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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r 21. 2024

유럽의 엘리트는 어떻게 교육받았을까? (1)

해리포터를 통해 들여다본 영국 엘리트학교

 호그와트를 보면 영국 엘리트 학교가 보인다


 저는 해리포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에 영화 1,2편만을 보았고 소설은 읽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가서 한창 놀고 있을 무렵 해리포터 열풍이 불고, 영어 원서로 읽는 것도 유행처럼 꽤 번졌죠. 네 그래서 해리포터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영화입니다. 아동의 잠재력을 평가해서 기숙사를 가르는 마법모자 장면, 호그와트의 수업과 교수님들, 퀴디치 시합 등등 정말 매력적인 소재들이 많이 등장해서 쉽게 그 세계로 빠져들게 하죠.


 그런데 해리포터와 호그와트의 그 매력적인 요소는 마법세계라서 뿐만 아니라 영국의 엘리트 사회와 엘리트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기에 우리에게 더욱 생소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해리를 보죠. 무엇보다도 선택받은 아이잖아요. 호그와트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그 전까지의 구박받는 신데렐라 포지션이라는 클리셰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한장의 편지를 받게됩니다. 바로 입학할 나이가 되었으니 호그와트로 오라는. 그런데, 어떻게 호그와트는 해리의 출생을 알게 되었죠? 해리가 태어나면서 발생한 비극도 있지만 해리의 부모님이 모두 호그와트 출신입니다. 그리고 호그와트의 마법의 책은 스스로 학생들의 입학을 판단하여 이름을 적어나가죠.


 여기서 첫번째 영국의 엘리트학교의 특성이 나타납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와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태생과 함께 엘리트 학교 입학이 결정되는 것은 대동소이 합니다. 영국 귀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지망하는 엘리트학교에 편지를 보냅니다. 우리 가문에 아이가 출생하였으니 입학자 명단을 작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그럼 엘리트 학교의 교장은 그것을 보관하고 있다가(나중에 설명됩니다만 옛 영국 엘리트학교의 교장은 호그와트처럼 종신직이었습니다.) 아이가 입학할 나이가 되면, 그 귀족가문으로 입학 통지서를 보내게 됩니다. 엘리트교의 학교장은 학교의 모든 것을 통괄하는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교장의 결정에는 반박할 수 없었고, 그러므로 입학이 불허되는 경우도 있었죠.


 두번째 중요한 특징은 그렇게 마법열차를 타고 입학을 해서 첫 관문인 기숙사 선택, 영국의 엘리트학교는 모두 완벽한 기숙학교라는 점입니다. 여기엔 조금 긴 역사가 있는데, 엘리트학교는 당연히 대학에 입학해서 고등교육을 익히기 위한 것이었죠. 그러므로 1300년대에 최초의 근대 엘리트 중등학교(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겸하는)가 대학 근처에 기숙사를 겸해서 생겨나게 됩니다. 바로 윈체스터라는, 영국의 고대 잉글랜드 왕국의 수도였던 유서깊은 도시의 주교가 지역 학생들을 모아 기숙사를 겸하는 학교를 만들고, 그 학교에서 옥스포드의 '신기숙학교'로 보내게 됩니다. 앞의 학교가 영국 최초의 최초의 엘리트학교로 평가받는 "윈체스터 퍼블릭스쿨(원래는 윈체스터 칼리지)", 뒤의 학교가 옥스퍼드 대학교 속에서도 특별한 "옥스퍼드 뉴 칼리지"가 되죠.  지금 영국의 엘리트교육의 상징과도 같은 이튼은 윈체스터보다 60년가량 뒤에 생겨납니다. 이튼은 개교와 함께 선배격인 윈체스터 칼리지보다 더 높은 지위를 구가하게 되는데, 그것은 윈체스터의 시스템을 모방해서 만들어진 왕립학교였기 때문이죠.


 왜 기숙사인가에 대해선 별개의 역사가 있습니다만 그에 대해선 설명을 하지 않아도 영국의 최초의 엘리트학교가 기숙사의 형태를 유지했고, 기숙학교의 성과가 다른 학교에 인정받았다는 정도로 이해하며 될 것 같은데, 그럼 세번째,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같은 여러개의 기숙사가 있었고 경쟁관계였다는 점도 이야기를 해봐야하겠죠. 당연히 그랬습니다. 엘리트학교는 여러개의 기숙동이 있어서, 기숙사끼리의 체육대회가 몹시도 활발했습니다. 그것을 "애슬리티시즘(체육교육정신 정도로 번역)"이라고 별개로 지칭하기도 합니다. 퀴디치! 기숙사끼리의 경쟁. 나중에 19세기에 들어오면 영국의 엘리트학교에서는 체육교육을 중시하게 되는데요, 이전까지는 귀족 자녀들이 모여서 보통 사고를 친 게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건 사례도 있지요.


