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패자부활전 없는 사회
Scene 1.
연우 : 선생님 제가 찾아봤는데
연우 : 집에 이동식디스크가 없습니다
연우 : 이메일 전송은 불가한가요
나 : 킹치만 30기가가 넘으면 이메일 전송은 안되는걸
연우 : 네이버 대용량 전송 안되나용
나 : 안되는걸
나 : 업로드에 한 다섯시간 걸릴걸ㅋㅋㅋㅋㅋㅋㅋㅋ
연우 : 허허허
나 : 학교 외장하드 빌려드림
연우 : 오
연우 : 그럼 감사하죠
학교에서 홍보업무를 맡고 있어, 지난해에 담임으로 지도했던 아이에게 홍보영상 촬영 제의를 했습니다. 학생부종합전형 시대의 트렌드죠. 학생에게 맡기고 성장의 기회를 주는 것. 물론 그 과정에는 아주 "막대한" 시행착오가 발생합니다. 애초에 고등학교 2학년이 대외 공개용 영상을 촬영 및 편집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 핸드폰이 조금 발전했고 여러 편집 어플리케이션이 있다 한들, 다들 고만고만한 경쟁작들 사이에서 튀기 위해선 아이들은 더 좋은 장비, 더 많은 예산과 여건을 갈구하게 되지요. 코로나로 인해서 가뜩이나 제한사항이 많이 발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자신의 교육적 성장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Scene 2.
연우 : 선생님
연우 : 이거 파일이 이상한데
연우 : 동영상 파일이 mp4 아닌가요?
나 : 님들이
나 : 겁나 비싼 장비를
나 : 대여하셨잖습니까
나 : 비싼장비는
나 : 전문가 편집프로그램용 포맷으로 저장됩니다
연우 : 헐 그럼 어떻게 해요?
나 : 인코딩 프로그램 있지
나 : 여러개 깔아서
나 : 여러번 인코딩 돌려봐
나 : 미안하지만 수백번 해보는 수 밖에 없다ㅋㅋㅋㅋㅋㅋ워낙 인코딩은 케바케라서
이를 테면 폰카를 처음 벗어나본 아이들은 감당 못할 고급 장비를 대여해달라고 하더니만, 일요일 아침 7시에 집에서 출발해, 강남까지 가서 대여해온 카메라로 저녁 7시까지 촬영을 하고, 이틀 뒤 파일을 건네받고는 파일 포맷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사실 학교 방송실이 갖고 있는 SLR 카메라의 영상촬영 기능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영상을 뽑아낼 수 있지요.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촉박해진 일정에서 아이들은 장비에 대한 지식을 몸으로 익히는 것보단, 인터넷으로 추천 장비를 소개받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 댓가는 새로운 시행착오였습니다. 그것도 치명적인 것이었죠. 영상을 촬영했는데 아이들이 다룰 수 없는 고급 영상 파일을 손에 쥐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30기가가 넘는 대용량의.
이런 경우 해답은 밤새 영상 파일을 변환해보는 것입니다. 영상 파일은 조금만 해상도가 올라가도 파일 용량이 아주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커~다란 용량의 파일을 적절한 화질로 압축해주는 기술이 여러가지 있는데, 그 다양한 기술을 적용한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편집자가 원하는 적절한 수준의 용량, 그리고 영상 파일의 촬영 상태에 따라서 상당히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결과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초보자들은 이 단계에서 무조건, 꽤나 고달프게 수십번의 반복행동을 해야 합니다. 3,4기가짜리 영상 파일을 컴퓨터에 불러들여서, 적절한 용량과 해상도를 선택해서 영상파일을 변환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여러 번 비교해보는 것입니다.
Scene 3.
연우 : 그렇게 연우는
연우 : 성공했습니다
연우 : 720p짜리 영상 화질을 뽑아버렸습니다
나 : 오 대단한데?
연우 : 어제 5시에 잤습니다...
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연우는 3일을 보냈습니다. 수요일에 1차 변환한 영상 파일들이 모두 꽝으로 판명되고, 금요일에 집에 가서 밤 11시까지 여러가지 영상 변환을 시도해본 끝에 마음에 드는 변환 세팅을 발견했습니다. 대단한 노고지요. 그러나 영상 작업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30기가의 파일 모두를 변환해야 합니다. 아이는 새벽 5시에 잠들 수 있었습니다.
