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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22. 2024

"학습"과 "평가"에 대한 생각, 벗어던지기

올린 공대와 미래교육

 미국의 올린공대(Olin College of Engineering)는 혁신적인 교육법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1997년에 학교가 탄생해 역사는 매우 짧지요. 그러나 놀라운 역량을 지닌 인재들을 배출해내, 산업계에서는 올린의 졸업장이 신뢰의 보증수표로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올린공대는 전교생 350명 정도의 작은 규모에 전공도 공학, 전기컴퓨터공학, 기계공학 이렇게 셋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대학의 교육성과는 놀라울 정도인데요, 그 유명한 스탠포드 대학이나 MIT에 버금가는 전세계 최고의 공학교육기관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비결이 있겠죠? 이 학교는 개교하자마자 최초의 입학생 30명의 학생들이 직접 교수들과 함께 학교의 커리큘럼, 교육계획과 각종 학습프로그램을 짜 봅니다. 교육을 일방향적인 지식전달이나 서비스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학생들을 지식 창조의 동반자로 보고 이루어낸 과감한 시도죠.


 그런 학교이니 신입생 선발도 당연히 특별합니다. 신입생 성적 및 서류전형이 끝난 다음에 아예 1박 2일 일정으로 학교에 머물면서 그룹프로젝트를 수행해, 그것을 발표합니다. 그 과정에서 협업능력, 창의성과 소통능력, 리더십과 헌신성 등, 지식과 역량을 지탱하는 여러 특성들을 훤히 구성원들이 관찰하고 공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교수를 채용할 때도 그룹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후보자를 다각도로 관찰하며 자연스럽게 참여형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참여해서 구성한 커리큘럼은 더욱 유별납니다. 지식 축적보다는 경험을 통한 살아있는 배움을 중시하는 교육관을 토대로, 학생들의 관심 분야 속 지식과 이론들을 직접 경험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탐구주제를 뽑아내도록 합니다. 그런 다음 그 탐구주제를 학생들이 스스로 교수, 그리고 또래 학생들과 협업하며 탐구해나가는 것이죠. 전공은 셋 밖에 되지 않지만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는 내내 탐구하는 것은 이처럼 제한이 없으니, 무한하게 많은 세부 전공에서 전문가들이 탄생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올린의 많은 학생들이 MIT나 스탠포드 입학을 포기하고 올린에 입학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올린이 철저히 학습자 중심, 배움 중심, 경험 중심, 협업 중심의 교육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학년 1학기 수업은 이수 여부만 평가하고, 점수로 평가를 하지도 않는다고 하네요. 학생들이 경쟁과 성적에 대한 강박 없이 학문에 충실하도록 하는 조치일 것입니다. 


배워서 익히고만들어 익힌다


 올린의 교육철학은 단지 배워서 익히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만들어 익히는 창조직 지식 생산과 그것의 학습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지식 탐구 분야를 명확히 한 다음, 동료 학생들과 교수가 협력하여 모든 학생들이 저마다의 탐구 주제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학교의 커리큘럼으로써 협력학습과 개별화교육이 함께 실현된 사례로 무척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무릇 대학에서라면 산업계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고급 지식을 익히는 것을 목표로, 훌륭한 교수들에게 전문성 있는 교육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올린에서의 방향성은, 단지 배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거꾸로, 학생들이 자신만의 탐구 주제를 찾아나가도록 해, 그 영역에서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수준까지 학생들을 끌어올립니다. 실제로 이런 교육이 가능하고, 그 교육의 성과가 세계 최고의 대학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학생들의 관계성과 주도성, 지식 탐구가 충분히 조화를 이루었을 때의 효과를 상상할 수 있게 합니다. 


 배워 익히지 않고 만들어 익히는 교육의 형태가 서울대학교에서도 올린공대와 유사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학생설계전공”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전공을 만들어서 그 학습계획을 짜고 대학의 승인을 받아서 최종적으로 졸업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경영학과, 교육학과 같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학 전공명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전공명이라니 생각만 해도 신기하죠? 이런 방식을 활용하면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까지 따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기의 전문분야를 대학 재학 동안에 구체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홈페이지에서는 2023년 3월 현재까지 인체규범학, 음악사회학, 인지생물심리학, 과학기술 소통학, 시각문화학, 음악미학, 인문소통학, 노화학, 정보문화통상학, 계약제도학 등 기존에 없던 여러 가지 전공명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전공과목을 만들어, 익히고, 그것을 자신의 전문분야로 확립해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가능해진 세상입니다. 국내엔 아직 저변이 부족해 이런 시도가 바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올린과 같은 시도는 국내에서도 꾸준히 시도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배움은 “배워서 익힌다”라고 하는 “학습” 개념에서 많이 탈피해 있지 못합니다. 수 천 년 간 이어져 온 고유한 형태의 인류의 관습이기 때문입니다. 한 아이가 자라나면서 가족의 전통, 공동체의 문화를 배워 익힙니다. 과거제도와 같은, 지식을 통한 계층 상승의 기회가 마련된 사회라면 학습은 더더욱 일방향적인 것으로 흐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현대까지 오랫동안 학문 중심, 능력 중심의 인재 선발 제도를 유지했기에 기존의 지식 체계를 얼마나 잘 따르느냐가 곧 성공의 지름길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현재의 우리 교육의 모습은 개별화 교육의 의미 자체가 훼손되어 있습니다. 타인이 부여한 교육 주제들을 학습하며 결국 타인의 기준에 따라 평가받으니 개별화 교육의 실현 이전에, 이것이 정말 개별화인지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의심도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경직된 지식들이 심지어 문제라는 옷을 입고 ‘공정성’이라는 무기를 들고 아이들 앞에 서죠. 그러니, 행복한 배움은 더더욱 남의 이야기가 됩니다. 


