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수업 안듣는 아이, 지극히 정상

학교 규율을 통한 외적 공부압력과 동기부여가 사라진 빈 터에

by 공존

온라인 수업을 아이들이 듣지 않지요. 학부모님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마찬가지로 크게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초 중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각자 사정을 나누어보았는데 "초등학교 6학년은 6학년의 모습이 드러나는 법인데 올해는 그런 게 전혀 안보인다."라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비 중학생, 초등학교의 맏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되면서 실제로 6학년은 행동과 품성이 많이 변하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온라인 수업은 아이들에게 그런 관계성과 환경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마땅히 거쳐야 할 시기를 제대로 못 거쳐서 성장한 아이들이 미래에 어떻게 변할지는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코로나 백신이 하루 속히 나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온라인 수업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교를 가지 않으니. 모니터만 하루 종일 뚫어져라 바라봐야 하니,.그 어려움을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모두 고루 나누고 있는 바입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죠. 선생님들은 생전 해 보지 못한 영상 촬영에, 평가 계획을 모두 바꾸느라 한 학기를 다 보내고 번아웃이 된 상태에서 이제는 평가를 마무리하고 생기부를 작성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학부모님들은 예나 지금이나 생계를 위해 달려야 하는 처지이구요. 남은 것은 아이들 자신의 의지 뿐이네요.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히 아이들이죠. 가장 불안하구요.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불안한 아이들에게 온라인 수업의 책임과,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책무까지 몰빵 되어 있는 이 상황은 그럼, 괜찮은 것일까요? 조금 이 상황을 깊이 관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교실이군요. 책상과 의자, 칠판, 교사, 또래아이들, 시간표, 그리고 수업종. 이 정도면 우리가 학교에 대해 상상하는 공통소가 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당연히, 교실에서 온라인수업을 더 열심히 듣겠죠? 교사들 역시 익숙한 이 공간에서 아이들을 2-3일에 한번, 혹은 2-3주에 한번 꼴로 만나서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고, 시험과 평가를 정상적으로 치르고 있으니 학교는 어찌 어찌 코로나 시국을 버텨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미쉘 푸코 : 감시와 처벌의 공간으로서의 학교

철학자 미쉘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학교를 권력의 하부기관으로 진단했습니다. 우선 권력이란 "대상으로 하여금 원하지 않는 것을 하도록 만드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전제권력은 절대 왕권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킬 수도, 사형을 내릴 수도 있었죠. 그리고 사형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공개처형의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근대 권력이 등장하면서 과거의, 이러한 폭력을 내세운 통치는 사라졌습니다. 민주주의로 진전되고 산업사회에 이르러 자본권력이 새로이 등장하면서 권력은 사회 곳곳에 그림자처럼 스며들어, 우리를 통제하고 지배한다고 푸코는 보았습니다. 이를 "미시적 권력"이라고 불렀지요. 굉장히 어려운 책이지만 요약본을 훑어볼 필요는 있습니다. 글 맨 아래쪽에 링크를 걸어두었습니다.


자, 푸코가 바라본 학교는 근대 신민을 권력에 길들이는 공간이었습니다. 학교의 여러 장치와 구조를 권력, 다시 말해 "원하지 않는 것을 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새로운 현상이 발견됩니다.


같은 교실의 급우들은 서로를 감시하죠. 음- 감시를 명확히 한다기보단, 서로가 있기에 아이들은 행동을 자율적으로 규제합니다. 종소리. 이거 중요합니다. 근대 권력이 개인을 통제하는 핵심 매체가 시간이라고 푸코는 말하고 있습니다. <감시와 처벌>에서는 5분, 10분 단위로 하루에 십수번의 타종소리가 울린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초창기 근대학교의 아이들은 잠을 자는 자세, 자는 시간, 밥을 먹는 자세까지 규율받았습니다. 연상되는 것 있으시죠? 군대에서 이상한 자세로 밥을 먹이는 것도, 하나 하나 개인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과거 학교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교복과 두발단속도 권력의 개인 통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설명이 된 것 같으니 학교의 권력적 기능에 대해서는 이정도로 줄이겠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권력을 통한 학생 규율이 부정적이기만 할까요? 여기에 딜레마가 숨어있습니다.


학생의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 그리고 권력

동기 이론에서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최근의 추세입니다. 그래서 단락 소제목에도 취소선을 그어두었습니다. 내적 동기가 충족되기 위해선 외부의 인정이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자존감과 외부의 칭찬이 구분될 수 없죠. 그리고 보상을 통한 습관 형성의 경우에도, 그것을 습관으로 길들이는 것은 보상과는 다른 차원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열매를 따기 위해서 나무를 오르는 아이가 있다고 가정을 해보지요. 나무를 오르는 일이 정말 너무 고통스럽다면 열매를 따는 것만을 아이는 집중하겠죠. 나무를 오르는 행위가 아이와 관계맺음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극히 어려운 내용을 가르치면서 보상을 준다고 교육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내적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교육내용이어야 하고, 보상은 그 뒤에 정서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제시될 수 있습니다.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동기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 듀이의 관점을 다시 끌고 와 보겠습니다.


