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하는 맞벌이남편은 하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독박가사라구요?!

by 공존

소식이나 들을까 하여 페이스북에 잠깐 들어갔다가 실소가 나왔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하루 이틀 뒤에 만든 아침 식사 사진이 올려져 있어서다. 나는 이 사진에다가 “스팸성애자를 위한 스팸오믈렛”이라고 코멘트를 달아놓았다. 지금도 다섯번에 한두번 밥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판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이런 요리를 페이스북에 당당히 올리다니. 참 겁도 없었구나, 하고.


물론 지금도 하려면 못할 것 없고 게다가 오믈렛은 나름 정성이 들어가는 요리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의 관점에서 저 스팸대참사는 다음의 몇가지 문제를 내게 환기시킨다.


밥의 양으로 보아 1인분인데, 저걸 혼자 다 먹을 사람이 있을까?

스팸을 아무리 바깥양반이 좋아한다고 해도, 저 분량의 스팸이 영양적으로 가당한가?

스팸을 줄이고 소분냉동을 했으면 여러모로 좋았을 텐데 왜 소분을 하지 않고 한 캔을 다 쓴 것인가?

그리고 오믈렛 속에도 스팸이 보이는데 이것은 너무 게으른 메뉴 구성 아닌가?

분명히 스팸이고 오물렛이고 남았을 텐데 어떻게 후처리를 할 생각이었는가?


물론 현재의 나의 관점에서 그렇단 것이고, 당시에는 또 나름의 사정은 존재했을 터다. 이제 갓 혼수로 들여온 우리의 냉장고에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 마침 신혼여행을 다녀온지 하루 이틀 밖에 안된 참이다. 장을 볼 틈도 없었고 결혼식 전에 살림을 합친 것도 아니어서 신혼집 주변에 마땅히 장을 볼 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그저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계란과, 장모님이 챙겨놓으신 스팸. 그것이 다였을 딱 고 며칠 사이였으니, 그 사이에도 나는 성심을 다한 것이었다. 스팸을 그리 좋아하니 마음껏 먹고 남기렴,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나는 바깥양반보다 야근도 출장도 잦았고 그러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가사를 전담했다. 맞벌이를 하면서 여성 쪽이 독박가사를 하는 흔한 경우들처럼 그저 나에게 그것이 주어진 조건이었다. 장모님 손에 비교적 곱게 자란 바깥양반에게는 수건 개는 법을 가르치는 것조차 일이었다. 대신 바깥양반은 우리의 여행스케줄을 짜는 일에 천부적이었고, 그리고 내가 가사를 책임지는 만큼의 자유를 내게 할양했다. 그러니 그리 나쁘지 않은 공존의 방식이 바깥양반과 나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자유분방한 나의 삶의 방식을 바깥양반 또한 존중해주었고, 동시에 시골 종갓집의 문화에나 어색한 시댁 가족과의 만남에 차츰 적응해갔다. 이정도면 충분히 공정한 거래다.


그 속에서 요리는, 그러니까 우리의 핵심 관심사였다. 확고한 우리 가정,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몇가지 원칙이 내가 계속 집밥을 만들도록 했다.


1. 아침은 무조건 차려먹는다.

2. 여행을 지출의 최우선 순위로 잡고 다른 항목을 줄여야 하니, 외식은 챙겨서 하더라도 집에서 먹는 식비는 되도록 절약한다.

3. 처가와 시댁에서 주시는 식재료들은 무조건 먹어치운다.

4. 똑같은 음식을 식탁에 올리는 건 쓸데없이 하는 외식만큼이나 싫다.


그러니까 상황은 이렇다. 신혼이니 먹을 게 없을 거라며 양가에서 반찬이며 고기며 틈만 나면 냉장고를 채워주셨다. 가뜩이나 결혼 초라서 인사드릴 일도 많았는데, 거기에 추석과 김장철을 보내고 나니 냉장고가 벌써 꽉 차버렸다. 나는 그 와중에 살림이든 업무든 공부든 바쁘긴 일단 바쁘니, 그 많은 재료를 한꺼번에 많이 조리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국을 한 솥 끓여서 일주일간 먹고, 된장찌개를 한가득 끓여 또 일주일을 먹고, 그런 나날들이 제법 반복되었다. 그걸 빨리 먹으면 모르겠는데 일주일에 세번은 필수적으로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으니 음식이 빨리 소진되지는 못했다.


