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대신 벚꽃처럼 하얀, 알배기 쭈꾸미

대신 부지런하고 잽싸게 손을 놀려야 먹을 수 있다.

by 공존
오늘은 쭈꾸미가 주인공이므로 사진 먼저.

"쭈꾸미 몇번 먹을 치야?"

"두번 먹지. 1키로니까."

"그럼 내일은 쭈꾸미 파스타 해줘."

"뭐? 월요일에 글 올린 거 봤잖아. 쭈꾸미 파스타. 난 내일은 다른 거 하려고 했는데. 떡볶이나...볶음이나."

"으응. 파스타가 맛있었어."

"끄응...알겠다."


바깥양반과 마트에 가면서 우리는 오늘의 쭈꾸미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쭈꾸미 파스타라. 작년에 만들었고, 월요일에 글을 써서 올렸는데 똑같은 걸 또 해달라니. 이번엔 매콤하게 볶음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뭐 해달라니, 해 줘야지. 그런데 그건 내일의 일이고, 오늘 저녁은 쭈꾸미 샤브샤브다. 근데 이걸 샤브샤브라고 해야 하나. 육수를 내어서 살짝 익혀먹는 것이긴 하지만, "샤브샤브"하지 않는 요리다. 그냥 최소한으로만 익힌 쭈꾸미를 채소와 육수와 함께 먹는 것인걸. 연포탕에 차라리 가까운 음식이 맞겠다. 육수를 미리 팔팔 끓여 완성한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쭈꾸미만 퐁당, 색이 바로 꺼내면 샥샥.


지난 수요일이 외할머니 기일이라 제사를 위해 부모님이 태안에 다녀오셨다. 그 전 주의 토요일에 함께 모여서 저녁을 먹다가 나는 "그럼 엄마 오는 길에 쭈꾸미." 라고 말했고 엄마는 누나네까지 세 식구가 먹을 양을 넉넉히 사오셨다. 쭈꾸미는 지금이 제철이다. 1년에 딱 한번, 알배기를 맛볼 수 있는 3월과 4월 사이의 봄.


아빠는 며느리랑 만리포에서 술 한잔 하고 싶은 욕심에, 그날 어떻게 둘 다 한두시간만이라도 일찍 퇴근하고 저녁 시간에 맞춰서 올 수 없냐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안타깝게도 이루어지지 못할 일이고, 다음날 태안에서 올라오셔서 처음엔 집으로 부르시더니, 집도 들르지 않고 바로 누나네 집에 쭈꾸미를 가져다줄 생각으로 우리도 그리로 오라셨다. 오라시면 가야지. 나는 바깥양반과 만나 누나 집으로 향했다. 누나 집에 도착하니 이미 엄마는 쭈꾸미를 미지근하게 대처 숙회를 거의 완성하고 계셨다.


원래는 쭈꾸미도 서해 바닷가 사람들이나 먹던 음식이라서 태안이 아니면 통 먹을 일이 없었다. 어릴 적 살던 대전에서도 시장에서 잘 팔지를 않는다. 행여나 엄마 따라 시장에 갔다가 파는 것이 눈에 띄었으면 나는 분명 호들갑을 떨며 "엄마! 쭈꾸미야 쭈꾸미!"라고 소리를 질러댔을 테지만. 그러나 외할머니가 대전에 올라오실 때마다 검은 봉지에 달랑달랑 쭈꾸미를 들고 오셨고, 아직 한글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을 적부터 나는 쭈꾸미의 달달한 맛이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끈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로는, 외할아버지의 생신 때에나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가장 깊은 기억의 밑바닥에서부터 나와 함께 해 온 나의 소울푸드.


대학에 올라와서 쭈꾸미를 종종 먹게 되었는데, 친한 형이 학교 앞의 쭈꾸미볶음 집을 좋아했다. 냉동 쭈꾸미를 해동해 빨갛게 볶아서 먹다가 나중에 밥을 볶았다. 쭈꾸미 맛이라기보다는 양념맛에 쭈꾸미의 단백질을 먹는 요리이지만, 나는 그 형을 정말 좋아했고 그 형에게 예나 지금이나 자주 술을 얻어먹고 살기에 그 집이 반갑고 좋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살림도 어려워지면서 서울에서 잘 팔지도 않는 쭈꾸미를 구해 먹긴 어려웠다. 이따금, 태안에서 셋째 이모께서 놀러오시면 한 두 번 쭈꾸미를 같이 데쳐서 먹은 일은 있다. 그렇게 별미로 남아있던 음식인데.

