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목표에 함몰되어서 배움의 과정을 외면해서야
커뮤니케이션학에 SMCRE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의사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간단하게 해설해보는 공식인데요, 참 알기 쉽습니다. 정보원(Source)이 내용(Message)을 어떤 경로(Channel)을 택해서 수용자(Receive)에게 전달함으로써 목적한 효과(Effect)를 얻어낸다는 것이죠. 효과를 확인하여 원하는 수준에 달성되었는지를, 정보원은 확인하여 다시 메세지와 채널 등을 재설정 하게 됩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은 목표한 효과를 달성하는 것에 촛점을 맞추겠지요?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에서도 그렇습니다. 광고를 통해 물건을 구매할만한 호감도를 얻어내는것이나, 많은 독자들이 책을 사고, 천만관객의 영화를 만들지 말지 등의 문제에서 SMCRE 이론은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수월하게 검토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원하는 효과가 달성되지 않았다면, 이 다섯단계를 두루 재검토해보아야하겠죠. 아래처럼, 조금 복잡하게 말입니다.
- 말하는 사람은 메세지를 구성하고 전달할 신뢰도나 권위를 갖고 있는가? 수용자와의 관계는 원만한가?
- 메세지는 목표한 효과나 수용자의 수준에 맞게 설정되어 있는가? 매체에 맞는 형식과 내용인가?
- 전달경로 혹은 매체는 수용자가 이해하고 사용하기에 적절한가? 인터넷처럼 과다한 정보가 석여서 들어오거나, 수용자의 감각에 혼선을 일으킬 소지는 없는가?
- 수용자는 목표효과를 달성하기에 타당한 대상인가? 동일한 목표를 공유할만한 균일한 집단인가? 수용자와의 관계, 내용에 대한 반응, 경로에 대한 적응은 어떠한가?
등등 말입니다. 즉, 이 이론에서 강조하는 점은, 커뮤니케이션의 다섯 요소 모두에 대한 명확한 인식, 혹은 이해, 혹은 활용이 이루어져야 목표효과가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고, 피드백을 통하여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이 지속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도식에서 피드백이라고 하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은 "끊기지 않는 작용"입니다. 우리는 숨을 쉬듯 주변환경, 그리고 주변인과 커뮤니케이션하지요. 매 순간 우리는 세계와 상호작용합니다. 그러므로 앞선 상호작용에 이어지는 바로 직후의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다섯가지 요소를 모두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실습입니다. 공부에 대입해보시죠.
우리가 원하는 효과는 "아이들이 잔소리 없이도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는 것"이 되겠지요? 먼저 효과에 배치해봅니다. 그리고 송신자는 부모와 교사, 수신자는 자녀나 학생. 자 그럼, 어떤 메세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아이가 공부를 하게 될까요?
- 부모/교사는 공부하라는 메세지를 구성하고 전달할 신뢰도나 권위를 갖고 있는가? 자녀/학생과의 관계는 원만한가?
뜨끔하실까요? ㅎㅎ 교사의 입장에서 고백을 하자면 우리나라 교원양성제도는 많이 병들어 있는 상태로 너무 오랜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이것도 사실 이야기를 하자면 굉장히 깁니다만, 결과만 말씀드리자면 정책 및 제도로서는 교사를 육성하는데 상당히 실패하고 있고, 그 결과 학교 현장에 배움의 가치를 제대로 내면화하지 못한 교사가 많다는 점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부모님들 역시 비슷한 고민이시겠죠. 교원양성의 실패는 사실 경제사정 탓이 큰데 당연히 학부모님들도 맞벌이나 야간까지 노동을 해야 생계가 유지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자 결론은, 일단 송신자부터가 아이를 스스로 공부하도록 하는 기대 효과를 얻어내기에 상당히 문제가 자리하네요.
- 메세지는 목표한 효과나 수용자의 수준에 맞게 설정되어 있는가? 매체에 맞는 형식과 내용인가?
그럼 "스스로 공부하라"라는 메세지는 우리 나라의 학습자들에게 타당할까요? 아이의 연령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이놈의 "학령기"는 가정과 어린이집에서 형성된 아이들의 학습체계를 완전히 왜곡하고 파괴해버립니다. 적응하기엔 너무 급격한 변화와 환경, 그리고 학습의 형태, 학습의 내용 모든 것이 "부적절한" 메세지로 아이들에게 전달되죠. 자 그런데, 이것이 "전달경로"와 만나면 더욱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 전달경로 혹은 매체는 수용자가 이해하고 사용하기에 적절한가? 인터넷처럼 과다한 정보가 석여서 들어오거나, 수용자의 감각에 혼선을 일으킬 소지는 없는가?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라는 말을 어떻게 전달하세요? 맞벌이와 긴 노동시간으로 인하여 문자로, 그리고 전화통화로 아이에게 전달되진 않을까요? 가정에서 아이들의 학습을 관리할 여력이 안되는 다수의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이런 비대면접촉과 대화로만 공부 메세지가 전달됩니다. 다 큰 대학생들도 비대면접촉으로 수업을 하다가 대규모로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벼락치기로 과제를 하는 마당에 자기관리역량이 성숙되지 않은(요 자기관리역량이 4차 산업혁명에서 새롭게 중시되는 영역입니다만) 아이들이 무슨 수로 공부하라는 메세지를 수용할까요. 안타까운 일이죠. 게다가...아이에게 공부를 하라고 말이라도 하려면 전화기...는 스마트폰...카톡 창을 내리면...뭐가있을까요?
