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ning Etiquette

역량의 세가지 요소 지식, 기능, 태도

by 공존

영화 <킹스맨>은 영국 노동자계층 에그시가 왕가을 지키는 기사로 다시 태어나는, 일종의 영웅 서사시를 그리고 있습니다. 뻔한 이야기입니다만 원탁의 12기사들의 이름을 딴 코드네임까지 딱이죠. 그래서 <킹스맨> 1,2편 모두(비록 2편은 도저히 못봐줄 망작이긴 하지만) 가난한 하류층 에그시가 상류층과 만나서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익혀가는 과정이 소소한 볼거리이죠. 에그시가 킹스맨이 되는 비밀암호 “옥스포드, 노 브로그”나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명대사는 물론, 스웨덴 왕가의 대화 내용과 최고급 재단사가 직접 제작한 영국식 더블 브레스트(여미는 단추가 세로로 두 줄)까지 꽤 많은 “상류교양”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흔히 우리나라에선 테이블 매너라고 불리는, 다이닝 에티켓도 등장하죠. 앞에 나온 스웨덴 왕가의 대화거리, 더블 수트와는 다르게, 국내에서도 어느정도 값을 지불하면 레스토랑에서 쉽게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그 내용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검색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만, 그것보다도 새로운 질문을 하나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다이닝 에티켓이라는 건 어떻게 탄생을 한 것일까요? 왜 지금까지 남아있고, 이런 복잡한 절차를 만들어 향유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식, 기능, 태도

첫번째 단서는 이것이 명확히 상류층의 문화라는 것이죠. 영국이고 프랑스고 산업혁명과 식민지 경영으로 잉여재화가 마구 발생하기 전에는 유럽의 어느 나라고 하류계층의 삶은 고통과 빈곤 그 자체였습니다. 상류층은 그들의 무식을 비웃으며 수십개의 촛불이 비추는 샹들리에 아래에서 수십개의 잔, 포크와 나이프, 접시를 바꾸어가며 식사를 즐길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하류층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상류층의 허영심 때문에 이런, 별도의 학습을 필요로까지 하는 문화를 발달시켰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그보다는 생활문화 전반. 즉 언어습관과 걷는 자세, 식사예절, 몸을 쓰는 방식까지 완전히 새로운 교양을 지식체계로까지 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아 이렇게 쓰다 보니 족보를 사서 양반 행세를 하려다가 양반들 사는 법을 따라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만 양반되길 포기한 중인에 대한 옛날 이야기도 생각이 나는군요. 어쨌든, 왜 그랬던 것이냐? 하면,


인간의 학습영역은 지식, 기능, 태도로 구분되어 있는데 그 세가지를 모두 분리시켜 각자 고도로 단련시키기 위한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 덕, 체를 구분하는 이러한 인식은 그리스 시대부터 수천년간 우리 교육의 지배적 사조였지요.


중고등학교 때 배운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아마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지만 그 눈은 저마다 시력이 다르고,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라 우리 눈에 비친 일시적인 이미지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눈을 감으면 사물은 사라지죠. 그런데 그 사물 역시 실제 사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과라고 해도 하나하나 모두 조금씩은 다르거든요. 모두 완전히 다른 사과를, 저마다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서 “사과”라는 하나의 개념을 인식했습니다. 이것에 그리스철학자들은 주목했습니다. 그 사과의 모습을 결정하는 어떤 진리적 존재가 현실세계 말고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것이 이데아다.

그 플라톤 시대 때부터 지식, 기능, 태도를 철저히 구분해서 생산계층, 군인계층, 철학자(정치가)로 구분을 했고, 그런 사상은 서양에 내내 뿌리박혀 20세기까지 이어져 내려옵니다. 물론 유럽의 상류층에게 있어서 세가지는 모두 고르게 발전시켜야 할 요소였기 때문에 그들은 높은 지식, 높은 기능, 높은 태도를 발전시켜야 했지만 명백한 위계는 존재했습니다. 지식이 핵심적인 능력이고 기능은 일반 노동과는 철저히 분리되어서 별도로 훈련하였습니다. 태도도 마찬가지였죠. 옥스포드와 보로그, 다이닝 에티켓과 같은 불필요한 교양과 도덕체계를 만들어 일반도덕과 분리했지요. 지식을 통해서만 길러낼 수 있는 덕성과 기능의 체계를 별도로 만들어서 그들은 “인종적 이데아”를 구축했습니다. 자신들이, 실제로 가치로운 이데아적 인간집단이며 하류층은 그에 못미치는 인간들이다.


