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비가 온대요! 와! 감자고구마전!
"고구마전 해줘 그게 맛있었어."
"어...그거 어려운데..."
지지난주였다. 언제나처럼 저녁 메뉴 뭐먹지 이야기를 꺼냈는데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바깥양반이 고구마전 이야길 꺼낸다. 어-. 어려운 것도 문제고 고구마가 없다. 그걸 만들었던 것도 벌써 겨울철이잖아. 게다가 우리집 식단의 빡셈 탓에, 간식거리인 고구마는 소비가 되지 않아, 먹다 남은 고구마는 썩어서 버려버린 참이다. 즉, 집에 고구마가 없단 것이다.
바깥양반은 쌀밥충에, 나는 군것질을 싫어한다. 그래서 밥때가 아니면 뭘 손을 대질 않는다. 과일조차도 나는 후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대용식으로 취급하는 편이기에 고구마나 감자같은 탄수화물이 제때 제때 소비되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감자는 요리에 이리저리 쓰이기라도 하지 고구마는, 고구마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만큼 제때 어떻게 처리하지 못했다. 게다가 코로나 덕분에 학교에 도시락으로 싸들고 갈 틈도 없었고 이래저래.
그래서 뭐 어쩌겠어. 그날은 이리저리 끼니를 차려서 먹고, 다음날 고구마를 한 통 사서 집에 가 저녁을 차렸다. 비는 안온 날이었던듯하다. 고구마를 굼실굼실 강판에 갈아서 녹말가루를 섞어서 후라이팬에 탁! 하고 부쳤는데...아이코 망했다. 고구마는 감자랑 달라서 훨씬 전으로 만들기 어렵다. 감자전은 갈아서 만들고 고구마전은 썰어서 만들어 먹는 것이 괜히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처음 갈아서 고구마전을 만들었을 때 그럭저럭 성공했던 것은 말 그대로 초심자의 행운이었던 것일까. 그날의 고구마전은 찰기가 부족한 고구마덕분에 이유식을 볶은듯한 비쥬얼로 완성되었다. 당연히 사진으로 남겨둘 수 없었다. 그나마 바깥양반과 나 모두 싹싹 비울만큼 맛이 있었던 점이 다행이랄까.
그러고나서 일주일 뒤에, 장을 보러 가서 감자를 튼실한 놈을 한봉지 샀다. 단돈 천원! 겨울철부터 쌓인 감자 물량이 게다가 급식이 안되면서 굉장히 가격이 싸졌다. 감자를 먹을 철이긴 한가보다. 양념에 재운 닭갈비도 같이 사서 집에서 드글드글 닭갈비에 감자를 듬뿍 넣어서 먹었다. 그리고 또 이 감자들을 어떻게 먹을까 궁리를 하다보니, 지난번에 제대로 해먹지 못한 고구마전이 떠올랐다.
"감자전 할까?"
"응 괜찮아."
"고구마전 할까?"
"응 괜찮아."
"(이런 거 싫어함)"
바깥양반과 같이 바닥에 누워 뒹굴거리다가 바깥양반에게 이리 쿡 저리 쿡 찔러봤는데 여엉 대답이 마뜩치 않다. 문제가 세가지인데, 우선 바깥양반에게 지난번에 제대로 해주지 못한 고구마전이 신경이 쓰인다. 두번째 문제는 나는 감자전을 오랜만에 하고 싶다. 세번째 문제는 감자전이든 고구마전이든 둘 다 여엉 재미는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뒹굴뒹굴, 날씨는 꼬물꼬물, 부침개는 땡기고, 감자전이랑 고구마전 중에 뭘 할까...하다가.
아. 합치면 되겠구나.
후딱 일어나 감자와 고구마 껍질을 깎았다. 고구마는 껍질을 벗기면 산패가 되는듯하다. 고구마를 요리로 이렇게 해먹는 일이 잘 없다보니 생소한 현상이다. 때깔이 좋지 못한 그런 이유도 고구마 요리가 다양하게 발달하지 못한데에 한몫을 한 것 같다. 그리고, 고구마 요리가 보라색을 띄는 이유도.