- 수용자는 목표효과를 달성하기에 타당한 대상인가? 동일한 목표를 공유할만한 균일한 집단인가? 수용자와의 관계, 내용에 대한 반응, 경로에 대한 적응은 어떠한가?
우리 아이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나요? 공부를 할 여건이 마련되어 있고, 공부를 할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고, 자신의 학습의 경과가 잘 피드백되고, 힘들여 공부를 한 성과가 자신을 위해서 옳게 발휘될 거라는 믿음을 유지하고 있을까요? 대학만 가면 하고 싶은 걸 다 하라는 부모님의 말은 사실이긴 할까요? 그것이 사실이고 아니고와는 무관하게, 아이는 그것을 믿고 있을까요?
자 아이는 이렇게 공부에 대한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관점을 채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그놈의 "스스로 공부 좀 해보렴"이라는 메세지는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대면-비대면 접촉을 번갈아가며 장마철 소나기처럼 주체못하게 마구 들이치죠. 학교는 학교 나름의 고민이 존재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아이들이 균일한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죠. 억압된, 다양한 품성과 자질을 지닌 아이들이 성적 순으로 마구 뒤섞여 원치도 않는 과목들을 교사가 각자 가르치고 있죠. 당연히 여기서 교사의 메세지는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학교시스템에 적응해 온 소수의 아이들만이 원하는 성적을 얻고 대학이라는 단기목표로 달려가죠.
전혀 목표효과를 달성하지 못하는 SMCRE 과정, 피드백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간단히 살펴만봐도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도록 하는 "효과"는 상당히 달성이 어렵다는 사실을 아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부모님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다른 집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듣고 있죠. 아이들도 각자 교실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또래 아이들을 매일 보고 있긴 합니다만,
이 상황은 상당히 나쁜 피드백으로 작용합니다. 피드백, 중요하다고 아까 말씀드렸죠?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커뮤니케이션은 연속적으로 계속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학부모님들은 피드백을 자기 아이에게서 받지 않아요. 스스로 공부하는 우리 아이의 모습을, 자기 친구 아들 딸의 모습에서 피드백 받죠. 그리고 그렇게 피드백된 내용을 다시 메세지로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제시합니다. 송신자에 대한 재고, 경로에 대한 고찰, 우리 자녀에 대한 반성 없이요.
자기보다 나은 옆집 아이를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요즘엔 상식이 되어 가고 있지만 단지 비교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모님들이 정확한 피드백을 받고 있다는 뜻은 되지 못합니다. 아이의 피드백을 읽어내는 것에도 나름의 전문성은 필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음료수의 판매가 저조하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우리는 판매량이라는 피드백을 받았죠. 그런데...어떤 성별에서요? 어떤 연령대에서요? 어떤 지역에서요? 어떤 시간대에 가장 안팔릴까요? 복잡해지죠?
아이들의 학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알아서 공부하는 옆집 아이들"이라는 피드백을 아이에게 내색 안하고 부러워하는 사이, 아이가 실제로 하루에 몇시간 책을 보는지, 아이의 학습 성과는 어떻게 확인되는지, 학교 수업에는 어떻게 임하는지, 다른 관심분야는 없는지 등의 중요한 피드백 정보는 소실됩니다. 학부모들이 그것을 제대로 읽어낼 지식이 없고 여건도 안되니까요. 이런 상황이니, 아동의 학습 태도 개선이라는 목표, 그리고 그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이란 어지간해선 달성되기 어렵죠.
배움과 커뮤니케이션, 배움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배움의 문제를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으로 다룬다면 이처럼 재미있는 교훈들을 여러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아이들의 학습태도라는 효과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떤 요건들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우선 판가름해볼 수도 있죠. 그러나 본질적으로 배움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이기도 합니다. 아기가 부모의 표정과 목소리를 익혀나가는 것부터, 부모가 자리를 비웠을 때 세상이 떠날 것처럼 울다가 어느덧 안정적으로 부모의 부재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까지, 그리고 성인이 되어 대학에 가고, 직장을 얻고, 스스로가 부모가 되는 긴 과정까지가 모두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와의 지속적인 상호작용과 피드백의 결과이니까요.
다음 글에서는 학습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