(1)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여러 보상을 준다 (외적 동기 조작)

(2) 아이가 공부를 하도록 강제력을 부과한다. 사교육, 강한 훈육 등. (외적 환경 조작)

(3) 아이가 공부를 하도록 아이에게 호소한다. (내적 동기 조작)


자, 현재 상황을 보겠습니다. 이 세가지는 두루 학습자에게 영향을 미치며, 실제로 학교와 가정에서는 이 세가지 방식을 모두 고루 취하고 있습니다.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아이에게 강제력을 부과하는 외적 환경 조작도 교육에서 분리해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니 불가능하죠. 일기장 쓰는 습관이나 스케쥴러를 쓰는 습관은 내적동기일까요 외적 환경 조작일까요?


문제는 학습자로 하여금 어떤 나의 행위, 그중에서도 공부를 자연스럽고 당위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고, 아이는 스스로의 목소리와 타인의 목소리, 그리고 조직화된 생활 체계 속에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나가는 것이죠.


온라인 수업과 사라진 권력의 학습자 규율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 환경이 아이들에게 갑자기 뚝. 하고 떨어졌습니다. 학교 조직이 학생들에게 작용하던 권력과 강제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대체가 불가능한 동기요인이 손실되어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래도 온라인 수업을 듣는 것이 아이들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학교 속에 숨어서 작용하는 권력은 우리의 학습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체벌, 두발단속, 연대처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종소리와 또래압력, 간소해진 학교 규율만으로도 학습에 발휘되는 강제력은 막강합니다. 자신의 행위가 권력의 작용에 따른 것이라는 인식조차 못하도록 하는 것이 푸코가 주창한 미시권력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죠.


"강제로 공부를 시킬 순 없다"라는 담론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재의 우리 교육문화에서 학교 교실이 주던 강제력이 사라졌으니,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학습 동기의 큰 축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강제로 공부를 시킬 순 없다"라는 생각을 공유하는 교사들은, 오프라인 수업보다 큰 강제력을 아이들에게 발휘할 이유를 찾지 못하죠. 물론 그게 당연합니다. 사라진 동기요인을 제대로 고찰할 여건조차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강제로 공부를 시킬 순 없으니까요. 바꾸어말하면 이것은 미시적으로 아이들에게 작용하고 있는 학습의 강제력을 명시적인 강제력으로 바꾸란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상당히 무리가 따르는 일이죠. 체벌이나 벌점을 되살릴 순 없는 일입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나눈 내용

그러므로 온라인 수업을 듣지 않는 아이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소수의 우수한 동기를 가진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소실된 강제력을 다른 동기로 채워내지 못하고 모니터에서 멀어집니다.


결론은 그 행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https://brunch.co.kr/@coexistence/181

온라인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제가 위의 글을 올린 일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동료 교사들에게 고운 소리 못들었죠. 그러나 필요성이 있다면 강제력은 적절한 수준에서 행사될 수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민원이란 강제력으로 학교로 하여금 온라인 수업에 대해서 철저히 준비를 해달라고 요구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관점은 여전히 주효합니다. 교실에 존재했던 강제력을 부정하고 되살려내길 거부하는 것이 교사의 올바른 태도일까요? 학습자에게 작용했던 강제력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것이 상실해있는 현 상황에 대해 고민을 할 책임은 교사들에게 남아있습니다. 학부모들의 책임도 아이들의 책임도 아닌 것이지요.


수업을 어떻게 구성하고 평가를 어떻게 조직화하고 어떻게 아이들의 동기를 부여할지. 수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고민을 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로지 온라인 수업의 핵심 주체인 교사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사라진 동기요인으로서의 강제력을, 다른 외적 보상과 내적 보상으로 채워낼 수 있는 고민들이 바로 지금 요구됩니다. 그리고 혹시, 강제력보다 더 큰 것이 지금 사라져있진 않을까요? 교실에서의 관계맺음이 오프라인 수업보다 온라인 수업에서는 당연히 부족할 것입니다. 수업에서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고민이고 수업자료를 만드는 중노동이 걱정이시라면, 그보다 앞서서 아이들과의 관계맺음을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해서는 지금 즉시 대책을 내야하겠지요. 관계형성은 무엇보다도 큰 교실수업의 핵심동기니까요.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를 만드는 것에, 때로는 명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합니다.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아이들의 학습의 자발성과 주도성이 난데없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학교 교실이 아이들에게 부과하던 강제력, 그것이 통합된 동기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죠. 온라인 수업 환경에서 아이들의 손실된 동기를 보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지금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사들만의 책임으로 남아서는 절대로 안될 것입니다. 교육당국이 교사들에게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낌없이 제공해야 할 시기이기도 합니다.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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