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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r 22. 2024

유럽의 엘리트는 어떻게 교육받았을까? (2)

(2)수레바퀴 아래의 죽은 시인의 사회

실제로 어땠는가 하면


 그러나 귀족의 청년 자제들이 모여서 국가의 동량으로 자라나도록 교육받는 엘리트학교의 생활은 실제로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우선 이런 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18세기 말, 당시의 대법관 캐년 경(Lord Kenyon)은 「이 나라 곳곳의 그래머스쿨(엘리트학교) 상태를 음미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들 대부분의 학교가 얼마나 비참한 상태인지를 알 것이다. … 거기에 학생은 없으며 공허한 벽만이 남아 있고, 봉급과 수당을 받는 것 말고 모든 것이 등한시되고 있다」고 말한다.


19세기 초두에도 카알라일은 「우리들의 매우 많고 풍부한 기본재산이 무지하고 절조없는 관리위원(trustee)의 나태와 탐욕에 의해 황폐한 상태가 되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다. 관리위원은 진지하게 유지하도록 요청된 그 토지를 조용하고 은밀하게 슬쩍 양도했다. 이 토지는 대부분 그들 자신의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증여되었다」고 기록했다.


「이튼, 윈체스터, 해로우처럼 완전히 고전적인 커리큘럼을 가지며 훈육이 전혀 통하지 않는, 당세풍(當世風)의 소수(원래는 사립인) 「퍼블릭스쿨」과 「중산계급의 비국교도들이 보다 양호한 훈육 하에서 보다 과학적이고 보다 근대적인 교육을 받는 두드러지지 않는 사립 아카데미」와 「18세기에 특징적이었던 공적 시설로서, 부패하고 방임적인 태도로 인해 황폐해진, 예전부터의 기본재산을 가진 그래머스쿨」


 그래머스쿨리나 퍼블릭스쿨에 대해선 이후에 구체적인 설명이 이어집니다. 어쨌든, 엘리트 학교들이 귀족학교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문제들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런 풍경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있습니다. 유명한 영화의 도입부는 영국과, 영국의 엘리트학교의 시스템을 물려받은 미국의 명문학교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DHvqRYf-9g

https://www.youtube.com/watch?v=Mvm1RscbB8s

 입학식과 실제 수업의 모습입니다. 깃발은 영국의 전통대로 학교 자체의 문장, 학교 설립자나 지역 영주의 문장을 의미하는 그 자체로 학교가 갖는 명예와 권위의 상징이죠. 입학식 연설에서는 "단련"과 "헌신" 등의 가치가 학생들에게 암송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업. 두번째 영상의 전반부에서는 엘리트학교답게 방대한 양의 대학 수준 전공서를 학생들이 학습하도록 하며, 후반부에서는 이 엘리트학생들을 데리고 마치 초등학교 영어교실에서 하듯 단어를 하나씩 읽어주고 있네요. 에그리콜람~ 에그리콜라~ 에그리콜라이~ 에그리콜라름~ 에그리콜리스~ 하며. 기본적으로 이런 형태가 영국에서 주로 발생하여 유럽 다른 나라로 확산된 엘리트학교의 입학과 수업의 모습이었습니다. 근대로 올수록 영화의 풍경과 가까워지겠죠. 


 그런데 영화에선 학생들과 양심적 교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체벌, 부모의 강압, 억압으로 인한 소외와 추방으로 어린 학생들의 영혼은 치명적인 상처들을 안게 됩니다. 엘리트학교의 권위는 학생들, 그들이 명문가와 귀족들의 자제라고 해도, 학생들 개개인의 삶의 가치는 엘리트학교가 갖는 전통과 역사에 비길바가 되지 못했지요. 음 <죽은 시인의 사회>만 해도 그야말로 현대극인데 어찌 이런 일이 싶습니다. 


