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오롯한 주인이던 때
가만 생각해보니 나도 중학교 때 허세를 아주 가지가지 떨었다. 반 친구들이 하이틴 로맨스를 읽느라 눈이 벌게져있을 때 '저런 건 애들이나 보는 거지' 속으로 시부렁거리며 헤르만 헤세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뭔 말인지 당최 알 길은 없었으나.
가요 톱 10 순위가 그 날 아침 화두가 되면 난 빌보드 차트를 넌지시 무심하게 아이들 속으로 툭 던지곤 했다. 경아파와 스잔파가 신경전을 하며 갈리고 소방차 팬덤이 형성되고 그 틈을 타 박남정 파가 세를 넓힐 때 나는 구석에서 지긋이 내려다보며
"쯧쯧쯧...애송이들..."
하며 혀를 찼던 것이다. 심지어
"진정한 음악은 퀸이지, 이것들아"
이딴 소리를 홀로 흘리기도 했다. 제 멋에 겨워 미칠 지경이었달까.
소위 꼴값을 떨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왜 참을 수 없이 그 시절의 내가 그리운 걸까. 그때만큼 나를 세상의 아니 우주의 한가운데 당당히 세워본 적이 있을까.
남들이 하는 거 난 하기 싫던 관성 거부 자주성과 나는 남다르고 특별하다 여기던 우주 유일 주체적 발상과 인간은 왜 태어나 지금 여기서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가 철학적 고민에 휩싸이던 때. 지구 평화에 이바지할 나를 상상해보던 때.
말하자면 그때의 내가 인생 통틀어 최고의 인문학적 인간이었다.
찬영이란 중 2 아이의 사랑스러운 카톡 상태 메시지를 보며 감수성 터지고 사람 냄새 진하던 나의 10대로 잠시 돌아가 보았다. 누구의 눈치도 압력도 박탈감도 침범하지 못하던 내 인생의 오롯한 주인이던 때. 못내 그리워서 눈가에 한 방울 눈물이 또르륵.
다시 오지 않을 눈부신 시절이니
실컷 허세를 떨도록 해라!
중 2 시인들아.
요 녀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