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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27. 2020

독창적인 붙여넣기와 잘라내기, <남산의 부장들>

현대사 최대의 미스터리를 독창적인 시각으로 짜임새 있게 각색한 상상력

 10.26은 드라마와 영화로 여러번 창작되고 해석된 현대사 최대의 미스터리이다. 가장 강력한 권력자의 허망한 죽음, 여대생들이 함께 한 술자리라는 기괴한 사건의 배경, 정권의 2인자가 저지른 총격과 그 뒤의 이해하기 힘든 행보, 그리고 차지철의 캐릭터. 그 밖의 여러가지 호기심을 자아내는 사실과 사건들. 그러나 이처럼 흥미롭고 매력적인 역사적 사건을 다시 한번 변주해내야 하는 감독으로선 고민이 클 수 밖에 없다. 사건 당일의 긴박하고 복잡한 전개에 집중하기에도, 경제상황 악화와 부마항쟁, 미국과의 마찰 고조 등 박정희 정권의 총체적인 몰락을 짜임새 있게 펴내기에도 2시간은 너무 큰 숙제이기 때문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탄탄한 원전을 바탕으로 감독의 독창적인 시각에서 10.26의 핵심 당사자 김재규의 시각으로 전체 사건을 재구성한다. 원작자 김충식 교수는 80%의 팩트와 20%의 각색이라고 평가하였는데, 우민호 감독이 각색을 통해서 독창성을 발휘한 부분이 대체로 이병헌이 연기한 김재규의 내면을 묘사하고, 10.26의 결단을 내리기까지의 개연성을 구축하는데에 할애되었다. 반대로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축약하는 묘를 발휘하였다. 김형욱 실종사건을 박정희의 토사구팽식 용인술로 엮어내 김재규의 갈등에 활용하는데에 분량이 적지 않게 할애되었으니, 10.26 당일의 묘사는 상당히 간결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건 당일 김재규의 행적이 우발적인 부분이 많아서 앞 뒤의 전개를 더 묘사할 필요가 없이 실제 사건이 흘러간 점도 이러한 각색에 한 몫 거들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남산의 부장들>은 김재규가 10.26을 일으킨 동기에 대한 하나의 가설을 채택하여 그것을 더욱 짜임새 있게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폭넓은 각색을 추가했고, 김재규의 행적 바깥의 내용들은 과감히 쳐내어서 깊은 몰입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좋은 각본이 감독과 배우 모두를 살린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연기에 대해서 무어라 말할 나위가 없다. 모든 배우가 인생 최고의 호연을 보인듯. 그중에서도 이성민씨의 박정희 연기는 귀기 어린듯하다. 큰 뒤와 날카로운 눈, 금속성의 낮고 빠른 말투로 독창적인 박정희를 완성시켰다. 박정희와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씬에서 이병헌의 연기력이야 말할 것이 없으나, 그 큰 눈을 고스란히 담아낸 긴 테이크의 클로즈업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좋은 배우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배우의 모든 것을 뽑아낼 줄 아는 연출력 또한 중요한데...후반부의 클로즈업 장면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러닝타임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병헌의 연기력과 매력을 둘 다 즐길 수 있는 영화인데, 개인적으로 그의 전작 중에 <싱글라이더>를 꽤 인상깊게 본 터라, 두 영화를 비교하는 것도 꽤 재미있는 감상법이 될 것 같다. 모두 이병헌의 흔들리는 내면을 몰입감 있게 조명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의 팬이라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고...후반부의 조용히 눌러내리는 감정연기를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여러모로 재미있는 영화. 


 미장센에도 굉장히 품을 들여서 영화의 가치가 높은데, 화면을 반분하는 수평 구도와 궁정동 안가의 겹문을 활용한 씬들이 인상적이다. 나중에 <부기영화>에서 시각적으로 분석해주는 코멘트가 나올듯. 반면 건조한 분위기에 걸맞게 영화음악은 거의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아니면 흡입력이 뛰어나 음악에 귀를 기울일 틈이 없었던 것일지도. 


 박정희의 절대권력 아래 모두가 영원한 승자일 수 없는 수하들의 정체성 투쟁. 권력의 핵심인 박정희 본인의 유신통치가 결국 파국에 이르면서 그 수하에 의해 최후를 맞았으나 결국 역사는 반복되었고, 우리는 서늘한 역사의 교훈을 뒤늦게 하나 둘 깨우쳐가고 있다. 정치적 논쟁으로 영화의 가치가 손상되는 일을 피하고자, 중립적인 인물묘사에 애를 쓴 감독의 노고가 헛되지 않아 다행인듯 싶다. 우리는 지난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시기를 과연 어떤 결과물로 다시 마주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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