 더 좋은 참고자료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입니다. 내용이 굉장히 단순한, 짧은 소설이기 때문에 글이 재미나다고 느껴지신다면 책도 한번 구매해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가격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편이고요.) 작품에선 숲길을 산책하던 소년 한스가 신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인한 깊은 회한으로 시작하여, 신학교에서의 강압적이고 고통스러운 생활로 인해 점차적으로 영혼의 침잠상태에 빠지게 되는것, 그리고 쇠약해진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는 과정이 굉장히 내밀하게 서술되고 있습니다. 유럽 엘리트학교에서의 학생들의 삶을 이해하는데에는 해리포터 시리즈나 죽은 시인의 사회보단 가장 짧고 함축적인 텍스트이기도 하죠. 


(여담입니다만 <수레바퀴 아래서>에는 주인공 한스와 그의 영혼의 거울과도 같은 헤르만 하일러의 동성애적 묘사가 나오는데, 이 부분이 재밌는 것은 영국의 기숙사 학교에서 동성애가 많이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다른 유럽국가와 달리 영국의 엘리트학교는 빠짐없이 기숙학교였거든요. 그래서 청년들끼리의 내부의 문제가 제법 심각했고 후배 학생들이 선배들의 수발을 드는 제도가 fagging system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faggot이 남성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비속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랄까요. 두 단어 사이에 연결성이 밝혀진 바는 없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여담.)


유럽 엘리트학교에 이런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만


 그럼 대~강 엘리트학교가 엘리트학교 답지 않은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는 점에는 대강 설명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단 시설이 낡고 열악한 경우가 많았고, 그것을 교육효과가 있다고 인식했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입학식에서 Discipline(단련)이라고 복창하죠. 최고 수준의 명문학교를 제외하곤, 아니 그들을 포함하더라도 학생들의 생활 환경이 상당히 열악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 자체를 단련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죠. 


 독일의 경우엔 아래와 같았습니다.


여기서의 생활규율은 거의 수도원의 그것이 답습되었으며 19세기 초두까지 변경되지 않았다. 학생은 길고 검은 승복을 입고 차가운 승방에서 지냈다. 장유의 질서가 엄중하게 지켜졌으며 기도와 학습으로 지새는 일과에 따랐다. 


 게다가 체벌도 당연하게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현대의 체벌은 일제잔재라고 여겨지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죠. 당연히 조선시대의 서당화가 보여주듯 체벌은 일반적인 교육수단으로 전근대사회에선 인식되었습니다. 현대 한국사회의 경우, 일제 및 군사독재의 잔재로 그런 과거의 습속이 청산되는 것이 더디 이루어졌을 뿐이겠죠. 그러나 체벌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학교제도 자체가 심각히 강압적이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학생들의 출신성분은 대부분 귀족, 그런데 시설은 낙후되었고 교육제도는 강압적이었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이상하죠. 앞서 이야기한 학생들의 일탈이나 폭력사건은 당연한 그 귀결이라고 할만합니다. 


 그런데 <죽은 시인의 사회> 영상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라틴어, 즉 고전어 수업입니다. 아래 장면을 보시죠. 키팅 선생님이 윗 영상의 라틴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분위기가 제법 심각하죠.

https://www.youtube.com/watch?v=F6sSbasQp6Q

 상식적인 선에서 고전어인 라틴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보수적인 교육관을 가지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 게다가 미국 최고의 명문학교라는 웰튼고(이튼을 적당히 바꾼듯한)의 교사들이니, 당연히 키팅이 그렇듯 라틴어 선생님도 학교 출신일 수 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같은 서클 내에서 어떤 선후배의 권력관계로 묶여있을 수 있죠. 그런데 라틴어 선생님의 생각은 또 단순한 보수적인 교육관을 넘어섭니다. 학생들이 자신이 예술가가 아니라면 키팅을 원망할 것이다? 틀린 말은 또 아닙니다. 자유로운 문학정신 영혼의 소유는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17,18세의 젊은 학생들이 그런 자유분방함을 함양하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라틴어처럼 전통학문을 배우는 것이 나은지 고려해볼만한 문제니까요. 


 그런데 현실에서의 문제는 이런 라틴어 수업이 20세기 초반까지는 엘리트학교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다는 점입니다. 얼마나 많냐. 이만큼 많았습니다.

