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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20. 2021

스태커 와퍼와 티본 스테이크의 비극

버거킹과 아웃백에서 마주친 코로나의 풍경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 동안에 반드시 내가 가야만 하는 출장이 있었다. 그러나 여행이 막바지였고, 이미 한차례 서울로 올라왔던 적이 있는 바람에 또 한번 올라오기엔 큰 부담이 있었다. 별 수 없이 비싼 음식을 사주기로 약속을 하고 장학사에게 연락을 한 뒤 믿을만한 선생님을 대신 보냈다. 덕분에 나는 위기를 넘겼다. 


 어제 도움을 준 선생님을 만나 점심을 대접하기 위해 초밥집을 갔는데 얼씨구, 가려던 곳이 점심시간인데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두어가지 다른 선택지를 주고 고르도록 했더니 버거킹을 고른다. 저녁시간에 만났으면 고기라도 사줄 텐데 어쩔 수 없지. 대신에 버거킹이 최근 도입한 새 메뉴인 스태커 와퍼를 시켰다. 패티를 한장 추가해서 심지어 패티 다섯장 짜리 와퍼. 


 그것을 받아보니 진짜로 심각하게 크다. 이것은 직접 만져보고 들어봐야 아는 볼륨이다. 햄버거 자체도 좋아하고, 버거킹은 자주 먹고, 버거킹에서 패티를 네장 다섯장씩 넣어서 먹고 인증샷을 올리는 통에 나도 호기심이 들어 주문을 하긴 했지만, 15,000원이나 주고 산 단품 햄버거를 결국 야구공 사이즈 정도, 순 쇠고기살을 그대로 남기고 말았다. 먹기 전의 크기는 핸드볼 사이즈에 가까웠으니, 배고픈 상태에서 분전한 결과라고 하겠다. 그래놓고도 그날 잠들 때까지 배가 꺼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런 메뉴를 만들까. 먹으면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미국에서야 흔하게 이런 헤비한 햄버거를 판다지만 우리 나라의 식문화에 비추어 그리 효과적인 마케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먹기도 힘들고 한번 재미삼아 주문한 뒤에는, 인증샷을 남기고는 다시 안시킬 이런 메뉴를 왜 마케팅 비용을 들여가면서 개발하고, 매장에 납품을 하는 것일까? 


 쇠고기는 비싼 식재료다. 패티는 냉동으로 장기간 보관을 할 수 있는 메뉴도 아니다. 햄버거 가게에서 매일 납품을 한다고 해도, 이런 과잉한 메뉴를 특별한 수량 제한 없이 판매해, 매장마다 잔뜩 패티를 쌓아둔다는 것은 너무 리스크가 크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개발된 메뉴가 아니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심증은 확증으로 나아간다. 오늘은 아내와의 기념일이다. 아웃백에 가서 저렴한 메뉴를 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런치 메뉴를 시키려고 메뉴판을 찾고 있는데 서빙 점원이 새로 도입된 뼈붙이 스테이크에 대해서 길고 긴 설명을 친절하게 늘어놓은 뒤에 자리를 떴다. 아웃백이 아무리 품질개선이 되었다고는 해도 티본에 엘본, 그리고 토마호크? 


 버거킹으로 인해 품고 있던 의심은 하루 뒤 아웃백에 와서 다시 불이 붙었다. 한국인에게 선호도가 높지 않은 비싼 스테이크부위들을 패밀리레스토랑인 아웃백에서 제공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이 전문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주로 찾는 메뉴들이다. 게다가 덩어리는 800그램. 단위도 너무 크다. 일반적인 아웃백의 스테이크 사이즈인 200g 내외에서 너무 크게 벗어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 


 기존의 매장의 정책과도 어울리지 않고, 한국인의 현재의 식문화와도 어울리지 않는 버거킹과 아웃백의 쇠고기 마케팅이 전달하는 공통된 인상은 쇠고기가 너무 많이 남아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마치 이것은, 빨리 빨리 처분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 아닌가. 어디에서 이렇게 쇠고기가 남아돌길래. 식사를 마치고 핸드폰으로 미국의 코로나 사망자를 확인해봤다. 이번주로 40만명의 사망자 통계가 나왔다. 40만명.


 미국의 육류소비는 세계 최고다. 1명이 매일 300g을 먹어치운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만 40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면, 그들이 소비하던 육류는 어디로 갈까? 


 판데믹의 특성, 그리고 미국의 대응 실패로 다른 재해에 비해 사망자들이 계층의 영향을 덜 받았다. 즉 그 40만명은 중산층과 빈곤층이 마구 뒤섞여있는 숫자다. 유럽의 중소국가 하나 사이즈의 인구가 감소했다. 그들이 칼질하던 티본과 엘본, 토마호크는 어느정도였을까? 코로나가 육우에게 아직, 감염되진 않았으므로 공급은 유지되는데 수요가 급감해서 고기가 남아돈다면 자연스럽게 가격이 낮아지고 소비량이 늘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성장율은 50년만에 최악으로 추락한 상태다. 고기가 남아돌아도 사먹을 돈이 없고, 사회불안이 심해지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코로나로 인해 파티도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미국 내에서 쇠고기 소비가 급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생산된 무지막지한 쇠고기를 수입해서 소비하는 유럽 각국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블룸버그

 예측에 부합하는 보도는 여러곳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대형 시장인 아르헨티나의 쇠고기 소비가 크게 감소했다는 보도도 함께 발견되었다. 미국의 쇠고기 소비가 크게 감소했다. 40만명의 사망자의 숫자로 인해, 그리고 수백만명의 감염자, 그로 인해 경제불황의 그늘이 드리운 만큼. 


 비단 미국 뿐일까. 그리고 쇠고기뿐이겠는가. 세계 곳곳이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깊이 병들고 신음하고 있다. 그러나 잔혹한 자본주의 경제의 시계는 어김없이 운동하고, 그 시침과 분침에 매달린 수백만명의 노동자들과 농부들은 얼어붙은 쇠고기 소비시장으로 절망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개중에 코로나에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우리 나라에, 미국인들이 주로 소비하던 뼈붙이 스테이크와 네장, 다섯장이 되는 와퍼 패티 메뉴의 등장으로 변신하고 있어, 그것을 사먹을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으로 또 나누는 아이러니는 또 얼마나 서글픈가. 


 스테이크가, 그리고 와퍼의 패티들이  슬픔의 기호로 다가왔다. 한국의 코로나 피해자들이든 미국의 코로나 사망자들이든 모두의 생명의 값은 같은 것이기에. 우리는 제대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매장은 더욱 더 엉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수십만명의 생명의 공백의 공간에서 쏟아져나온 쇠고기들의 홍수를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 아닌가. 고작 쇠고기에 가려진 죽음의 숫자 뒤, 전세계에서 지금 이 시간 죽어가는 생명들, 그것이 우리에게 인식조차 되지 못하고 스러져간다는 또 다른 비감과 함께. 어떻게 이 죽음들을, 생명이 사라진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공백들을 막아낸다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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