애초에 30기가 짜리 영상은 학생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인근 중학생들이 볼 고등학교 홍보영상이면 화질이 얼마나 되어야, 용량이 얼마나 되어야 할까요? 절대로 크지 않습니다. 90%의 아이들이 핸드폰의 작은 화면으로 볼 것이니까요. 30메가짜리 영상도 충분합니다. 1024배나 높은 화질이나 용량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죠. 이런 부분까지 감안했다면 사실, 애초에 폰카로도 충분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무려! 촬영용 대형 조명, 붐마이크, 고급카메라로 정말 훌륭한 영상활동을 했던 것이죠. 이건 아이들에게 큰 자산이 될 경험이었습니다. 딱 하나, 그 고급카메라의 최소화질 설정만 했더라도 연우가 금요일밤을 꼴딱 샐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만 뺀다면요.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사후평가를 하고, 이제는 편집을 잘 하길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실수에서 배운다는 것은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 그리고 아이들의 학습의 자발성을 해치는 원흉은 아이들에게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쟁이 지나치게 심하고, "평가"가 어그러져 있는 탓이죠. 그런 상황에서 명문대 진학을 위한 20년 짜리 마라톤에 아이들을 세운 부모님들은, 아이의 실수와 미숙함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아이들의 인생도, 우리의 인생도 단 한번뿐이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복잡하네요. 그러나 학습에 있어서 "실수"의 중요성 또한 명백합니다. 오답노트가 수능 고득점에 필수인 것처럼, 학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를 파악하고 그것을 도출해야만 이후에 중요한 평가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예방할 수 있죠.
"실수"라는 관점을 시험에 연결해 본다면 한국의 평가 문화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보는 수십번, 수백번의 시험들은 모두 시험이라는 제도에 적응하고, 최종적으로 고등학교 내신과 수능에서 실수를 하지 않는 "시험 기계"를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시험 시간 숨막히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마킹에서의 실수, 문제풀이에서의 실수를 누적해가죠. 그러다보면 반드시 이런 실수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깨우치고, 습관으로 만듭니다. 결국 좋은 시험 결과도 아이들이 얼마나 실수를 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입니다. 시험에서의 실수의 좋은 점은 아무리 부모님께 야단을 맞더라도 다시 그것을 누적할 수 있다는 점이죠. 시험 자체를 피할 수 없으니까요.
시험이 아닌, 피할 수 있는 과정에서의 실수는 어떨까요? 그것은 필요한 것일까요? 아이들은 실수를 통해서 무엇을 배울까요? 아이들의,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실수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무의미한 실수를 반복하도록 내버려둘만큼 교육에 무관심한 학부모들이 그리 흔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강남 학원가에는 자기 몸보다 큰 캐리어에 책을 가득 담고 학원에서 학원 사이로 떠다니는 아이들이 있지요. 아이들이 실수를 해도 좋은 것은 시험 딱 하나 뿐입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실수를 반복해서도 안되죠. 따박따박 실수를 교정해두어야 합니다. 남는 시간, 자유롭게 실수를 하며 배워갈 시간이 그리 주어지지 않습니다.
강남 수준의 학부모들이나 가정환경이 아니더라도 아동의 실수를 두려워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오히려 경제여건이 따라주지 않는 가정일수록 아이들의 실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아동과 학부모 모두가 무기력한 학습자로 흐르게 되기 쉽죠.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구조 탓이죠. 경쟁은 이미 시작되어 있고, 아이들은 수년간의 저학력자의 낙인을 찍힌 상태에서 실업계고로 진학해, 새로운 낙인으로 바꿀지. 아니면 일반고로 진학해서 저학력자라는 낙인을 연장할지의 선택지에 놓입니다. 그런 구조에서 탈출은 더욱 어렵습니다. 일반적인 방식의 탈출에는 돈이 들고, 돈이 아니더라도 아주 운이 따라주거나 확실한 인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실수조차 하지 못하는 학습자는 탄생합니다. 그리고 만만하지 않은 결과는 모두에게 함께 밀어닥치죠. 노량진의 PC방에서, 어느 박사 학위장에서 말입니다. 평생 할 실수들은 오로지 시험에서만 누적되어 온 시험기계들의 나라에서 교육은 학습자에게 플랜B의 상상력을 일깨워주지 못한 것이죠. 물론 경제적 상황과 고용불안으로 선택지 자체가 지극히 제한된 시기가 오랫동안 이어져오고 있지만, 글쎄요 그것이 과연 초등학생들부터 시험기계로 만드는 우리 교육 문화의 알리바이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한편, 마음껏 실수를 허용할 수 있는 풍족한 가정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느 재벌가의 자재는 사업 실패를 낭만으로 포장하고 청춘의 도전을 찬양하는 인터뷰를 몇차례 한 적 있습니다. 재벌 아드님의 사업실패로 일자리를 잃은 사원도 꽤나 있을 텐데, 본인인 그럴 염려가 없으니 당연하 실패는 아름답겠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담론이 한때 유행한 적도 있군요. 자녀가 평생 마음껏 실수를 남발하도록 살 수 있는 풍족한 환경이 우리의 목표는 아닙니다만, 이 사례로부터 그래도 목표는 정해집니다. 여전히 패자부활전이 없는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감당하기 어려운 우리들이, 실제로 발생하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고, 그것으로부터 교육적 상상력을 이끌어내느냐 하는 점이지요.
이어지는 글에서는 학습과 시행착오의 관계를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