 28¾시간의 필수과목 수업시간 중에서 고전어에 실로 17¾ 시간이 배당되어 있었다. 더구나 역사ㆍ지리 그리고 성서학도 실제로는 그리스ㆍ라틴어 교재가 사용되었다. 따라서 고전어 관련과목의 시간수는 합계 21시간에 달해, 필수과목 전체 시간수의 거의 70%에 달한다. 이에 반해 근대적 교과인 수학, 프랑스어에는 각기 2¾시간이 배당되는데 불과했고, 과학의 경우는 필수과목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두고 보니 상황이 좀 이상해보이죠? 우리는 객관적으로 고전어, 위에서 보이는 보수적이고 깐깐한 라틴어 선생님의 교육관이 구식이고 낡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도 명확하게 지적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당대 최고의 엘리트학교였던 럭비교에서조차 수업의 대부분이 고전어(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였군요. 그런데 그 수업이란 게 뭐냐, 아까 보셨던 에그리콜람~ 에그리콜라~ 에그리콜라이~ 에그리콜라름~ 에그리콜리스~ 를 17세 학생들이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 이상하죠? 17살이면 전통사회에선 거의 성인일 텐데 그런 학생들이 저런 수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


 럭비교를 개혁한 T. 아놀드 교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스어, 라틴어를 학교에서 축출하면 지금 세대 사람들의 시점을 현재 및 가까운 선배들로 한정해 버림으로써, 우리는 수백 년에 걸친 인류의 경험을 저버리게 되고, 인류가 마치 15세기에 처음 출현한 것 같은 상태에 빠지게 된 다. … 그리스ㆍ로마의 정신은 우리 자신을 쌓아 올리는 정신의 기본이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완성의 정화에까지 도달한 우리 인류의 정신이기도 하다. 분명 그리스ㆍ로마인과 우리들 사이에는 활용할 수 있고 기쁨을 가져다주는 물질적 도구라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그들은 증기기관, 인쇄기, 나침반, 망원경, 현미경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도덕적ㆍ정치적인 견해―이러한 것들이 오로지 인간의 인격을 결정한다―의 점에서는 우리와 그리스ㆍ로마인은 완전히 동일하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투키디데스, 키케로, 타키투스를 고대의 작가로 부르는 것은 매우 온당치 못하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우리나라의 친구이자 동시대인이다.」 


 음...이 말을 읽어보시면 대강 설득이 될 듯 싶다가도, 당연히 당대에도 비판과 논쟁은 존재했습니다.


1809년에 시작된 「에딘버러평론(Edinburgh Review)」의 그래머스쿨 비판은 이들 학교에서는 오로지 라틴어와 그리스어 교육에만 몰두하고 근대적 교과인 국어, 근대외국어, 지리, 연대학, 실험철학 등에 전혀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향했다.


나아가 1830년에 「에딘버러평론」은 특히 이튼을 거론하며 거기서는 「가장 귀중한 연대가 확고한 지

식으로 정신을 채우지도 않으며, 올바르고 강한 사고의 습관을 양성하는 것도아니며, 무기력한 나태 속에서 상실되어 간다」며 그 교육 방식을 격렬히 비난했다.


 이런 의견을 접하면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로 상황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문제가 실로 심각했죠. 저런 수업을 일주일 내내, 주당 17시간이면 수시가 없고 수능만 보던 시절의 일주일치 국영수 과목 수업 분량입니다. 그 시간동안 듣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아이들이 미치지 않고 배길까요? 그런데 그 전통이 20세기까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럭비교 개혁이 성공하면서 확고한 커리큘럼으로 오히려 생명력을 되찾고 영국 엘리트의 기초교양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영상 하나만 더 보실까요? 로키로 유명한 톰 히들스턴이 유창하게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하는 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jmsrrVbSOs

 자, 그러면. 여러가지 질문들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왜 엘리트학교는 명문귀족들의 자제들을 모아놓고는 실용성이 없는 라틴어 따위 고전어만 수업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해 가면서 가르쳤는가? 왜 그것에 대한 비판이 그리 심각했음에도, 20세기까지 라틴어를 배우는 문화는 계속 이어졌는가? 양쪽의 충돌하는 견해는 어떻게 결론지어졌을까?


 결정적으로, 이러한 유럽의 엘리트학교 논쟁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라는 점을 앞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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