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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06. 2019

Prologue : 아주 평범한 하루

어떤 기묘한 부부의 신혼생활

“나 왔다아.”


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컴컴한 거실에 우리 바깥양반은 잘 머물지 않는다. 몸이 약해 매일 퇴근하고 나서는 침대에서 두시간쯤은 쉬어야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가방을 내리고 침실로 가서 희미한 불빛을 빌어 바깥양반이 주무심을 확인하고, 침대 끝에 앉아 볼을 쓰다듬는다.


“엄청 늦었네요 왜 이제와요.”


바로 깨지는 않았다. 한 1분쯤, 내 손길에 뒤척이다가 눈을 겨우 뜨고 한 말이다. 침대 머리맡의 휴지통에는, 바깥양반이 퇴근해 집에 와서 해치우신 과자봉지가 비워져 있다. 볼을 꼬집.


“아! 하지마아!”

“내가. 과자. 먹으면. 뭐랬지.”

“아 늦게 와놓고 배고파서 과자도 못먹게해.”

“저녁 차려준다고 했는데 뭐가 몸에 좋다고 과자를 먹냐 매번.”

“그럼 빨리 와!”

“아니 내가 노느라 늦냐...뭐 해줘?”

“맛있는거 해줘요 힘들어요.”

“15분. 시간 재.”


오는 길에 토마토를 샀다. 매일 퇴근길에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데, 조금씩 추워지는 요즘은 오랜만에 느끼한 걸 먹고싶어서. 생쌀을 냄비에 끓이면서 토마토를 자른다. 생쌀로 하지 않으면 리조또가 아니지.


“나 오늘.”

“웅.”

“사무실에서 고구마 단체로 주문해서 나도 같이 했어.”


누운 채로 바깥양반이 말한다. 벽을 넘어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이 시간은 이해해주는 시간. 베이컨을 썰면서 답한다. 빠르게 빠르게.


“밤 사온 것도 아직 남았는데. 군밤 먼저할까 군고구마 먼저해?”

“아무거나용.”


올리브유와 버터를 같은 양으로 팬에 올리고 토마토를 먼저 볶는다. 바깥양반이 조금 피로가 풀린 모양인지 톤이 높아졌다. 빠르게 토마토를 볶아서 마이야르를 낸 뒤에 베이컨을 뽂아야 한다. 한소끔 끓여진 생쌀을 빼내고, 시계를 본다. 아직 넉넉한 시간이다.


“추워지니까 내일 아침은 국수?”

“요.”

“나와서 거실에서 있어.”

“밥 먹구요.”

“에휴.”


결혼 전에 15년을 침대를 쓰지 않았다. 게을러지기 싫었던 학생시절의 습관이 오래 남았다. 그래서 집에서 누워있는 걸 싫어한다. 그러나 우리 바깥양반은...집에 있는 대부분을 와식으로 하신다. 그러나, 집에 있는 시간은 극도로 짧다.


베이컨 기름이 버터와 섞여들 때쯤, 겉만 익은 쌀을 넣는다. 이제부터는 힘과 불의 싸움. 센불로 볶아내면서 타지 않도록 계속 젓는다. 계속. 계속.


“나와.”

“...”

“나와.”

“...”

“야!”

“어? 아 또 깜빡 잠들었었어 잠깐만.”

“포크 놔.”


마지막 휘젓기를 끝내고 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성공. 바깥양반이 식탁에 앉았다. 내 황금색 깔깔이를 입고.


“오빠 근데 있잖아.”

“아니, 없어, 하지마.”

“아니야 들어줘.”

“하...또 이번엔 어디냐.”

“아니 다음주에 동백이 종방이라.”

“아니야 그만. 스탑.”

“가죠요.”

“동백씨 지가유?”

“아니야.”

“...몇시?”

“아홉시반차예용.”

“얼마나 걸려?”

“포항까지 두시간 반 밖에!”

“우리 지난주에.”

“응 그건 단풍 특집이죵.”

“주말에 우리 대청소 좀.”

“이번주만 다녀오고용.”

“휴...”


밥을 비웠다. 다시 바깥양반은 침대에 벌러덩 눕는다. 소화나 시키고 자라고 말했지만, 잠깐만 누웠다가 일어서서 드라마 본다신다. 나는 설거지를 시작한다.


- 그것은, 95%의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그리고 외출 일정의 95%를 결정하시는, 프로주부인 나와 우리 바깥양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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