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은교사는 만들어지지 못하는가 <교사교육의 딜레마>

교사양성의 구조적 한계와 지식-교과구조의 본질

by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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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나를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있었다. 지역에서 가장 선호되는 중학교가 코로나로 인하여 개학이 늦춰지는 가운데 온라인개학 수업 형태를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일주일간 계속된, 한번 시작하면 세시간을 훌쩍 넘긴 숙의토론 결과 쌍방향 실시간 수업을 물리고 인강 중심의 컨텐츠형을 채택했던 일이다.


민주주의의 근본전제가, 다수 대중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장기적인 공공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지만 교수법의 기본을 안다면 쌍방향 실시간 수업을 하는 쪽이 인강을 듣고 댓글로 출석을 하거나, 과제를 제출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업의 효율이 높음이 너무나 명약관화한 일이기에 나는 그 과정을 전해듣고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합의해서 더 편한길로, 아이들에게 명백한 불이익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택한다면, 그것도, 우리 지역에서 가장 선호되는 혁신적인 중학교에서 그런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면 다른 학교들은 어떤 결정을 할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던 것일까? 교사 개인의 이기심이라거나 조직의 방만함이라기엔 코로나 사태는 너무나 예측 못하게 순간적으로 덮친 일이고, 학교가 그에 대하여 긴밀하게 대응하기에도, 2020년의 2, 3월은 살얼음처럼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숙의라거나 협력이라거나 말만 고상하지, 실제로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입장을 들어보자면 아무런 준비도, 교육청의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쌍방향 온라인 수업을 하라는 것은 너무나 곤혹스러운 요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라는 직업을 택한 이상 학생들을 위하여 그 어떤 어려움도 각오하고 마땅히 노력을 해야 한다고?


되묻자면, 그렇다면 그런 교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교직의 근본적인 문제는 30년이라는 노동기간에 비추어볼 때 업무 자체의 유연성은 극도로 제약되면서도, 그 어떤 직종보다도 유연하고 능동적인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 직무라는 점이다. 교사 노동의 기본 요건은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을 정확히 정교하게 후세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교과"로 구분되어 구성된 지식체계를 학생들에게 왜곡이나 막힘 없이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교사가 가르치는 대상은 곧 미래사회에서 노동자가 될 아동들이기 때문에 현재의 세태, 그중에서도 산업사회의 변화양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에 맞춘 "역량"과 태도를 학생에게 함양해야 한다.


여기에서 모든 교사들이 직면하는 첫번째 딜레마가 작용한다. 미래사회 핵심역량을 스스로 함양하며 그것을 이론적으로 분석하여 학생에게 지도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확립하는 것은 사범대학과 교대, 임용고사라는 트랙을 따라온 예비교사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라는 것이다. 즉 교사들은 극도로 경직된 지식체계 안에서 경쟁해 오다가 현장에 나오자마자 극도로 유연한 사고와 역량을 갖추도록 요구받는다.


그렇다면 그런 교사들을 양성하는 사범대학은 어떨까? <교사교육의 딜레마>가 지적하는 점도 바로 이것이다. 교사양성의 본질은 경성지식, 다시 말하여 연구결과가 검증 가능하고 명시적이며, 축적된다는 수사적 주장을 확립하는데 상당한 성공을 거둔 분야와 연성지식, 다시 말하여 상대적으로 덜 분명하다고 여겨지는 지적 영역으로 도출된 결과를 다시 재연하기 쉽지 않고, 다른 연구자가 제기할 수 있는 연구결과의 신빙성 또한 방어하기 쉽지 않으며, 인과적 주장을 웅호하기 어렵고, 그 때문에 명확한 판단 혹은 연구방법 입증보다는 개별 케이스에 대한 해석에 매몰되기 쉬운 지식을 동시에 다루는 분야라는 것이다.


교육학의 본질은 이 경성지식과 연성지식,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체계와 유연하고 신속한 사고체계를 동시에 다루는 일이다. 교사도, 그들을 양성하는 교수도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극도로 유연하고 불안정한 상태의 학습자들이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 어떤 절대적인 교육방침을 정하는 것이 어렵다. 혹은, 그렇게 수십 수년간을 노력하여 교수법을 쌓아올렸다 한들 그보다 빠르게 세상이 변하고 학습자는 변한다. 그렇다면 먼저 교육학 교수는 예비교사들에게 절대적인 지식체계를 구축해 전달하는 것을 우선해야 할까, 아니면 유연하고 신속한 사고체계와 역량을 구축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할까? 시간은 제약되어 있고 학습자의 학습역량은 한정적인데 말이다.


물론 여러 교육학자들은 그 학문적 권위를 보다 강화할 수 있는 경성지식 분야의 교육학 영역을 구축해왔다. 교육심리, 교육철학, 교육통계, 교육공학 등 사범대와 교대생이 흔히 접하게 되는 교육학 강의들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 역시 치명적인 한계에 직면했는데, 그런 연구 노력은 빠르게 탐구 주제가 한정되게 되고 교육이 작동하고 있는 방식을 기술하거나 혹 교육 관련 변인을 상당히 느슨하게 밝혀주는 것 정도의 연구가 훨씬 성공적인 것으로 보여진다는 점이다. 아동의 심리나 통계를 동원한 교육상황의 고찰보다는 교육과정 재구성에, 4차 산업혁명에, 고교학점제에 훨씬 더 많은 교사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교육당국 역시 그런 부분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정책 입안에 활용한다.


학문적 권위와 가치를 훼손하는 이 본질적인 한계 외에도 교육학과 교사양성기관이 가진 문제점은 몹시나 많다. 교사 양성은 전적으로 교육 시장의 상황에 따라 통제된다. 공교육확장기인 한국의 1950~70년대에 교사양성 과정 없이 무수히 많은 교사들이 교직에 진출했다. 미국의 경우 1870년부터 1930년 사이의 60여년간 200,000명의 교사가 850,000명으로 증가했는데 그 과정에서 교육학의 낮은 학문적 권위와 낮은 학벌 가치 등으로, 좋은 연구자와 교수, 교사들이 탄생하기보다는 허술한 커리큘럼과 낮은 선호도에서 발생하는 낮은 역량수준의 예비교사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높은 교육열로 인해 교사의 질적 수준이 강조되는 한국에서도 단지 임용고사로 선발 과정을 통제하고 성과급과 승진이라는 허술한 보상체계만 가지고 있을 뿐, 교사 양성의 과정을 본질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은 대학과 예비교사 당사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이런 여건이니, 코로나 상황에서 우왕좌앙 한들, 최상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들 그것을 어떻게 개별 학교와 교사의 문제로 한정할 수 있을까.


<교사교육의 딜레마>는 이처럼 공교육의 본질적인 문제인 교사의 질적 한계를 탐구하는 깊이있는 연구들이 담겨있다. 교육학의 본질적인 문제부터 정책과의 부조화, 학문분야에서의 불안정한 지위와 선발기관의 강점은 누리지 못하고 졸업장 자체의 가치는 매우 낮은 교사교육의 특이성. 그리고 수 많은 문제거리들. 말 그대로,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누구나가 즐겁게 읽을만한 양서다. 교사란 무엇인가, 교사는 어떻게 길러지는가. 그 질문을 가운데 놓지 않고서 책임이고 책무고를 따지는 것은,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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