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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작가 Oct 16. 2018

등 긁어주는 여자

쯧쯧, 나 아니면 누가


늦도록 함께 있다 헤어졌지만 이내 그리워 마음이 달뜨던 때, 주변과 배경을 모조리 지우고 오직 그에게만 집중하던 때,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던 때. 우리의 연애시절은 풋풋했다, 아마도.


그 뜨거운 전율의 느낌은 어느새 꼬리도 남기지 않은 채 멀어졌고 서로를 탐색하던 호기심 어린 떨림은 어디 어디 꼭꼭 숨었니, 못 찾겠다. 부부의 사랑은 그때와 생판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생활의 결과로써 경작되는 것이라는 신윤복 선생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는 농사짓듯 자식을 낳고 기르고 있으며 분리수거는 그가, 빨래는 내가, 주말 아침은 그가 평일 저녁은 내가, 청소기 돌리기는 그가 걸레질은 내가... 살림 사는 사소한 요령을 아웅다웅 터득하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일상사를 텃밭처럼 일구는 중이다.       


한바탕 싸운 뒤 서로 옹졸함과 치사의 끝장을 내고 있을 무렵 혼자서 벽에 대고 궁상맞게 등을 긁어대는 칭구야를 보고 있자니 


쯧쯧, 내 손톱은 저 냥반 등에
최적화되어 있거늘. 
나 아니면 누가.


측은했다. 어느새 그의 등판때기를 시원 칼칼하게 긁어주고 있는 나, 징하다.    


결혼하던 순간 한번 어른이 되었다면 그 후 우리는 이렇게 유치하게 싸우고 화해하며 서로의 인간 등 긁개로 다시 한번 어른이 되어 철드는 중이다. 뜨거움은 한소끔 가라앉았으나 밍근한 온기를 나누는 오래된 부부.


그렇게 쭉 질화로의 잿불처럼 타닥타닥 타고 싶다. 그렇게 쭉 그의 등을 긁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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