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한 권은 카잔차키스를 읽기로 했다.

세번째 독서, <최후의 유혹>과.

by 공존

아버지 미할리스 대장은 아홉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터키인들 손에 교수형을 당한 기독교도들의 발에 입을 맞추게 함으로써 그들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게 하고는 명령했다.

"잘 보고, 죽을 때까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아버지, 누가 이들을 죽였어요?"

아버지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자유."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것이 상병을 단 이후였다. GOP에 투입되어 지옥같은 여름과 가을을 보내던 와중에 다녀온 휴가에서 마침내 그 책을 샀다. “마침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책의 명성이야 익히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후배에게 선물도 해준 바 있었던 책을 이런 저런 이유로 아직 손에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문학을 즐기지 않았다.


군대의 서슬에 혹독하게 짖이겨지고 난 어느 밤, <그리스인 조르바>의 첫번째 장부터 홀리듯이 읽어들어갔다. 조르바라는 노인의 천연덕스러움이 흥미로웠고, 거침없는 삶의 태도에 마음을 빼앗겼다. 술집 여인, 광산, 마지막 춤까지. 불 꺼진 내부실에서 창틈으로 들어오는 복도의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을 때 나는 크레타를 여러번 꿈꿨다. 그렇게 인생의 책이 정해졌고 권말에 함께 실린 역자 이윤기 선생님의 <미할리스 대장> 인용구, "자유"를 읽고는 머릿속에 천둥이 내리치는듯한, 인식적 개벽을 체험했다. 자유!


보라색 색연필로 어지럽게 밑줄이 쳐진 나의 첫 카잔차키스와의 만남은 아끼던 후임에게 물려주고 군대를 빠져나왔다. 자유다. 내가 읽은 것은 하나의 복제품일뿐. 제대 후 서점에서 세권을 더 샀다. 친구와 선배에게 한권씩 선물하고 한권은 책장에 두었다. 나중에 그 한권도 생각나는대로 다른 친구에게 선물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할리스 대장>은 그러나 몇년후에나 폈다. 그리고 완독하는데도 몇개월이 걸렸다. 700페이지가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인데 크레타섬의 민중들의 일상을 묘사하는데 300페이지가 그대로 할양되었다.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기기가 참으로 지루했다. 제대 후 나는 시사IN과 한겨레21을 읽는데 한창 재미가 들려 매주 2종의 잡지를 사 통학길과 출퇴근길에 읽곤 했고, <그리스인 조르바>의 짜릿한 해방감과는 거리가 있는 <미할리스 대장>는 몇번이나 읽다가 포기했다. 결국 야자 감독을 하는 하루 날을 잡아 1권을 마쳤는데, 기가 막히게도 급격히 서사가 진행되며 2권을 미친듯이 재미있게 읽었다. 대하소설처럼 방대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처음이 읽어낸, 내 독서경험의 한걸음 진전이기도 한 뿌듯한 책이다.


<미할리스 대장>을 읽고 8년이 지난 지난 1월 1일 <최후의 유혹>을 다 읽었다. 책을 사고 한두해 뒤가 지나서 말이다. 처음 책을 편 것이 1년 전 9월이다. 두번째 책과 비슷했다.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300페이지가 프롤로그다. 다양한 유대 민중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삶을 바라보는지 느긋하고 천천히 묘사한다. 이때쯤 지루해서 책을 놓은 것은 아니고, 대학원 공부 때문에 힘에 부쳤다. 그 뒤로도 읽어야 할 책이 워낙 많고 또 한권에 붙들려있는 성격이 아닌 탓에 <최후의 유혹>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밀려있다가...12월의 마지막 한 주에 나머지 분량을 모두 읽기로 한 것이다. 카잔차키스의 소설이 서사보다는 한 줄 한 줄 문장의 힘에서 그 매력이 뿜어져나온다는 점이 다행이다. 몇달이 지나 다시 책을 펴도 금방 몰입하고 작가와의 대화를 계속할 수 있는 카잔차키스 읽기의 즐거움이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와 신년 사이 마지막 책을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읽으며, 24살의 청년에서 38살의 문턱을 맞는 이날. 나는 여전히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가르침에 깊이 속하여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책을 집어넣으니 <영혼의 자서전>이 다음 책으로 준비되어 있다. 천천히, 손 잡힐 때, 아무렇게나 읽을 테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결심을 했다.


한 해 한 권은 카잔차키스를 읽어야지.


삶의 칼바람은 차고 매섭다. 그것을 견디려는 나의 정신의 살가죽은 두껍고 거칠어진다. 유달리 혹독한 한 해였다. 이겨냈고 살아남았다. 앞으로 다를까, 지난 해가 아니라 그 전 해는, 그 전전 해는 삶이 거칠고 팍팍하지 않은 적이 있었을까. 안온한 한 때가 있었다면 그것은 내가 만족의 벽 뒤로 숨었던 것일 뿐. 갈망을 지닌 자의 삶은 언제나 극단을 기꺼이 마주한다. 혹독했던 어떤 시간은 사막으로, 투쟁의 장으로 내가 나의 삶의 가치를 확인코자 하는 길이었을 따름이며 안온한 삶이란 그 모든 몸부림이 끝나고 난 뒤에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한 것일지 모르겠다.


바쁜 삶이다. 잠시 뒤 1시에 스터디와 3시에 책모임이 있다. 읽어야 할 책이 많고 하루도 공부의 벽은 자취를 감추어두지 않는다. 크레타를 꿈꾸던, 자유를 만끽하던 청년이 그리워질 때면, 그때 다음 책을 손에 잡아야지. 언제가 되든 내 마음이다. 그러나 내가 변해가는 것이 느껴질수록 아마도 카잔차키스를 집는 순간은 가까워지겠지. 다음책은 <오디세이아>를 살 것이다. 해방을 원하지 않는, 자유. 나는 자유롭다.

81638084_1264015367142737_1072849793652359168_o.jpg


keyword
이전 05화내 차가 고스트스테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