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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두 codu Jan 12. 2023

진동으로 전하는 경험이 아닌 경청의 기억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메모리아>(2022) 짧은 리뷰



<메모리아>는 제시카의 잠을 깨운 커다란 파열음의 정체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불현듯 들려온 ‘쿵!’ 소리는 제시카의 머릿속에서 반복된다. 자신에게만 들리는 이 소리를 객관적 실체로 마주하기 위해 제시카는 사운드 엔지니어 에르난을 찾아간다. 에르난은 소리를 합치고, 가공하여 제시카가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머릿속 소리를 재현하는 이 장면은 정확히 영화가 하는 일과 일치한다.


소리의 체험은 의문을 남긴다. 우리는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소리의 흔적을 뒤쫓아야만 그 정체를 알게 된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좇는 인간의 방식도 이러하다. 인간은 자기 앞에 펼쳐진 경이의 실체를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 아름다움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시, 그림, 음악과 같은 단편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재현될 따름이다. 인간이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방법론이 있다면 그것은 고고학적 방식일 것이다.


제시카는 동생이 입원한 병원에서 발굴한 유골을 연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제시카는 이런 것들에게 자연스럽게 이끌린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남긴 흔적을 좇는 듯하다. 제시카는 연주 소리에 이끌리고 시를 읊으며 소리를 좇는다. <메모리아>에서 소리는 그 무엇보다 고고학적 의미를 지닌다. 저장되고 발굴된 소리는 과거의 기억을 생생히 불러온다.


후반부에 제시카는 물고기를 손질하는 다른 에르난을 만난다. 전반부의 에르난이 소리를 다루고 조각해 출력하는 사운드 엔지니어였다면, 후반부의 에르난은 소리를 수집하고 저장하는 존재다. 쿵 소리를 듣게 된 후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제시카는 꿈을 꾸지 않는 에르난에게 잠들기를 청한다. 모든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에르난의 잠은 마치 죽음과도 같은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 이미지는 멈추고 소리는 흘러간다. 사운드와 이미지의 분리는 영화와 관객 사이의 틈을 만들어낸다. 그 틈에는 각자의 상상력과 기억이 틈입한다. 이 잠깐의 멈춤, 죽음, 잠을 통해서 과거의 기억이 살아난다.


과거의 진동을 저장하고 있는 에르난에게 ”이야기는 충분하다. “ 그러니 그에게는 더 이상 난폭한 경험이 필요하지 않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경청이다. 들어주고 공명하여 울려줄 안테나가 필요한 것이다. 제시카의 개인적인 소리의 체험은 에르난을 만남으로 인해 공동의 기억, 즉 역사가 된다. 불가해한 세상의 아름다움과 모든 곳에 남아있는 소리와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 소리는 아픔이며 행복이고, 과거이며 현재이다. 소리의 정체가 우주선이든, 지진이든, 폭발이든 그것은 듣는 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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