이왕이면 섞는 김에 두 재료의 맛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갈기보다는 채써는 길을 택했다. 채칼에 고구마를 먼저 채썰고, 이어서 감자를 채썬다. 고구마의 뻑뻑함이 채써는 손을 다치게 할까 아슬아슬하다. 항상 부침개를 준비하다보면 느끼는 것인데, 처음에 재료를 씻을 때에 비해서 손질을 하면 굉장히 양이 많다. 감자 두 알, 고구마 두개면 그냥 간식으로 앙 앙 먹을 분량인데, 이걸 부침개를 하려고 이렇게 버무려놓으면...말도 안될 양이다. 야 이거 꽤 살찌겠네 싶은.
소금을 반의 반스푼 뿌려서 살살 섞는다. 그러면서 잠깐 인터넷을 검색해봤자. 치즈를 넣어서 오코노미야키나 술안주처럼 해보고 싶다. 그런데 아하. 역시나, 치즈를 넣는 레시피가 있다. 해봐야겠다.
먼저 팬에 널찍이 감자와 고구마채를 깔고, 물론 그 전에 부침개가루를 소량 섞어서, 그리고 소분해뒀던 슈레드 치즈를 꺼내서 살살 뿌린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레시피인데 덕분에 양도 칼로리도 꽤 늘어날 것 같다. 맛은 있긴 할거야. 생각하며 치즈 위에 적당량의 감자고구마채를 넣고 살살 편다.
가지전에 부추전에 한달동안 실컷 부침개를 하는 동안 부침개를 뒤집는 실력이 꽤 늘었다. 오늘의 이 감자전만 해도, 지금 아무리 얇게 폈어도 세겹이다. 채, 치즈, 채. 채치채? 무겁도 두껍다. 그러나 거뜬하지. 손잡이를 잡고 슥삭슥삭 움직여주면서 뒤집개로 살짝 아래를 받친 뒤에 손목에 힘을 주어 휙, 탁. 부침개를 너무 많이 하는 감은 있다. 그래도 요즘같은 방콕철엔 집밥이 즐거워야 만사형통. 게다가 편식이 심한 바깥양반이 부침개를 해주면 뭐든 잘 먹는다. 바깥양반이 결혼 전에 평생 먹은 가지보다, 나랑 결혼하고 보낸 두번의 여름철에 먹은 가지가 더 많다.
감자와 고구마전의 한가지 단점은, 푹 익혀야 한다는 점이다. 김치전이나 부추전은 탁 하고 탁탁 바로 밀가루반죽이 익기만 해도 꺼내서 먹어도 되지만, 감자와 고구마는 그러면 안된다. 게다가 치즈가 가운데에 끼었으니 속부분은 제대로 익지 않을 것 같다. 뚜껑을 잠시 닫아두고 불을 낮췄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어질러진 싱크대를 정리한다. 아 최근, 초파리 트랩을 만들었는데 이게 괜찮네 효과가. 흠흠.
뚜껑 아래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커진다. 싱크대를 정리하던 손을 헹구고 급히 뚜껑을 연다. 재료에서 빠진 습기가 날아가지 못하고 뚜껑에 맺혀있다가 팬에 후두둑 떨어진다. 그와 동시에 치즈 냄새가 확, 하고 올라온다. 아이코. 치즈가 샜나보다. 다시 한번 뒤집어주면서 수분을 다시 날린다. 속까지 익히기 위해서 불을 세게 높여서 수분도 함께 날린다.
"바깥양반, 다 되어간다."
"응."
"나 맥주 하나만 갖다줘."
"네에."
맥주를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맛난 냄새에 절로 술이 당긴다. 막걸리랑 어울리지 않아서 다행이랄까. 이 맛엔 맥주지. 접시를 꺼내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뒤집어준 뒤에 딱 10초. 그리고 식탁에 낸다.
생전 처음 만들어보는 음식이 심지어 감자와 고구마와 치즈라는 실패할 수 없는 재료들 뿐이니, 그 맛이 어떨까 젓가락을 놓으며 설레설레 두근두근하다. 젓가락을 호기롭게 푹! 그리고 치즈까지 집히도록 해서 쫙. 그리고 입에 넣는다. 야, 그 맛이. 달고, 짜고, 찐득하고, 바삭하니. 이게 딱 우리네 인생같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