 아주 간략하게 올린의 교육을 소개했습니다만, 저 짧은 분량만으로도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학습’이란 용어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새로운 교육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교사와 학생 사이의 교육-학습이라는 형태가 아니라 올린 전체가 하나의 수평적인 파트너 관계에서 수시로 어울리고 뒤섞이며 배움과 지식을 생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 배움, 학습 이런 말들로 미래의 교육이나 올린의 교육을 담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이란 말에서는 어떤 권위나 권력을 가지고 아이를 가르치는 일방향적인 모습이, “배움”이란 말에서는 정적이며 수동적인 학생의 모습이, “학습”에서는 책을 읽고 노트에 필기를 하는 고전적인 모습이 떠오릅니다. “배움”, “교육”, “학습”에 여러 가지 다른 개념을 붙이면 그것이 마치 새로운 것처럼 받아들여지다가, 다시 원래의 딱딱하고 고전적인 모습으로 회귀하게 됩니다. “탐구”라는 말을 붙여서 탐구학습이라고 하면 좀 현장감이 들지만, 일반적으로 탐구학습이 어떤 의미로 통용되나요? 전시관에 가서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 아니면 과학실험을 체험하는 등의 모습이 그려지죠? 학습자 중심 교육이라고 하면 일방향적이고 전통적인 교육의 방식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글쎄요, 학교에서 직접 관련된 업무를 하는 입장에선, 학습자 중심 교육엔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 매우 강력하게 요구됩니다. “교육”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자꾸 이렇게 말을 더하는 방식으로 완전학습인 개별화교육으로, 또 관계성과 주도성, 지식의 조화를 담아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더불어 올린 공대의 학습자 주도 커리큘럼은 평가 역시 기존에 타인이 설정한 것에 맞추기 위해 공부를 하고, 그를 위해 시험에서 "정답"을 맞추는 그러한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학습 주제와 목표를 설정하고 친구들, 지도교수와의 공부를 통해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학습자 자신이 평가의 핵심 척도가 될 수 밖에 없지요. 이런 교육제도에서 학생들은 평가를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까요?


기존의 학습과 평가에 대한 관념을 벗어던지기

 

 시험 중심, 암기 위주, 경쟁 중시, 일방향적인 학교교육으로부터 우리 아이가 자유로우려면 가장 근본적인 “학습”과 "평가"의 개념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언어가 인식을 규정하고, 인식이 행동을 결정하니 말입니다. 지금에서야 미래교육이라거나 학습자 주도 교육을 이야기해도, 지난 십 수 년 간 현실에서 만들어낸 잘못된 이해를 해소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를 대체 불가능한 지식 전문가로 기르고자 한다면 수업과 교육이 선행되는 “배워서 익히다”라는 학습의 개념에서 벗어나 “만들어 익히는” 올린 공대의 모습을 보며 완전한 개별화교육을 새로이 규정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어린이집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기존의 교과서와 교구를 가지고 같은 교실의 친구들과 함께 배워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교육의 패러다임에서는 우리 아이의 공부에 있어서 수업과 배움이 선행하지 않습니다. 지금 아이가 흥미를 갖는 사물들, 나와 아이가 공통으로 관심을 갖는 문제들, 우리 주변의 문제들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 탐구하고, 기존의 지식체계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그 도움 없이도 스스로 탐구하며, 만들어서 배우고 또 익히는 것이죠. 


 학교교육으로 얻게 되는 지식은 일반적으로 과거 지향적, 보수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긴 시간 여러 사람들에 의해 합의된, 흔들림없는 진실들로 학교교육을 채우려는 노력으로 인해 그런 특징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는 타당한 입장입니다. 이런 엄격한 기준이 없으면 세상엔 온갖 가짜 지식들이 판을 치며 혼란을 가중시킬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디어는 전통적인 학교지식을 충실히 탐구하는 가운데, 그로부터 미래지향적이고 주체적인 새로운 지식을 아이들이 탐색해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지식의 보수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생생히 살아있는 것으로서 지식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공부야말로 나 자신을 위한 최상의 여가, 최상의 활동입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딱딱하고 보수적인 지식만을 배워온 탓에 공부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올린의 사례를 보며 살아있는 지식을 만나고, 내가 새로운 지식을 탄생시킨가도 한다면, 아이들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행복한 교육은, 우리 역시도 바로 지금,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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