이제 다이닝 에티켓의 수수께끼에 대한 답이 되었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지금이 2020년이고 지식, 기능, 태도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야겠습니다.


아동의 실수를 바라보는 두가지 관점

조금 지겨운 반복입니다만 다행스럽게도 4차 산업혁명 때문에 이러한 이원론적 구분들은 상당히 위력을 잃었습니다.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지식 우위론”과 지식, 기능, 태도에 대한 분리적 시각이 상당히 우월한 지위를 차지했는데도 말입니다.


이 부분을 조금 자세히 짚고 넘어가자면 19세기부터 과학과 심리학의 발전으로 이데아적 관점이 무너짐은 물론, 지식과 기능과 태도가 똑부러지게 나뉘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교육계 내부에서는 과거의 지식 중심 교육을 상당히 반박하는, 기능과 태도를 함께 육성하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결국 지식 중심 교육이 결국엔 승리했었죠. 아주 많은 이유가 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요인으로, 국가와 교육을 주도하는 집단 중 다수가 차별을 통해 자아정체성을 형성한 상류층과 지식 중심 세계관 속에서 자라나 “지식인”이 된 이들이라는 점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단절된 세상이 단절된 인식과 습관을 만들고, 교육체계마저 단절시킨 것이지요. 아 테스형! 이데아!


지금까지의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아이들이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서 살필 점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로, 아이의 실수가 지식 영역, 기능 영역, 태도 영역 셋 중 어디와 연관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지식 중심의 능력관을 갖고 있어서, 아이의 지식 문제로 치부하거나 그것을 “모자람”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앞선 이야기에서 홍보영상을 만들다가 우리 학생들이 만들어낸 실수는 기능과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 문제죠. 그것도 새로운 일에 용감하게 부딪혀보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이니 “모자람”의 문제는 더욱 아닙니다. 교사가 사전에 개입을 하면 태도 영역에서 주도성을 해치겠지요. 그래서 사후평가가 가장 좋습니다. 다만 왜 그런 실수가 발생했는지 자세히 알려줘야합니다.


반대로 지식은 충분한데 기능적으로 실수를 하는 아이들의 경우는 여러번 연습을 하는 게 가장 좋겠지요. 시험에서 아는 걸 틀린 아이들은 충분한 문제풀이를 시켜줘야 합니다. 다만 역시 태도 영역에서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혹은 아는 걸 틀렸다는 이유로 혼냄으로써 주눅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처럼, 지식, 기능, 태도를 인식하고 통합적인 가르침을 주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두번째 원칙은 아동을 나와 다른 존재로 이원론적으로 바라보는 실수를 범해선 안된다는 점입니다. 글의 제목을 한번 보실까요? Dinning Etiquette이라고 꼬부랑말로 적었지요. 우리글로 다이닝 에티켓 혹은 식사 예절이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영어로 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행위지만 여기에서도 그런 표현을 쓴 저와, 그것을 읽고 의구심을 품을 읽는 이 사이의 미묘한 거리가 발생합니다. 이런 것이 이원론적 행위지요. 실제로 자녀교육과 학교교육에선 이보다 훨씬 강렬하고 폭이 넓은 이원론적 교육이 아주 쉽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아이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실수를 공정하게 바라보고 실수의 원인과 맥락을 짚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잘못을 쉽게 합리화하고 또 다시 기회를 받길 바라니까요. 당연히 아이들도 그럴 권리가 있겠죠. 도저히 구제불능의 실수가 반복된다고 해도, 그것이 그 아동의 개별 특성일 수 있고 억지로 뿌리 뽑을 수 없는 문제라면,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할 것입니다. 친구 아들, 책 속의 우등생과 같은 “아동의 이데아”로는 현실의 내 아이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무척 단순한 두가지 원리이지만 사실 우리 인식의 가장 밑바탕에 깔려있는 사고방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법은 성인들에게도 세심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번 벽에 부딪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성인인 저 자신, 이 글을 읽는 우리들에게 지식과 기능과 태도의 고른 발달이 동시에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하겠지요. 여기까지는 아직 아동의 실수와 학습에 대한 밑바탕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다음에 보다 상세히 아동의 실수와 지식, 기능, 태도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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