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점심엔 팀원들과 점심을 먹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팀원이 총 7명인데, 그 중 4명은 세일즈맨이라 항상 외부에 있고, 나머지 한국인 직원들은 보통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하지만 월요일엔 폴란드 지사에 있는 마틴이 출장을 오는 특별한 날이라 오랜만에 다같이 점심식사를 했다. 수건돌리기를 하듯이, 우리는 지난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마렉은 여느 때와 같이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고 했고, 폴란드에서 온 마틴은 출장을 오는 김에 부모님도 모시고 주말에 미리 이 도시로 와서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그러다 내 앞에 수건이 떨어지면, 나는 한국에서 쉬는 날 가족들과 함께 했던 일들을 주로 이야기한다. 엄마와 함께 사우나에 갔던 얘기, 엄마가 사우나를 할 때마다 외할머니와 사우나에 갔던 어린 시절 얘기를 해줬든 얘기, 사우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사주는 바나나우유가 꿀맛같았다는 얘기...한국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지금은 곁에 없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이곳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떠나온 고국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들린다. 엄마가 살아있었다고 해도, 이 도시에 엄마가 존재하지 않는 건 피차 마찬가지고 회사사람들이 우리 엄마를 볼 일은 없었을테니까.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도 추억을 곱씹을 수 있어서 나는 이 도시에 산다.
화요일 : 드라마
퇴근 후 잠옷차림으로 와인을 마시며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하나를 틀었다. 첫 화부터 엄마가 죽는다. 흠...다른 드라마를 틀어본다. 엄마없이 온갖 설움을 겪으며 자란 씩씩한 여자주인공이 등장한다. 엄마가 멀쩡히 살아있으면 스토리 전개가 불가능한 건가. 이번엔 노선을 바꿔 왓챠로 가서 영화를 고른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컨셉이다. 이건 또 이것대로 마음에 안든다. 전부 제쳐두고, 유투브로 가서 잔잔한 노래나 하나 틀어놓고 멍이나 때려본다. 언제쯤 영상 속 존재하지 않는 엄마와 나의 엄마를 동일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요일 : 꿈
지난 밤 꿈에 가족들이 모두 나왔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로 엄마, 아빠, 동생이 여행을 온 컨셉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게마다 지하철 표가 매진되서 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이곳저곳을 헤매다 결국 지하철 타는 걸 포기하고, 그들을 데리고 종종 걸음으로 이 도시를 서성였다. 성에도 올라갔다가, 강변에도 데려갔다가 하며, 어느 한 군데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바삐 돌아다녔다.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데...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는데...점점 지쳐가는 가족들을 이끌고 점 찍어둔 식당에 들어선다. "네 명이 앉을 자리가 있나요?" 웨이터가 입을 벌리는 그 순간, 답을 듣기도 전에 잠에서 깨버렸다.
목요일 : 녹음파일
'이번 한 주도 열심히 살아보자!'는 열의가 가장 꺾이는 목요일에 야근을 하면 효과가 좋다. 월요일에 야근을 해버리면, 화요일도 열심히 살아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피로까지 더해져 오히려 한 주를 망치는 수가 있다. 하지만 목요일에는 아무리 야근을 해도 다음날이 되면, 금요일만 버티면 주말이라는 기대감에 카페인 없이도 각성상태가 되어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된다. 조금 이상해보일 수도 있는데, 여튼 나는 그렇다.
야근을 하고 돌아온 날엔, 잠이 들 때까지 엄마 목소리가 담긴 녹음 파일들을 연달아 틀어둔다. 혜인과 엄마가 통화를 할 때 혜인이 실수로 녹음 버튼을 눌러 저장된 파일이다. 그러니 기억속엔 없는 대화들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 녹음본들은 위안이 된다.
"언니는 집에 들어왔니?" "언니는 뭐하니?" "언니는 왜이렇게 싸 돌아다니니?" "엄마는 언니가 살이 쪄서 걱정이야. 그래도 금방 빠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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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대화 속에, 그것도 아주 자주 등장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된다. 그래서 엄마가 죽고 난 뒤 이 녹음 파일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슬프지가 않았다. 그저 위로만 됐을 뿐. 장례식 때 이모할머니가 그런 말을 했다. 너희들은 지금껏 엄마한테 평생 받을 사랑을 모두 받아서, 남은 인생에 엄마가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을거라고. 그 땐 저걸 위로라고 하시는 건가 싶었는데, 어쩌면 맞는 말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링겔이라도 맞듯이 엄마 목소리를 귀에 주입하며 엄마 없는 오늘을 또 살아내는 걸 보면.
금요일 : 외삼촌
외삼촌에게 전화가 왔다. 이곳 시간으로는 오후 1시지만 한국 시간으로는 밤 10시, 술에 거나하게 취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조카에게 항상 어른이어야 하는 삼촌은, 온 힘을 다해 풀린 다리와 혀를 부여잡고 대화를 이어갔다. 언제나 그랬듯 밥은 잘 챙겨먹는지, 요즘은 버스나 지하철을 잘못타진 않는지 물었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대화가 무르익을 때쯤, 삼촌은 엄마와 내가 얼마나 닮았는지 이야기했다가, 나와 혜인이 한 뱃속에서 나온 자매 치고는 얼마나 다른지를 이야기했다. 그러다 엄마가 딸들을 참 잘 키웠다는 고슴도치같은 말을 할 때가 되면, 이제 전화를 끊을 때가 된 것인데, 그 때마다 어김없이 삼촌은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가족들은 내게서 엄마의 흔적을 보고, 엄마의 냄새를 맡는다. 살아있는 유품이 된 기분이 나쁘지 않다. 가끔은 누군가의 유품이기 때문에 잘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