이렇게 부모님, 바깥양반, 누나와 조카들까지 모여서(매형은 이날 추가근무셨다. 따로 매형 것은 빼두었다.) 쭈꾸미를 먹는 날이 다 올 줄이야. 엄마가 태안 시장에서 사가지고 올라온지 서너시간 밖에 되지 않은 생물이다. 엄마의 교묘한 솜씨로 데쳐진 쭈꾸미는, 부드럽고 달았다. 먹기 좋게 알 밴 머리를 손질해 놓으셨다. 한 2키로는 넘을 분량인데 첫째를 비롯해, 아직 어린 조카들은 누구도 이걸 맛 볼 생각을 하진 못하고, 어른들이 재게 젓가락을 놀려 이 많은 양을 해치웠다. 나는 그날 깜빡하고 학교에 도시락을 싸가지 못해 점심을 쫄쫄 굶은 상태였기도 하고, 바깥양반 더 먹으라고 신경을 쓰느라 그리 많이 먹지도 못했는데 배가 불렀다. 엄마는 미리 손질까지 마쳐서 우리집 분량의 1키로를 싸놓으셨다.


"어떻게 해먹게?"

"뭐...데쳐서 국물이랑 먹어야지."

"어 그거 맛있어."

"샤브샤브? 미나리 사서."

"응 그래야지."


디저트를 먹으며 배를 두드리고 있으려니 엄마가 묻는다. 숙회는 이미 먹었으니 다음엔 샤브샤브지. 내가 생각하기엔 쭈꾸미를 가장 맛있게 먹는 것은 탕이다. 샤브샤브라고 부르든 연포탕이라고 부르든. 집에는 싱싱한 무도 있고 같이 넣을만한 새우도 있고 이것저것. 식사를 마치고 온라인 수업에 마음이 바쁜 나나, 자기 업무로 또 바쁜 바깥양반이나 마음이 바빠 밥만 먹고 쭈꾸미만 챙겨 후다닥 일어났다. 자, 그래서 토요일.


점심은 엊그제 만든 붕장어 조림이다. 한시간 후다닥 등산을 마치고 온 참이라 쫄깃쫄깃 부드러운 붕장어로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장기간 건조와 냉동을 거친 뒤라 붕장어 포에선 군내가 났지만 내가 또 국물은, 국물은 실패하는 일이 없지. 붕장어 육수가 푹 우러난 담백하고 짭짤한 국물로 뜨끈하게 점심을 해치웠다. 드디어 오늘은 1년에 단 한번 있는 알배기 쭈꾸미 주간.


이렇게 기회가 있으니까 알배기 쭈꾸미를 사와서 먹지, 서울에선 여전히 쭈꾸미를 괜찮게 먹긴 어렵다. 얼리지 않은 생물에, 알배기는 비싸다. 그리고 내 나쁜 습성이겠지만 외가에서 좋은 가격에 훨씬 좋은 쭈꾸미를 먹을 수 있는데 서울에서 굳이 비싼 돈을 주고서 이게 알배기일까 아닐까 냉동일까 아닐까 고민하기도 싫다. 그러니까 더더욱, 놓치기 싫어서 일부러라도 사다 먹는 편이기도 하다. 작년엔 어떻게 사왔더라. 어떻게 구실이 생겨 태안을 다녀왔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 그래서. 마트에서 나는 미나리와 청양고추를 샀고, 유통기한이 다 지나 헐값에 파는 새송이버섯도 여섯개에 1900원에 사왔다. 오늘의 장보기는 6200원. 쭈꾸미 값은 엄마가 치르셨고, 이제 준비는 끝난 상태. 집에 오자마자 윗도리만 갈아입고 청바지와 양말은 벗지도 않았다. 하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나는 옷도 잘 갈아입지 않고 바로 손만 씻고 음식을 하는 편이다. 후다닥 냄비에 물을 담아 끓이고 무를 꺼냈다.


무를 꽉 쥐고 채칼에 받쳐 휙휙 쳐낸다. 아침에 등산을 하고 온 탓인가 저녁 시간이 조금 지난 탓일까 배가 너무 고팠고, 무를 최대한 빨리 익혀서 육수를 내야 한다. 그리고 채를 쳤으니 쭈꾸미와 곁들여 먹기도 좋겠다. 우수수 채 친 무를 냄비에 붓고 소금과 마늘로 간을 해둔다. 아직 짜다. 빨리 무를 익힌 다음에 물을 더 부어야지.