치열하게 음식과의 투쟁, 그리고 남은 가사를 둘러싸고 바깥양반과의 투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나도 생경하던 주방살림을 점점 익혀갔다. 재료마다 저렴한 구매처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 구분해서 들르게 되었고, 결혼 3개월 여가 지나서야 처음으로 소분냉동이란 걸 했다. 그리고 국거리 소고기로는 오로지 미역국과 탕국 밖에 끓일 줄 모르다가, 나중 가서는 육개장도 끓이고 곰탕도 끓이는 등 다양한 조리법을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결혼 하기 전엔 엄마가 대체로 국이나 반찬을 장만하셨던 판이라서 내가 갖고 있는 요리에 대한 직관에 비해 부족했던 경험들이 천천히 채워져나간 것이다.


내가 차츰 요리 실력을 늘려가는 동안 아버지는 반대로 퇴행의 길을 걷고 있었다. 젊을 때 아버지는 당신께서 착착 요리를 해서 우리를 먹이셨는데, 언젠가부턴 꼬부랑 할아버지 처럼 달랑 국 하나 놓고 끼니를 채우시면서 게다가 다른 반찬은 그리 흥미를 두지 않으신다. 이런 차이는 그저 내가 젊고 아버지는 나이를 드셨기 때문일까? 글쎄, 자녀들이 장성한 문제라거나 나이를 먹으며 식욕이 줄어든 것이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다만, 나는 3년만에 스팸 대참사를 일으킨 초보 주부에서 이제는 먹고 싶은 것을 대부분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는 계속 성장의 과정을 걸었다. 아버지가 나름의 방식으로 지금의 삶에 적응했다면, 그리고 일부 가사에 둔감한 남편들이 자신의 삶에 적응했다면, 나는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절약을 하고 싶고, 성공하든 실패하든 일단 시도는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삶의 방식에 내 저녁 일과를 적응시켜 나간 것이다.


로마가 하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 나의 낙곱새...최근에 가장 애를 먹은 요리라서 낙곱새가 떠오르는데, 지금의 나의 살림살이의 방식이나 요리실력도 하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실천과 생각이 쌓인 흔적들에 다행히 주부습진이 달라붙은 적은 없다. 매일의 경험에 매일의 고민, 그리고 매일의 노력.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나의 원칙과 상대방의 원칙이 있고, 충돌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가운데 타협을 해나가면, 그렇게 같이 성장을 하는 것이고 아니면 뭐, 답보를 하거나 퇴행을 하거나.


다행히 요즘은 바깥양반이 설거지를 착착 한다. 수건도 조금 더 예쁘게 개고 있다. 아직 청소기를 매일 돌리진 않는다. 나는 결혼 2년 6개월만에 식칼을 처음 갈았다. 맛은 있는데 플레이팅이 너무 별로라는 말에도 굽히지 않았던 고집을 내려놓고, 브런치에 올릴 겸 예쁘게 음식을 담아내려고 애쓴다. 여전히 조미료는 적게 쓰려 노력한다. 그리고, 여전히 무엇이든 해보려고 한다. 아, 두부조림이 정말 너무 맛있어서 오늘은 또 비계가 넉넉히 붙은 뒷다리 살을 사러 갈 계획이다. 집 앞 마트에 강릉초당두부라고 이름붙여진 판두부가 있는데, 설마 속인 건 아니겠지!


지난 겨울 처음 만들어본 순두부찌개. 백종원의 레시피를 참고했고 고기는 넉넉히 넣었다. 매일 새로 요리를 해먹다보니 영 밑반찬이 팔리지 않아서 상차림은 늘 간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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