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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 Mar 21. 2021

숨은 그림 찾기

걸어다니는 유산

허리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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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는 내게 허리디스크 위험이 있다고 했다. 필라테스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허리가 길어서 그런 거란다. 허리가 길면 체형상 허리가 꺾일 수밖에 없고, 척추뼈 마디가 눌려서 허리디스크가 생길 위험이 높다는 거였다. 조금 억울했다. 이건 무조건 엄마 때문이다. 엄마를 닮아 내 허리가 길어서 그런거니까. 뭐, 그 덕에 뱃살이 안나오긴 하지만 동시에 허리디스크를 안고 살아야 하잖나. 어떤 하루는 엄마한테 고맙고, 오늘 같은 날은 엄마때문에 억울하다.



곱슬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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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했어요?"


 일 년 중 적어도 세 네 번은 듣는 말. 태생적으로 곱슬인 머리칼을 고등학생때까지만 해도 진심을 다 해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은 꼬불거리는 머리를 좋아한다. 가끔 머릿결이 매끈해보이면 걱정스럽다. 몸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왜이렇게 머리카락에 기운이 없지? 엄마는 젊었을 때 말 그대로 폭탄머리였다. 엄청난 곱슬머리의 소유자였는데, 파마까지 했었으니 말해 무엇하겠나. 사진 속에서 폭탄머리를 한 채 깔끔한 목폴라를 입고 환하게 웃는 엄마를 보면 생명력 넘치는 나무를 보는 기분이다. 그래서 머리칼들이 제멋대로 구불텅대기라도 하는 장마철엔, 내가 엄마 딸이라는 증거를 세상에 자랑하는 것 같아 괜히 뿌듯하다. 



발가락


 칼발이지만, 발가락 사이가 남들보다 넓다. 새끼발가락엔 쥐며느리발톱도 있다. 오랜 시간 서서 일을 하느라 달아버린 엄마의 발과, 가난한 주제에 여행에 미쳐 두 발을 바퀴삼아 싸돌아다니느라 달아버린 내 발을 나란히 두고, 엄마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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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하다 발톱까지 닮았네. 징그러워 죽겠다." 징그러워 죽겠다는 사람치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하긴 했지만.



웃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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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거울을 보는 기분이다. 내가 엄마 옷을 입고 있는 날이면, 할아버지는 내가 엄마라고 착각하시고는 "어멈아, 밥 좀 내와라" 말씀하시곤 했다.


"할아버지, 내가 훨씬 젊어요."

"야, 내가 훨씬 이쁘거든?"


 그래봤자 엄마랑 난 웃는 게 꼭 닮았었다. 엄마는 호탕하게 터뜨리듯 웃었다. 웃을 때 입을 가리는 걸 싫어했다. 웃는 게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왜 가리냐는 식이었다. 영화관에서 가족끼리 <과속스캔들>을 보다가 어떤 장면에서 엄마가 빵 터졌던 적이 있다. 엄마가 팝콘터지듯 웃음을 팡-하고 터뜨리자, 동생이 황급히 엄마의 입을 틀어막았다. 효과는 없었다. 엄마는 그런 동생때문에 더 큰 소리로 웃어 버렸으니. 동생은 내가 길거리에서 깔깔 대고 웃으면 모르는 척 하기 바쁘다. 엄마랑 나랑 웃는 건 똑같은데, 그래도 엄마 대우가 더 낫더라.



각진 턱


 키이라 나이틀리를 닮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한국 배우 중엔 남지현. 두 배우의 공통점은 하관이 발달했다는 거다. 예전엔 우스갯소리로 "턱을 깎아볼까?"하고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턱을 가리고 다니기도 했고. 근데 요즘은 귀족턱이라나, 각진 턱이 사랑을 받는 시대다. 각진 턱이 인기가 많아졌다기보다, 다양한 얼굴형을 사랑하는 시대가 된 거라고 봐야겠지만. 어쨋든 엄마도 아직 살아있었으면 미모의 중년 여성이 될 뻔했다. 원래도 매일 아름다운 사람이긴 했지만 말이다.

http://thefashionscreen.com/keira-knightley-begin-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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