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돼지, 나는 가지

백종원보다 쉬운 초간단 고급진 레시피

by 공존

"이게 뭐지."

"이건 돼지. 이건 가지. 너는 돼지 먹어라 나는 가지 먹을란다."

"뇸뇸...근데 좀 매운데."

"밥이랑 먹어."


바깥양반이 물끄럼이 접시를 바라보기에 나는 젓가락으로 툭툭 돼지고기와 가지를 구분해 골라냈다. 애초에 돼지고기도 먹고 가지도 먹으라고 함께 볶아 놓은 것이지만. 그리고 기껏 좀 있어보이는 요리를, 그것도 보충 씩이나 하고 와서 해준 것이지만, 어쩔 수 없지. 너는 돼지, 나는 가지. 뜨끈하게 튀겨낸 촉촉한 가지는 굴소스와 향미유, 튀김가루 단 세가지 재료만으로도 고급진 맛 그 자체다.




"샘 그럼 아홉시까지 하시죠."

"어...내가 결혼만 안했으면 해주겠는데..."


오늘은 2020년 첫 대면보충수업이었다. 학력격차해소 사업으로 저학력 학생들 중에 신청자를 받아서 방과후수업을 일주일에 한번, 한시간씩 한다. 수업 때는 기를 못펴는 아이들이 스스로 택한 수업이니 꽤나 보람이 있다. 1학기에는 경황이 없어 시작을 못했는데 학교가 안정을 찾아가는 기미가 보여 2학기부터 시작을 했다. 줌으로 방과후를 지난주까지 두번을 했을 뿐, 내가 담당하지 않는 학급 아이들도 신청을 해서 오늘 얼굴을 처음 본다. 그런데 하필 한글의 날 연휴 전날이라. 여덟명 중에 네명이 병원을 간다고 빠지고 다른 한명은 말 없이 오지 않았고, 세명이 교실에 옹기종기 앉아있다.


"애들아 과외 해본 적 없지 다들 요즘은?"

"네에."

"오 좋아 좋아. 세명이면 과외 하는 느낌으로 하면 되지. 천천히 하자."


천천히 수업을 시작했다. 영어 저학력군이기 때문에 정말로 꼼꼼하게. 한 문장을 하고 아이들에게 이해했는지를 묻고, 또 한문장을 하고 이해했는지를 물으며 최대한 재미있게. 예산지원을 받아서 하는 것이므로 인원이 단 한명이 되어도 가치로운 수업이련만 그런 방만한 예산 운영을 교육청이 납득할 리가 없다. 당연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대량 결석 사태로 세명과 도란도란 이렇게 수업을 하는 것은 정말로 귀한 시간이다. 나도 아이들도 즐겁다.


"과자 가져가 애들아-."

"안돼요 책 담아가야돼요."


그러다보니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이나 수업을 더 했다. 여섯시반. 더 해주면 좋겠다. 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니 세명이서 듣는 고효율의 맞춤형 수업이 싫을 리 없다. 나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지만 집에 가야 한다. 집에 가서 바깥양반과 밥을 먹어야지. 다음주는 온라인 수업이다. 수업을 마치고 내려와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수업을 들은 아이와 마주쳤다. 자그마한 체구에 일주일치 교과서가 모두 담긴 큰 가방이 애처로운데도 생글생글 웃는다. 너희도 나도 힘내야지. 연휴에 나도 바쁠 테다.




"으응-왜애-."

"뭐 먹고 싶어?"

"응-아무거나-."


퇴근하자마자 곯아떨어지셨구만. 집으로 가는데 오늘은 좀 돌아갈 일이 생겨서 제법 시간이 걸렸다. 마침 길도 막힌다. 그러니, 일주일의 마무리로 오늘은 뭘 먹어야 하나- 고민이 조금 된다. 맛있는거. 그러나 쉬운 거. 바깥양반이 좋아할만한 거. 그래...고급진 요리다. 가지튀김을 해야지.

집에 와서는 옷도 그대로 걸친 채로 손만 닦고 파를 먼저 썰었다. 후라이팬에 향미유를 두르고 먼저 파를 볶아 파기름을 낸다. 냉동실에서 뒷다리 고기를 꺼내 전자렌지에 돌리고 그 틈에 옷을 갈아입는다. 다시 손을 닦고, 볼에 고기, 물 약간, 튀김가루, 굴소스 한스푼 반을 붓는다.


대충 휘적휘적 버무린 뒤 먼저 파를 팬 한쪽으로 민다. 향미유를 조금 더 붓고, 고기를 툭툭 올린다. 기름에 지글지글 튀김옷과 함께 고기를 볶는 식인데 튀김보다 기름도 적게 들고 조리시간도 빠르다. 튀김처럼 바삭하게는 되지 않지만 나름의 고급진 레시피라는 말씀. 오늘은 여기에 가지를 더한다. 볼에 가지를 썰어담고 다시 튀김가루, 물 약간, 그리고 굴소스 한스푼.

앗 흔들림

돼지고기는 푹 익히도록 볶아야 하고, 가지는 튀김옷을 입혀 센 불에서 단숨에 익혀야 한다. 후라이팬 하나로 불과 15분만에 완성되는 요리기는 하지만 고기와 가지를 각각 올릴 때 온도를 잠깐동안 높여야 한다. 그리고...다른 어려움은 없다. 튀김옷끼리 달라붙어도 된다. 파에 돼지고기 튀김옷이 묻어나더라도. 파와 돼지고기에 다시 가지의 튀김옷이 묻어나더라도 괜찮다. 다시 한쪽으로 고기를 밀어 자리를 내어, 향미유를 붓고 가지를 올린다. 그리고는 돌린다 돌려. 가지의 튀김옷이 기름에 익히면 즉시 불을 줄이고 신나게 휘젓는다. 물론, 지나치게 바쁘게 손을 놀리면 초벌구이나 다름없는 튀김옷들이 너무 풀어지니까 조금은 살살.

앗 파 탐

"얼른 와."

"응. 콜록콜록."

"아 미안 환기가..."

"아냐 창문 열지마 추워."


마음에 든다. 바깥양반이 옷을 하나 껴입는 사이에 나는 자리에 앉아 가지부터 골라 한입 배어물었다. 부드럽고 촉촉한 가지의 속살이, 한 주의 마무리, 연휴의 시작으로 꽤나 괜찮다.


"이게 뭐지."

"이건 돼지. 이건 가지."


너는 돼지 먹어라. 나는 가지 먹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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