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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 Feb 21. 2021

다리가 되어준 사람들

그들이 있어 설 수 있었던 날들

사람냄새 묻히기


 퇴근 후 배가 고프지 않아, 허기가 지기를 기대하며 정처없이 걷는다. 이틀 전보다 공기가 조금 따듯하고, 살짝 갠 구름 새로 햇빛이 차분히 내리친다. 강 위를 떠다니는 백조떼 위로 드리운 다리를 건너다, 장례가 마무리되었을 재훈이 떠올라 전화를 걸어본다.

"여보세요."
"나야. 장례 마칠 때 된 거 같아서 전화했어."
"지금 막 납골당에 모셔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야."
"집에 누구 있어?"
"응, 솔희가 집에 먼저 가있는다고 했어."
"다행이네. 못 가봐서 미안해, 너는 그 때 나랑 같이 있어줬는데."
"어쩔 수 없지 뭐. 니가 한국에 있었으면 와줬을 거 알아."

 지금 재훈의 집에 있을 솔희라는 여자를 생각한다. 난장이 된 집을 부지런히 정리하고, 빨래를 널어 섬유유연제 향으로 집안을 은근히 채우고, 탁탁탁탁 정겨운 도마소리를 내며 재훈이 좋아하는 된장찌개 냄새를 미리부터 풍기고 있을 그의 연인. 나는 그 여자를 모르지만,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이 재훈을 돌보는 일을 넘어 재훈을 살리는 일이라는 건 안다.

 

 낡은 시가지 북동쪽 끝에는 성 하나가 우뚝 서있다. 완성하기까지 천 년이나 걸렸다는 이 성은 매일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관광객들은 수채화같이 부드러운 스테인드글라스에 한 번, 엎드려 카메라를 들이대도 담을 수 없는 거대한 규모에 한 번, 이 오래된 성이 지금도 대통령 집무실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성문은 여럿인데, 그 중 성 뒷편 언덕에 있는 출입구는 관광객이 잘 드나들지 않는다. 자신을 평생 숨겨본 적 없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같은 입구 옆에는 헐어빠진 벤치가 몇 개 놓여있다. 그 중 가장 가까운 벤치에 앉아 먼지와 함께 뿌옇게 피어오르는 노을을 멀거니 바라본다.


 성벽 안에서는 여행 가이드들이 이 나라 국민도 잘 모르는 역사를 자신의 역사인냥 쏟아내고, 관광객들은 이내 증발해버릴 지식을 주어담느라 바쁘다. 시끄럽고 북적이는 분위기가 싫어 구석진 벤치를 찾아온 거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그 반대다. 성 담벼락을 타고 흘러나오는 온갖 소리들이, 내가 이 벤치를 찾아오는 이유다. 혼자임을 잊지 않을 수 있으면서도, 사람냄새를 끊임없이 묻힐 수 있으므로.


지팡이가 아니라 다리였던 사람들


 "나와서 받아가."


 본가 근처에 사는 J는 매번 뜬금없이 전화를 걸었다. 나가보면 양손 가득 반찬거리를 들고 서 있었는데, J의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들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서울 생활을 정리해야할지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J는 서울에 있는 자신의 자취방에서 함께 지내자고 했다. 하지만 J에게 짐이 되고싶지 않아 그 제안을 거절했었다. 그 뒤로 한 달 쯤 시간이 흘렀을 때, 함께 점심을 먹던 J가 말했다.


"우리 부모님 얼마 전에 자취방 들렸다 가셨는데, 왜 니 짐은 없냐고 하시더라.

당연히 니가 와서 살고 있는 줄 아셨나봐."


그러면서 J는 자취방 열쇠를 복사했다며 무심히 건넸다. 


"언제든 와서 쉬어. 남의 집이 더 편한 날도 있잖아."




 고시공부를 하는 S는 6개월 내내 밤마다 나와 통화를 했다. 그 맘때쯤 나는 S와 통화를 하다 지쳐 잠들어야만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방안에 앉아있으면 조그만 자취방이 내 몸보다 작게 쪼그라들어 온몸을 옥죄는 기분이었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천장이 무너져내리진 않을까 하는 헛된 걱정에 겁이 났다. S에겐 별의별 이야기를 다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나누지 못했던 근황부터, 장례식장에서 목격한 온갖 못 볼 꼴들...하지만 S는 통화할 때마다 그런 말을 했다.


"난 너랑 통화하는 게 너무 좋아." 


 S의 몸은 나와 다른 도시에 있었지만, 밤마다 내 곁에서 함께 잠들었다.




 밤 12시가 넘어가는 한여름 밤, 더위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H는 혼자 밤 산책을 하고 있다는 내 말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근처에서 차 한 대를 빌려왔다. 그리고 나를 차에 태워서는, 서울 한 가운데 있는 전망대로 데려갔다. 촘촘한 안개를 뚫고 가느다란 빛을 뿜어내는 야경을 보며 우리는 여느 때처럼 실없는 소리들을 해댔다. 날이 흐려서 별로라는 얘기, 그래도 바람 쐬니 좋다는 얘기, 운전 잘 하고 싶다는 얘기...


"그 학교는 돈이 많으니까 새벽 3시에도 불 켜져있을거야." 

   

 야경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근처 대학교 교정으로 나를 데려갔다. 주차금지 팻말 아래에 주차를 하고 캠퍼스를 걸었다. 예상대로 캠퍼스는 환했다. 사람도, 꽃 한 송이도 없는 교정에서 기묘하게도 꽃향기가 났다. 새벽 4시가 다 되어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기운을 되찾은 나는 H에게 평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잘대고 있었다. 우울함이 가득 담긴 주머니에 H가 몰래 작은 구멍이라도 뚫어놓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서울 이곳저곳을 서성이고 다니는 동안 그 작은 구멍으로 나의 우울이 조금씩 솔솔 새어 나가도록.

 
 그들은 당시의 내게 조금 더 편하게 서있고 싶어서 짚은 지팡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 끔찍한 애도기간을 걸어 나올 수 있게 해준 두 다리였다.
 느닷없이 울어버리거나, 갑자기 오바해서 깔깔대거나, 급격하게 불안해하면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있어서였다. 그 마음들이 너무 예뻐서, 엄마가 없는 세상이 어이없게도 아름다워보일 때가 있었다. 사람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 떠난다고 한다. 하지만 탄생과 죽음 그 사이엔 최소한 타인을 디디고 서야만 살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모든 관계를 버리고 떠나온 주제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의 웃음소리라도 듣겠다고 이 벤치를 찾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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