“럭비교에서는 1796년에 대규모적인 기물파괴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기숙사 근처에서 권총을 발사한 생도를 벌한 것이었다. 이 생도를 동정한 다른 생도들이 기숙사 창문을 깨뜨렸다. 잉글스(H.Ingles) 교장이 생도들에게 배상을 명하자 이 조치에 반대한 생도들이 학교 중정에 책상과 의자를 모으고 그 위에 교장의 책을 올려 불을 질러버렸다. 생도들의 소요가 커지자 생도폭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군대가 출동했다. 1808년의 해로우교 사건에서는 생도에 의한 교장실 파괴 소동이 있었다. 또 1818년의 윈체스터교 생도폭동 사건에서도 군대가 출동했다.”


 근대적 교육개념이 없이 혈기왕성한 12세부터 18세까지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공부만 죽어라 시키는데, 그게 하물며 귀족 자재들이니 학교가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습니다. 영국에 엘리트학교가 속속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귀족과 상류층이 대부분의 비율을 차지하고, 거기서는 시도 때도 없이 저런 소동이 벌어집니다. 나중에 설명할 T. 아놀드라는, 영국 최고의 명문교이며 스포츠 럭비의 어원이 된 "럭비교"의 교장이 엘리트학교 개혁을 통하여 이런 상황을 종식시키는데 기여하는데요, 지식교육에 치우친 영국의 엘리트교육에 강한 도덕교육을 강조합니다. 그럼으로써 학생들의 폭력성이 일탈행위가 아닌 다른 건전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출구를 찾게 되고, 그것은 기숙사간의 경쟁인 애슬리티시즘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죠. 그러므로 해리포터를 봄으로써 우리는 영국의 엘리트학교의 중요한 특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튼교 교복 : https://www.etoncollege.com/

  다음으로 교복. 해리포터에서도 매우 멋진 교복과 목도리가 등장합니다. 영국 엘리트학교에서는 "잉글리시 젠틀맨"이라는 교육적 이상이 있습니다. 이튼 등 엘리트교의 학생들은 이미 국가의 핵심인재라는 정체성을 갖추고, 선배들이 수백년간 입어온 정복을 착용하고 수업을 듣죠. 누군가에게 교복이 독재의 잔재라면, 엘리트교의 학생들에게 교복은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복식과 정체성이 문제가 영화 <킹스맨>에서도 아주 잘 표현되죠.


 마지막으로 한가지 정도만 더 이야기하자면 교수와 수업이 있겠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유럽의 웬만한 엘리트학교는 교수들부터 최고수준의 엘리트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족사관학교나 하나고 등 명문고에서는 석사와 박사가 차고 넘치죠. 엘리트학교의 기본 특성으로 잉글리시 젠틀맨이라는 고유한 이상적 인간형과 함께 교사와 교장의 드높은 권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호그와트의 학생들은 교사(사실상의 교수)들의 신비로운 지식 그 자체에 매료되고, 그들을 롤모델로 삼게 되죠. 실제로 현실의 어느 학교에서든 교사와 학생의 지식의 차이는 매우 매우 큽니다.


 그러나 한가지 차이점은, 엘리트학교의 교사(교수)와 교장들이 그 지식을 학생들에게 명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영어교사가 학생들보다는 영어를 당연히 잘 하겠죠. 그러나 그것을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과학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는 그런 교사의 영어 능력은 관심밖의 문제입니다. 반면 해리포터의 세계에선 마법이라는 하나의 동일한 목표가 있고 그 분야에서 각 교사들은 전문가라는 점이 일관성 있는 상징으로 자리하게 되죠. 즉, 영국의 엘리트학교에서는 해리포터의 마법과 같은 역할을 하는 무언가 특별한 엘리트의 상징적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대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 유럽 문명의 발상이 된 고대 문명의 문헌들을 직접 해독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영화와 현실, 영국와 우리, 엘리트학교와 우리들


