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참 밝았다. 초여름 밤공기는 차가웠고 나는 설레고 불안해서 약간 몸이 떨렸다. 말없이 걷다가 준이 내민 손을 잡았다. 서로의 낯선 손을 잡은 우리는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떤 말들로 시작되었는지, 말이 없었는지도 더 이상 기억나지 않지만, 어두운 방 안에서 그의 그림자 같은 실루엣이 내 위로 겹쳐오던 장면이 기억난다.
천천히, 그는 내 온몸에 입맞춤을 퍼부었는데, 사랑스럽고 집요했다. 나도 그도 서로의 살결을 만지면서 몸을 더 가까이 겹쳤다. 우린 서로의 모든 굴곡을 빠짐없이 쓸어내렸다. 준은 내 손길을 즐기다가도, 내 두 팔목을 한 손으로 잡아 올려서 옴짝달싹 못 하게 하기도 했다. 그와 몸싸움할 때도 느꼈던 단단한 골격, 강압적인 몸짓이 너무 짜증나고 꼴렸다. 역시 그는 참 맛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가 움켜쥔 팔목을 풀고 그의 위로 올라탔다.
나도 그에게 똑같이 키스를 퍼부었고 엉뚱한 곳에 입을 갖다 대기도 했다. 그런 걸 좋아한 파트너는 없었지만 실은 나도 남자의 온몸을 열렬하게 애무하고 싶었다. 준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에게 흰 도화지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원하는 색깔을 한껏 칠하고 싶은 사람. 단단한 몸의 이곳저곳을 물고 빨다가 조금씩 깨물어 보기도 했다. 다시 내 위에 올라탄 그가 아래로 손을 뻗었다. 귓가에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좋은 섹스엔 세 가지 법칙이 있어. 숨을 잘 쉬는 것,”
살살 달래듯 나를 만지던 손가락이 이제는 들어올 듯 말듯 괴롭히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는데, 그의 말에 홀린 듯이 숨이 터져 나왔다.
“소리 내는 것,”
낮게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가 귓속을 먼저 침범했다.
“그리고 같이 움직이는 거야.”
미끄러지듯 내 몸에 들어온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앞뒤로 움직였다. 그에 맞추어 내 몸도 같이 움직였다. 그는 가벼운 절정을 맞아 살짝 땀이 난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는 나를 껴안았다. 껴안아? 뭐야, 끝났어? 아마 벙찐 내 표정이 읽혔는지 그는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아, 미안해. 나는 삽입까지는 낯선 사람과 하기 어려운 것 같아. 절대 네가 매력적이지 않아서는 아니고, 내 마음의 문제야.”
이런 일은 처음 겪어봐서 참 신기했다. 그러고 보면 우린 만난 지 며칠밖에 안 된데다 대화를 많이 해보지도 못했으니, 낯선 사람이라는 말이 맞았다. 오히려 준에게 마음의 거리가 거의 없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나는 자기의 선을 인지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민함과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에이, 거 함 해주지~’하는 철없는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문득 두렵기도 했다. 내가 매력이 없었던 거 아닐까? 그냥 친절하게 말하느라 아니라고 한 거라면? 바로 그의 말을 의심하는 게 너무 지독해 보일까 걱정됐지만 한번 피어난 불안은 스멀스멀 번졌다. 이대로는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아서, 그에게 솔직하게 말해보기로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알 수 없는 믿음을 가지면서.
“사실 나는 남자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달리곤 하거든. 그래서 네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혹시 내가 매력이 없던 건 아닐지 걱정돼.”
“절대 아니야! 그럼 내가 너랑 왜 이러고 있겠어? 정말로 원나잇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해져서 그런 것 같아."
그 뒤에 그가 덧붙인 말은 잊을 수 없다.
“너의 질문이 정말 용감하고 멋지다. 묻지 않았으면 너는 네 머릿속의 이야기에 갇혀 있었을 텐데 그러는 대신 현실을 살펴본 거잖아. 네가 이렇게 물어볼 수 있었으니, 앞으로 점점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될걸.”
알맞은 말, 알맞은 거리감, 모든 것이 편안하고 보드라웠다. 좋아하는 사람 곁에서 너무 긴장해서 쉽게 잠이 들지 못하던 지난날의 나. 그런 나는 준과 서로 껴안고 있다가 까무룩 잠이 들고 깨어나 서로를 쓰다듬고 또 잠들기를 반복했다.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침에 깨어나면, 나는 이 커뮤니티를 떠나고 준은 남게 된다는 덧없는 내일조차 꿈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