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세상만사가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중 가장 막막해지는 경우가 바로 '나'를 잘 모른다고 느껴질 때다.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할 수 있는지, 뭘 사랑하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답답한 마음에 찾아본 각종 자기 계발 영상과 서적에서는 '나를 찾아라'라는 말이 수도 없이 나왔지만 그걸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떠먹여 주기를 바라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를 도대체 어떻게 찾으라는 건데? 내가 좋아하는 게 도대체 뭐야?
생각 없이 살아온 사람이 당면한 이 존재론적 문제는 나에게 큰 혼란과 우울과 불안을 안겨주었다. 나는 취향도 선호도 섬세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냥저냥 괜찮았다. 좋게 말하면 무던하고 편안하다고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둔하고 무심한 성격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사람에게 뭘 좋아하냐고 물어서 답을 얻으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소거법이다.
예를 들어 점심 메뉴를 골라야 한다고 해보자. 뭐 이것저것 메뉴를 나열해 보면 다 그냥저냥 괜찮게 느껴진다. 여기서 집중해야 할 것은 우리가 내키지 않는 쪽을 거침없이 잘라내는 것이다. 지금 느끼한 건 별로야. 더워서 뜨거운 것도 먹기 싫어. 이런 식으로 쳐내가다 보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어느 정도 추려진다.
하지만 이건 수십 년 간 쌓아 온 음식에 대한 빅데이터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아는 이것보다 힘들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다지 다양한 활동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가 해왔던 활동들 중 나를 힘들게 했던 특징들을 떠올려 보고, 그 특징을 가진 일을 제외하며 생각해본다.
이렇게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찾아나간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도 해보는 실행력이다. 아무렇게나, 막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정말 안다. 어떻게 뭘 아무렇게나 하라는 건지. 그러다 망하면 어떡하라고!
하지만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아는 데 조차 실행력은 옵션이 아닌 필수다. 결과의 책임을 기꺼이 떠안을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러니 정말 작은 것부터 시도해보자. 민트 초코맛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면, 한번 먹어보자. 혹시 나도 민초단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아메리카노밖에 마시지 않았다면 바닐라 라테도 한번 마셔보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 정도의 리스크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 먼저 시도해보자. 그리고 이 리스크의 스케일을 조금씩 조금씩 키워가 보자.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고, 싫어하는 것 역시 더 잘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