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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21. 2019

편식하는 그녀

그리고 자연주의 쉐프인 나

 몇 해 전, 엄마가 주말에 누나 집에 가서 애를 봐주는 사이 내가 소고기 국을 끓인 일이 있다. 아버지가 맛을 보시더니 내게 한마디 불쑥 건낸 말은,


"야 이거 국 누가 끓였냐?"

"엄마가 끓였지 누가 끓여."

"맛이 이상한데?"

"아 그냥 드슈."


 엄마는 일요일 밤에 집에 오셔서 내가 끓인 국을 드시더니 피식 웃으며 말하셨다.


"어이구 조미료를 넣어야지."

"아니 그 맛에 먹는 걸."

"야 늬 아빠는 이러면 안먹지."

"허 것 참."


 나는 조미료를 잘 쓰지 않는 편이다. 딱히 건강 때문에 MSG를 쓰지 않는 것은 아니고, 제대로 요리를 배운 것이 또 아니라서 조미료를 쓸 줄을 모르는 쪽에 가깝다. 국물요리를 처음 만든 것이 초등학생 때 한 오뎅탕인데, 지금 생각하면 분명 굉장히 심심한 맛이었을 것이다. 저가 오뎅에 간장, 마늘다진 것이 땡인 요리였으니까. 엄마는 조미료를 쓰라는 말을 어째서인지 해주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이게 오뎅탕 맛이구나 하고 먹었다. 그 뒤에 자주 만든 국물요리는 떡국이었다. 지금도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 요리다. 소고기만 조금 있으면 가래떡과 어우러져 기가 막힌 맛을 내주니까. 조금 더 나이를 먹는 동안, 내가 필요하면 여러가지 요리를 알아서 만들어 먹었지만 조미료를 쓸 일이 딱히 없었다. 찌개나 국은 엄마가 주로 하셨다.


 그런데  엄마는 태안 사람이라 해물육수를  쓰신다. 냉동실에 국물멸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참치, 꽁치 등으로 찌개를 자주 하셔서 내가 조미료 잡는 법을 익힐 틈이 없었다. 처음 조미료를 썼던 것이 대학교 1학년   MT 가서, 부대찌개를 만든다고 나서 스팸과 소시지, 김치를 썰어넣고 다시다를 조금 넣은 정도랄까. 오히려  뒤에 농활을 가서 "의식화된 식단" 몇날 며칠 만들다 보니 점점 조미료를 쓰지 않는 쪽으로 기울기만 했다. 농활 마지막날 동네잔치를 해야 하는데, 잔치국수 육수를 내겠다고   가득 다시마와 멸치, 무를 몇시간 우려내질 않나. 그러니까, 이런  요리스타일은 성장과정에서 몇가지 우연이 겹친 결과다.


 쐐기를 박은 것은 서른 한살, 학교에서 그럭저럭 자리를 잡고 나서 여유가 생겨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1년 동안 샐러드 도시락을 싸갖고 다닌 일이다. 양배추에 계란, 토마토를 썰어담고 드레싱을 올리는 구성이었는데, 드레싱도 살이 찐다. 그래서 처음에는 샐러드에 지치지 않기 위해 여러가지 드레싱을 사서 번갈아 쓰다가, 샐러드에 익숙해질 때쯤 모든 다른 드레싱은 치우고 올리브유에 식초를 조금 쳐서 먹었다. 그 땐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좀 많이 나갔었던 것 같다. 싱싱한 양배추는 아삭아삭 씹으면 턱이 아팠고, 계란과 토마토는 양배추의 바다 위의 섬, 혹은 양배추의 사막 위의 오아시스 같았다. 여기에 아몬드를 추가해서 먹었는데 씹다보면 턱이 아팠다. 그러나...생각보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1년 내내 양배추 수십 통을 먹으면서  양배추의 아린맛과 단맛을 즐기게 되었고, 조미료 맛 대신 토마토의 시고 짜고 단맛, 계란의 풍미로 입을 달래는 습성을 익혔다.


 그래서 결혼하고 조금 지난 지금도, 여전히 조미료를 잘 쓰지 않는다. 국물에는 멸치와 새우젓을 쓰고, 볶음요리에는 다시다를 조금 쓰긴 하지만 없는대로 먹는 편이다. 조미료를 사두기는 했는데 잘 쓰질 않다보니 녹아버려서 반통은 그대로 버린 적도 있다. 문제는,


"바깥양반. 김치 좀 드시구려."

"아니야 스팸이 좋아."


 바깥양반의 식습관이다. 바깥양반은 스팸을 사랑하며, 생야채를 먹지 않는다. 도대체 왜일까.


 바깥양반과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특이한 점을 발견하는데, 생야채를 거의 먹지 않으며 그렇다고 볶은 야채를 드시지도 않는다. 생김치를 먹지 않지만 김치전은   감추듯 먹는다. 아침밥 메뉴로 가장 좋아하는 것이 김치볶음밥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파스타를 한다, 면과 베이컨은 드시되 양파는 드시지 않는다. 고스란히 나의 몫이다. 좋아하는  육개장 사발면. 하고 많은 컵라면 중에  그거다. 대체 어째서 이런 초딩입맛이 바깥양반의 미각에 정착되었을까.


 내가 차리는 밥상들이라서 밥상은 내 취향이고, 그래서 나는 내가 먹고싶은 취향대로 마음껏 요리를 하지만, 바깥양반이 남긴 파스타의 양파는 나의 것. 굳이 딱 잘 익은 김치를 볶아야 할 때에는, 뭔가 아쉽다. 무엇보다도 좀 안타까운 것은, 사시사철 맛이 변해가는 김치의 맛을 즐기지 못하고 몇년이 지나도 맛이 똑같은 통조림 속 스팸을 구워주면 행복해하는 바깥양반을 볼 때는, 이것이 그저 나와 바깥양반 사이에 존중의 영역으로 두어야 하는 것일까. 조미료를 쓰지 않고 재료 맛을 중요시 하기에 되도록 제 때 먹어야 하고, 뜨거울 때 먹지 않으면 제대로 그 음식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데 꾸물대다가 음식이 식은 다음에 손을 대었을 때의 바깥양반을, 나는 그냥 두어야 하나.


부부 사이에 절대로 해서는 안될 것 중 하나가, 누구가 누구를 가르치려 드는 것일 터인데, 수십년간 길러진 나의 자연주의적 식습관이 스팸으로 다져진 바깥양반의 취향과 만나, 여러번 갈등하곤 한다. 그거 그렇게 먹는 거 아닌데...


오늘 저녁 상은, 흰다리 새우가 아닌 서해안 대하와 내가 낚시 해서 잡아온 주꾸미찜이었다. 지난 주말에 김장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먹다가 내가 뒷처리를 하겠다고 남은 것을 가져왔다. 습기가 빠지지 않고 데피기 위해서 봉지에 담아 쪄냈다. 다행히, 맛은 그대로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산 식재료를 먹고 바깥양반이 한 말이 뭐였냐면,


"여기에 사발면 하나면 딱인데."


야!


바깥양반 생일상. 삼색전 맨 아래 있는 게 감자전인데 새벽에 직접 갈아 소금만 약간 넣어서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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