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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29. 2020

이 사랑 아마도 찐이야

요즘 이러고 살아요

 그-으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건가 하면...9월부터 여행을 다닐 때 커피 세트를 챙겨서 다닌다. 바깥양반의 카페사랑 덕분에 원래는 우리의 여행 코스는 원데이 맥시멈 파이브카페로 채워지는데 마침 코로나 대응 방역지침이 3단계가 될까 말까 하던 8월을 보내고 나니 감히 카페에 어디 들어가기 조심스러워진 탓도 있고, 그 즈음 심사복잡하던 바깥양반께서 카페에 흥미를 보이지 않던 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러나 그것과는 무관하게도 나는 커피를 마셔야 한다. 그것도 하루에 세잔 가량은. 


 조금 일반적인 경우라면 적당한 카페가 인접해 있는 숙소를 택하여, 아침잠이 없는 나는 아직 잠들어 있는 바깥양반을 두고 카페에 가서 테이크아웃을 해오거나 했겠다. 그러나 국내여행 고인물이신 바깥양반은 사람이 많은 번화한 곳의 숙소를 원하지도 않고 원래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나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숙소가 카페와 붙어있는 수준의 번화가로 숙소를 고르지 않았다. 


 9월에 찾은 양평의 민박도 그런 케이스였다. 가까운 슈퍼가 걸어서 10분이 걸리는, 농촌에 딱 붙은 한적한 민박집에 가까운 펜션이었다. 숙소를 내가 정했기 때문에 주변에 커피 따위를 사먹을 곳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런 것보단- 그냥 단순하고 심플하게 "가져가면 되지 뭐."라는 생각을 하고야 만 것. 마침 추석도 붙어있겠다 우리는 먼저 집에 가서 명절 식사를 마친 뒤 그라인더로 윙윙 콩을 갈아 명절음식 차리신다고 난장판이 되어 있는 주방 구석에서 커피를 내려 엄마와 누나에게 대접했다. 엄마나 누나의 바운더리에서 어디서 사 마시기 어려운 기묘한 맛의 커피에 퍽 즐거워하셔 나도 기뻤다. 


 그래 여행지에도 드립세트를 챙겨가 아침마다 콩을 갈았다. 인스턴트 커피 따윌 마실 순 없지. 양평의 민박집은 깔끔했다. 그러나 큰 창문을 열면 옥수수밭이다. 산책하려 나왔다가 큰 소 목장이어서 오랜만에 쇠똥내음을 맡고 들어갔다. 주변에 있는 작은 마을에 카페가 있을리가. 그러나 그런 호젓한, 한적한 분위기에 즐겁게 이틀 휴가를 보냈다. 


 시작이 어렵지 한번 하고 나니 마찬가지로 한적한 곳만 찾아다니며 드립세트를 챙겨갔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겠다고 모자를 눌러쓰고 옷을 챙겨입을 필요도 없고, 속옷바람으로 커피를 내려 바다가 내려보이는 창가에 앉아 보내는 아침이 그렇게 한가로울 수가. 또 그러다 보니 당장 카페 예산이 절감된다. 절감된 예산은 재투자로 이어진다. 다시 양평의 경우, 심상치 않은 로스터리가 있어서 무심코 방문했다가 마음에 들어 에티오피아 중심으로 블렌딩 된 원두를 샀다. 커피를 볶아먹기 시작한 게 2월 무렵이니 내 돈 주고 로스팅 된 원두를 산 게 물견 7,8개월만이 되는 셈. 그걸 들고 와서 다음날 아침 또 새로 뜯어서 내려먹어보니, 에이 그냥 아는 맛이네. 내가 볶은 원두랑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500g의 원두에 2만 7천원 정도를 투자했는데 영 수지가 맞지 않는다. 지금까지 볶았던 원두 중에 성공적인 생두만 추려서 재구매를 해도 2kg을 살 수 있는 비용을 수업료로 지불했다.


 내가 커피를 내릴 자리이기도 하니 인테리어가 좋은 숙소에 오면 한결 그 즐거움이 살아난다. 바깥양반과 휴양을 스파가 딸린 깔끔한 펜션을 골랐는데 인테리어가 썩 훌륭하다. 주방의 배치가 싱크대 쪽에서 식탁을 바라보면 바다가 보이게 되어 있다. 즉, 나는 이 자리. 주방에 서서 식탁에 올려둔 커피 용구들을 늘어놓고 차근차근 커피를 갈고, 드립용지를 한번 헹구어 올리고, 볶은지 일주일도 안된 신선한 원두가 이산화탄소를 잔뜩 뿜어내며 부풀어오르는 것을 지켜보며 물을 붓는 호사를 즐길 수 있다는 것.


 굳이 이래야 하나 싶기도 하면서도, 이 정도면 커피에 대한 나의 사랑이 찐이야, 하는 생각도 들고. 언제쯤 돈을 모아 은퇴해서 바닷가에 작은 카페를 차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는 와중에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의 향과 증기는 날 간질이는 이 시간은, 어쨌든 하루 하루의 삶의 이유이기도 한가보다. 


 라고 말은 하지만, 최근 전자동커피머신을 당근마케 거래로 샀다. 버튼 하나면 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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