미나리를 손질한다. 마침 마트에 손질된 미나리가 있어서 수고를 덜었다. 남은 미나리는 나물을 해야지. 벌써 입맛이 또 돈다. 시간이 나면 고수도 조금 사와서 같이 나물을 해야겠다. 어차피 바깥양반이 미나리 나물을 먹을 거라는 기대는 못하겠고...그리고 내가 혼자 다 먹으면 좋겠다. 미나리와 고수를 같이 나물로 묻히면 또 얼마나 맛이 좋을까.


미나리를 후다닥 쓸어넣고, 불을 줄여 한소끔만 끓이면서 이번엔 쭈꾸미를 바로 꺼내어서 냄비에 하나 하나 담는다.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쭈꾸미가 쫄아붙으면 안된다. 색만 변하면, 구해내야 한다.

퐁당퐁당

살살 젓가락으로 돌리고 위 아래로 쭈꾸미들 자리를 잡아주면서 눈여겨보다가 드디어 보기 좋은 주황색 빛을 띤 쭈꾸미들을 모조리 건져낸다. 이런. 맨 아래 깔린 쭈꾸미가 있었다. 제 때 위로 올려내서 자리를 바꿔주지 못했다. 작아졌다. 꼭 이렇게 하나씩 실수를 한다니까. 어쩔 수 없다. 당장은 손질을 하기엔 너무 뜨거우니 볼에 담고 마지막 공정을 한다.


유통기한이 훌쩍 지난 새송이 버섯을 봉지에서 꺼내니 살짝 알코올 냄새가 난다. 쉬었다. 혀를 차며 어떻게 먹을만한 부분을 건져서 대충 썰었다. 한번 끓여내면 먹을 순 있을 것 같다. 냄새는 제법 나지만 변색되거나 상하진 않았다. 한번 끓이자. 물론 너무 끓이면 미나리가 숨이 죽어버리겠지만. 뭐, 미나리가 너무 안익어도 풋내가 심하니 팍 익어도 큰 문제는 없다. 쭈꾸미가 오늘의 주인공이니까. 알싸한 맛이 돌도록 청양고추를 두개, 썰어서 버섯과 함께 넣고 후추를 조심스럽게 톡톡 쳐서 넣는다.


벌써 20분은 족히 지났지만 이쯤이면 알배기 쭈꾸미 전골? 샤브샤브? 쭈꾸미 연포탕 같은 호사스러운 음식을 먹는 시간으론 뭐. 훌~륭하게 해낸 것이지. 아직 뜨거운 쭈꾸미를 바쁘게 손질해서 머리 부분을 냄비에 넣고 한바탕 끓인다. 다 됐다. 바깥양반을 부르면서 마지막으로 쭈꾸미 다리를 다시 우수수 냄비에 담았다.

시원한 국물에, 부드러운, 이따금 내가 관리를 잘못해 질긴 쭈꾸미 다리. 그리고 부드럽게 익은 미나리에 아주 푹 잘 익은 무까지. 완벽하다. 1년에 딱 한번 먹을 수 있는 알배기 쭈꾸미의 맛을 살려내기에도, 우리의 주말 저녁을 장식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저녁 밥상이다. 하나씩 머리를 건져내 가위로 사각사각 손질한다. 알배기를 그대로 입에 넣었다간 입 안에 알로 가득차 식감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퍽퍽하게 느껴진다.


그럼 쭈꾸미를 가장 잘 먹는 방법은 무엇이냐. 먼저 쭈꾸미 다리를 미나리, 무와 함께 집어 한 입 야무지게 먹은 다음, 아직 완전히 삼키기 전에 숟가락으로 저 알을 살살 긁어내서 국물과 함께 입에 넣는다. 마치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국물에 찍어먹듯이. 그렇게 하면.


야, 말이 필요없는 맛이다. 입 안에 벚꽃잎이 우수수 춤추며 흩어진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잎을 거머쥐듯, 입안에 돌아다니는 탱글탱글한 알을 살살 달래며 아작아작 씹는다. 봄에는 역시 쭈꾸미지.


아차. 꽃게도 제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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