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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작가 Oct 23. 2018

간장은 어려워!

맛은 기막혔다


지난봄, 섣불리 햇살 속으로 뛰쳐나갔다가 겨울 끝에 숨어있던 봄추위에 딱 걸려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갱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중에 몸살까지 덮치니 며칠이면 낫던 감기가 열흘 꼬박 나를 잠식해버렸다.      

 

평소 말은 많이 하고 몸가짐은 가벼이 하던 나는 긴 병에 장사 없다고 말은 삼가고 몸가짐은 무거운 진중한 사람이 되어 식욕도 내려놓고 기운을 잃은 채 오래오래 우울하게 아파했다.     


그때 칭구야가 끓여내 준 따끈한 미역국.

내 인생에서 딱 두 번 끓여준 그의 미역국.


맛은 기막혔다. 


어찌나 들척지근 비릿 슴슴한지 한 입 떠 넣고 잠시, 이 정체모를 먹을 것을 목 안으로 넘길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에 휩싸였다. 미역은 떠다니나 미역국이라 할 수 없는, 국처럼 생긴 거무튀튀한 그것. 본인도 그 안에 뭘 넣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그것.    


그런데 그 맛은 오래전 칭구야와의 연애 시절을 소환했다. 생일날 서투르게 끓여와 내 입에 떠 먹여주던 딱 그 맛. 그 레시피에는 영업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어쩜, 이십 년을 뛰어넘어 한결같은 맛을 낼까.     


마트 간장 코너 앞에서 말문이 막히고 등골이 서늘했다는 남편. 수많은 종류의 간장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신비로운 체험을 했단다. 복잡한 간장 메커니즘에 머리가 깨질 것 같다는 칭구야의 푸념 안에도, 들큼 비릿한 미역국 안에도 뜨끈한 무엇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제 마누라 살뜰하게 거두어 먹이려는 곱살한 마음씨.     

 

그걸 알기에 정말 억지로 몇 그릇 먹었는데 신기하게도 감기는 나았다,라고 스스로 각인하고 있는 나. 차마 계속 먹던 약 덕분에 나았다고 절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 사랑을 적당량 첨가했다는 미역국은 우리 부부의 묘약일까. 


물론, 또 해줄까 겁은 조금 나지만... 해주면 또 꿀꺽꿀꺽 먹어야지 어쩌겠는가. 

우린 그런 징글징글한 부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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