 해리포터를 통해 영국의 엘리트학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컨텐츠로부터 지식의 요소를 추출해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교육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첫번째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일상의 언어, 이미지, 미디어컨텐츠는 모두 어떤 맥락이라는 게 자리합니다. 최근 '오조오억'이라는 용어가 여러번 뉴스를 타고 있죠. 단순히 '오조오억'이라는, 매우 많은 숫자를 비유하는 표현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안에 5년이나 지속된 젊은 세대간의 치열한 남녀갈등과 혐오, 폭력의 역사가 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을 알지 못하면 어느 한쪽이 시비를 걸고, 다른 한쪽은 주관없이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비치게 되죠. 그러므로 무언가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석할 때 맥락과 역사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들도 좋아하는 영화를 통해서 영국의 고유한 문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그러나 그에 더하여, 그 사회가 형성된 맥락에 대한 이해가 덧붙여지고 우리의 현실과 비교까지 할 수 있다면 아이와 대화는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아이와 그런 대화를 지속하다보면 아이에게도 그런 습관이 내재화될 수 있을 것이구요. 현상 이면의 맥락과 배경을 짚어 사고하는 종합적인 행동양식이 말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유럽 엘리트 교육의 기본 원칙입니다. 유명한 바칼로레아, 나중에 소개할 독일의 대학입학자격시험 아비투어의 문제들은 어떤 문제에 대한 정말로 폭넓은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지금 이순간에도 그들 엘리트 학생들은, 그런 복합적인 사고과정을 거치도록 훈련을 받게 되죠. 그에 반하여 문제풀이에 치중한 한국교육은 배경과 맥락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도록 훈련받습니다. 심지어 국어나 영어 시험은, 지문 안에서만 힌트를 얻어 문제를 풀어야 하고, 지문 밖의 지식을 동원해서 풀 경우 그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기도 하죠. 여러번의 소송과 판결로 이런 부분은 많이 줄었지만 시험의 형식 자체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현상의 이면이 아닌 단면만을 바라보는 인간형이 한국의 교육적 이상향인 것처럼 우리는 아이들을 이렇게 기릅니다.


 그러므로 "엘리트 교육은 이렇고 얘들은 이렇게 가르치니까 우리 가정에서도 아이들을 이렇게 가르치자"라는 사고방식은 건전하지도 않고 이 글의 주제가 되지 않습니다. 체계적으로 배경과 맥락에 대하여 탐구하는 태도를 함께 기르실 수 있도록, 현실의 교육문제를 배경과 맥락을 통해서 같이 살펴보는 꼭지가 될 것이고 저 역시 이번 학기 수업을 통해 그렇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즉,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 교육의 배경에 대해서도 함께 파악해볼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해서 자신만의 생각을 다듬어낼 수도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영국의 엘리트교육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영국은 시민혁명이 명예혁명의 형태로 발생한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번성한 나라의 하나이면서 가장 구시대의 봉건적 잔재가 잘 남아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엘리트교육은 호그와트가 수백년 이어져오듯이 그렇게 14세기부터 형태와 건물까지도(!) 온존한 채 이어져왔습니다. 그와 함께, 영국의 뿌리깊은 계급구조까지 그대로 이어져왔죠. 영국의 엘리트교육은 영국의 계급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상류층만이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엘리트학교 출신들이 옥스퍼드와 케임브릿지의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공정 담론이 주도하는 현재의 한국사회와는 매우 이질적인 부분입니다. 사실 엘리트교육의 핵심이 되는 고전어와 고전교양도 전혀 현대적 관점에서, 특히 4차 산업혁명 상황에서는 의의를 갖지 못해 배우는 학생들이 몹시 드물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 한 구석이죠. 고전어가 가장 중요한 엘리트학교의 상징이자 특성인데, 그것을 가르치고 있진 않은데 엘리트학교는 유지되고 있다면, 그냥 그건 말 그대로 귀족학교라고 봐도 되는 상황이진 않을까? 우리 교육 문제로 다시 이어지는군요.


 영국 뿐만 아니라 프랑스대혁명으로 독특한 상황이 발생한 프랑스의 교육, 직업교육과 지식교육을 철저히 구분한 독일의 교육 등, 유럽에선 엘리트가 어떻게 길러내졌는지를 볼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어지는 글에서 영국 엘리트학교의 구체적인 특징들을, 또 다른 역사적 배경과 함께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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