속에 세 들여놨다 치자. 선명했던 지금 이 순간도 내일은 희끗하게 지워져 있을 테니까. 그게 우리 삶이니까.
폼나게, 애써
기억의 미학이라고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