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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08. 2019

커피 못마시면 그만 좀 데려가요

바깥양반의 카페사랑

"오 여기 원두 좋은 거래 오빠."

"그래? 보자..."

"인절미비엔나가 유명해 이거 먹어"

"응?"

"응? 왜?"


 바깥양반은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조금만 마셔도 밤에 잠을 설친다거나 맥박이 빨라지는 것 때문에 마시는 것 자체를 겁나한다. 처음 커피를 접할 때 그런 반응이 오더라도, 양을 조절하면서 조금씩 늘려가면 몸이 적응해나갔겠지만 그 프로세스를 밟진 않은듯하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커피를 마시지 않고도 본인 필요에 따라서는 밤을 꼴딱 새는 일도 예전엔 잦았다는 것이다. 새벽 내내 야근을 하고 다섯시에 "오빠 나 끝났어."라는 문자를 보내는 일도 몇번 있었다. 연애 시절 좀 늦은 시간까지 문자로 싸우다가 내가 먼저 잠들면, 바깥양반은 몇시간 더 늦게 잠들었다가 눈만 붙이고 출근하기도 했다.


 나는 커피를 물처럼 마신다. 군대를 제대한 뒤부터 취업 때까지 2년 정도는 아침 6시에 일어났고 취업 뒤로는 5시 30분에 일어났다. 1시간 남짓 통근버스에서 설핏 잠을 보충하고 학교에 도착하면, 종례 때까지 스트레이트로 믹스커피를 최소 세잔은 마셨다. 9시 등교가 결정되고 나서, 그리고 신혼집을 학교 근처로 잡은 지금은 7시 반에 일어나서는 출근여건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그렇다고 출근해서 졸리지 않은 건 아니므로, 역시 하루에 세번 정도 커피를 마신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믹스커피가 원두커피로 바뀐 정도의 차이다.


 차는 둘 다 좋아한다. 바깥양반은 말차의 유니크함이나 카페의 정갈한 분위기에 높은 가치를 두고 다른 다양한 차를 즐기고, 나 역시 모든 차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마신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직장동료들이 녹차를 사와서 교무실 혹은 사무실에 나누어주었다가 아무도 마시지 않아 서랍에 잠들어 있다면, 나는 보이는 족족 "제가 마실게요."하고 채온다. 고급한 차부터 싸구려까지 가리지 않고, 계절을 가리지 않고 커피든 차든 물처럼 늘 책상 위에 놓여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다.


 문제는 이제부터. 바깥양반은 오로지 카페를 위해서도 여행을 기꺼이 즐기는 이 시대의 참된 다방인으로서, 전국의 예쁜 카페란 카페는 모두 섭렵하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품의 소유자다. 그런 바깥양반의 취향을 나는 사치라고 생각하지만, 친구들과 주말에 만나 놀다 오는 것이야 내가 참견할 이유가 없다. 와인바를 다녀오든 스테이크를 썰고 오든 자신의 문화생활은 최대한 서로 존중해주는 게 바깥양반과 나의 서로에 대한 매너다. 그러나, 우리 바깥양반께서는, 따로 친구들과 이곳 저곳 카페를 다녀오고도, 굳이, 나를, 반드시, 본인이 가고 싶은 카페에, 끌고 가고 싶어하시는 것이다.


"아 친구랑 가세요."

"싫어 여긴 오빠랑 갈거야."

"아니 내일도 친구 만난다며. 걔랑 가!"

"싫어 오빠랑!"

"하..."


 카페에 대한 취향을 말하자면, 나는 테이블이 넷을 넘지 않으면 좋고, 의자는 이왕이면 소파로, 푹신해야 좋고, 테이블을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음악이 고즈넉해서 내가 따로 이어폰을 꽂고 있어도 하등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바퀴벌레처럼 자리에 콕 박혀서 집중해서 책을 얼마쯤 읽고 나올 수 있는 카페가 나에겐 최고다. 그러나 바깥양반은 그런 카페를 질색한다. 바깥양반에게 카페란, 화사하고, 인생샷도 건질 수 있어야 하고, 요즘 선호하시는 인테리어는 심플한 흰벽에 목재 의자다. 테이블이 없어도 전혀 불편해하지 않으신다. 나는 책 읽기 불편해서 질색하는데 말이다.


 물론 바깥양반의 카페사랑이 굉장한 장점일 때도 있다. 우선 명절에 고향인 대전에 내려갈 때 카페투어를 가자고 말하면 엉덩이를 들썩이며 신나한다. 대전의 낡은 거리들이 도시재생사업으로 요즘 이곳 저곳에 풍류있는 카페가 가득이다. 그래서 명절 이틀 전 아침에 내려가, 카페를 대여섯군데 골라놓고, 여행을 하듯 고향 땅을 밟는다. 나는 어린시절의 추억이 담긴 대전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즐거움이 크고, 바깥양반은 서울에선 구경할 수 없는 이색 가득한 카페에 행복하다.


 또한 해외여행을 갈 때도 세상 듣도 보도 못한 최고의 커피를 선사하는 바리스타들에게 나를 데리고 간 적도 여러번이다. 원래 차를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기에 계속 믹스커피를 마시다가 4년 전부터 원두를 홀빈으로 사 그라인더로 갈아마시는데, 바깥양반의 카페투어에 이끌려 여러곳을 다니며 좋은 원두와 커피를 많이 마시면서 견문이 트였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30년 경력의 바리스타분이 하는 작은 카페가 있는데, 정원이 딸린 독채에서 직접 로스팅한 각종 원두가 정말로 일품이다. 그분께 로스팅에 대한 가르침을 배우고 요즘은 미디엄로스팅보다는 다크로스팅을 주로 마시고 있다. 바깥양반은 본인은 마시지 못하지만 내가 커피에 대해 배우면서, 그리고 훌륭한 커피를 마시는 걸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모양이다. 하긴, 친구보다는 내가 마시는 게 본인에겐 행복한 일일 것이다.


 나는 프로주부이기 때문에 데이트를 하더라도 저녁식사를 집에서 해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부 데이트의 80% 정도는 그러므로 카페다. 그러한 카페 취향도 정반대, 커피에 대한 선호도 정 반대이지만 이렇게 정반대끼리 붙어서는 잘만 놀러다닌다.


"오빤 뭘로?"

"아무거나요~"

(잠시후)

"자 오빠 거는~ 불볕블렌딩."

"부...응?"
"아. 봄볕블렌딩 봄볕."

 

이런 소소한 즐거움도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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